인간이란 무엇인가 - 칸트 3대 비판서 특강 인간 3부작 1
백종현 지음 / 아카넷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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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세계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권이자 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 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덕적 완전성, 인간의 이상이 마침내는 실현된다는 희망내지 확신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

책속에서 알게 된 이 말이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든든함으로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이 책은 교수로, 한국칸트학회 회장인 저자의 칸트 3대 비판서 주제별 특강 내용을 담고 있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다소 딱딱한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특히 강의마다 끝 부분에 질문과 답으로 되어있어 현장감이 더해져 집중할 수 있었다.

칸트하면 떠오르는 것은 근대철학의 중심이라는 말이 전부였다. 젊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아무 부러울 것이 없던 그 때. 나름대로 자아실현이나 삶의 본질 등에 대해 사고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치기어린 결심으로 철학에 대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데카르트, 스피노자 등의 철학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때는 그저 책을 읽었다는 것이 전부였을 뿐, 아니, 오히려 그들은 왜 굳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들에 대해 끝도 없이 풀어헤치고 파고 들어가고, 다시 또 엮어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깨닫게 된 것이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그 때, 그들의 폭넓고 깊이 있는 사고로부터 시작된 것들이 개념으로, 정의로 우리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칸트의 철학은 두 번 정도는 읽었는데 도통 그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역시 읽었다는 것만으로만 여겨야 했다. 그러면서도 칸트라는 이름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한 번쯤은 그저 읽는 것에서 벗어나 공감하고 이해하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특강은 저자를 통한 이야기와 설명이 곁들여져 보다 만족감을 주리라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묵직한 어감만큼 이번에는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알려주는 대로 방향을 잡아가보기로 한다.

최초의 프로 철학자인 임마누엘 칸트는 1724422일 동프로이센의 항구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소박한 수공업자인 아버지와 신앙이 독실한 어머니의 아홉 자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았지만 자연을 잡하고 신의 섭리를 알게 해준 어머니로부터 받은 사랑은 인격형성에 많은 여향을 주었다.

6세부터 학교 교육을 받기 시작한 그는 중, 고등학교 때는 라틴어에 심취했고 대학에서는 철학 수학, 자연과학을 폭넓게 배웠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생계를 위한 가정교사 활동을 했고 31세에 시간강사로 46세에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서 형이상학과 논리학 정교수가 되었다.

칸트가 살았던 저택을 마주하니 마음이 반짝인다. 40세가 넘어서야 고정수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단호하고 고지식한 성격 탓도 있었으리라. 오로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정해놓고, 그 길을 따라 걷는 모습은 학자를 떠올리게 한다.

칸트의 철학은 신적인 것에서 벗어나 인간적인 것을 중심으로 하는 이성주의적 계몽주의, 합리주의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그의 3대 비판서를 통해 찾을 수 있다.

 

    

 

1강은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중심으로 하는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순수이성 비판에서 찾는 내용이다. 순수이성비판은 가장 낯익은 말로 칸트는 인간 마음능력을 감성, 이성, 지성으로 쪼개어 봄으로써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제일 먼저 마음을 다잡게 되는 것은 학문에 대한 개념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학문이란 먼저 많이 배우고 그것이 쌓이면 스스로 물어 분별하는 것으로 그게 바로 비판으로 철학함을 배우는 것이지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는 말에 얼굴이 홧홧해진다.

이 강의를 들으며 잘게 분리되어가는 근본적인 것들을 보며 막연하게만 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쳤던 것들이 제각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순수이성은 오로지 자격으로 존재하는 자를 뜻하며 인간의 이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순수이성 비판은 순수이성의 자기 한계규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초월적 감성학과 초월적 논리학을 다루고 있다. 공간, 시간은 존재의 관문이자 지평으로 공간과 시간상에 있는 것을 우리에게 그렇게 나타나 있는 현상, 인간의식 방식에 달려있는 관념, 특히 인간의식에 선험적으로 갖추어져 있는 412개의 순수 지성개념들은 무질서하게 떠돌던 것들을 제자리로 찾아가는 확실함을 갖게 했다. 지금까지 으레 그러려니 하고 써왔던 말들의 기본개념을 한 번도 깊어보지 않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부끄러워진다. 그리고 사고의 형식을 범주고, 범주에서 사고 작용이 통각으로,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은 마침표를 찍는 느낌이었다. 칸트의 통각은 자기의식이라는 것도.......

그러고 보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인간으로서 나는 공간, 시간상에서 직관한 것만을 의식할 수 있는 것으로 앎의 대상은 자연세계뿐인 것이다.

    

 

 

 

2강에서는 도덕학 부분으로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실천 이성비판에서 찾고 있다. 이 질문에는 선을 행해야 한다는 답이 주어진 만큼 문제의 본질은 선이란 무엇인가?‘이다. 선에 대한 질문은 누구나 해보는 것으로 그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지 못한 만큼 더욱 집중하게 된다.

선을 실천할 인간의 능력을 자유라 하므로 도덕 문제의 중심에는 자유개념이 들어간다. 당위는 이념 또는 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상세계의 명제이고 도덕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이에 대한 학문이 윤리형 이상학이며 설천이성 비판을 통해 성취된다.

칸트는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고 곧 선의지이며 그 바탕에는 인격성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선의지는 어떤 행위를 오로지 의무이기 때문에 하려는 것이고 행위의 선악은 이미 동기에서 드러난다는. 결국 법치 주의자이자 의무자이며 동기주의자이다.

이런 칸트의 윤리이론이 인연과 정으로 맺어진, 보은의 윤리가 자리 잡은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적응도지 않는다는 말에 수긍이 간다. 우리 민족이 정이 많다는 게 좋을 때도 있지만 정을 중시하다보니 얽히고 설켜 좋지 않은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작 나 자신부터 그런 보은윤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이제는 한 번은 더 생각해보는 습관을 질러야겠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는데 바로 자유에 대한 내용이었다. 보통 할 수 있으니까 해야 한다는 말을 칸트의 논리로 보면 해야 하니까 할 수 있다.’는 논리로 인간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당연히 할 수 있는 자유의 힘이 있다는 것이다. 문장의 앞, 뒤가 바뀌었을 뿐인데 칸트의 논리에 힘이 실리는 것은 선의지가 의무라는 생각 때문이다. 거기에 질의 응답에서 칸트의 최고선개념 등장에 대한 이야기는 행복과 최고의 선에 대한 개념을 다시 한 번 짚어볼 수 있게 해주었다.

    

 

 

마지막 3장은 나는 무엇에서 흡족함을 느낄 수밖에 없는가?’ 또는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라는 질문을 판단력 비판에서 답을 찾고 있다.

먼저 반성적 판단력의 선험적 원리는 어떤 사물을 볼 때 그 사물은 어떤 목적을 위해 있다고 생각하는 합목적성으로 칸트는 판단력의 자기자율이라 한다. 그리고 다시 감정에 의해서 판정하는 능력인 미감적 판단력과 자연의 실제적 합목적성을 지성과 이성에 의해서 판정하는 능력 목적론적 판단력으로 나눈다. 미감적 판단력은 합목적성으로 인간에게만 있는 미적 감정, 쾌감으로 사람마다 다른 감관적 감정과 자유로운 상상력과 지성이 합쳐져 나오는 특별한 쾌감이 있는데 칸트는 자유미를 미적 쾌감에서 주제로 삼았다. 그리고 미적 판단의 한 요인이고 감성의 한 능력인 상상력은 감각기관과 함께 감성기관이다. 다시 또 분류해보면 오감은 외감, 반성하는 능력은 내감으로 상상력이 이에 해당한다. 이렇게 상상력과 지성이 합일하는데서 미적 판단. 미적 쾌감이 생긴다고 하니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상상하는 순간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철학적 의미를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게 소중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나에게 주어지는 모든 것들이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의미를 품고 있다는 생각으로.

최고의 선은 자연의 세계가 도덕의 세계처럼 움직이는 상태로 주기도문에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처럼 지상이 천국이 될 수 있기를, 덕행에 알맞은 행복이 함께 하는 세상이 바로 칸트가 생각하는 합목적인 세계이다. 이런 희망을 품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덕행을 행해야 한다.

그러고보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 칸트의 철학적인 답은 인간은 세계인식에서 존재자의 존재를 규정하는 초월적 주권이자 행위에서 선의 이념을 현실화해야 하는 도덕적 주체이고 세계의 전체적인 합리성과 합목적성을 요청하고 희망하고 믿는 반성적 존재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덕적 완정성, 인간의 이상이 마침내는 실현된다는 희망내지 확신을 가지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가슴 저 밑으로부터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되찾은 것 같은 설렘으로. 물론 굳이 이렇게 철학적 사고와는 무관한 삶도 불편하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철학적 사고가 더해짐으로써 삶의 깊이가 더해진다는 생각이다. 인간으로서 본연의 자세를 짚어보고,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감정의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은 안으로 단단하고, 차곡차곡 쌓아감으로써 불필요한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은 물론 내가 지향해야 할 삶을 위해 해야 할 부분도 채워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렇게 하다보면 당장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또 다른 희망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은 참 진리를 밝히는 것으로 인류의 복지와 존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함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자율적 인간의 위상을 논리적으로 확인하는 것으로 인간이 자율적인 존재로 자존심을 갖게 되고, 자긍심을 갖게 되는 일은 인류복지를 위해 중요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칸트의 철학은 인간 의식의 자발성, 자율, 자기자율을 추구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이 자유임을 해명함으로써 자유의 철학, 자율의 철학이다. 가늠하기조차 힘든 때의 칸트 철학이 지금에도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을 존재자의 최고의 경지에 올려놓음으로써 그만큼 자신감과 자긍심으로 삶을 살아가게 해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행해야만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세 가지 질문을 가슴에 품어본다. 그럼으로써 내 삶의 깊이가 더 깊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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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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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눈앞으로 펼쳐진 눈으로 덮인 세상, 그 어떤 생명의 존재감도 찾을 수 없는 허허벌판 위로 남겨진 발자국, 둘이 함께였다가 잠시 떨어지는가 싶더니 하나가 되고,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그리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작별

이 책은 제12회 김유정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작별과 수상후보작으로 올랐던 6편의 작품을 담고 있다. 김유정 문학상이라는 묵직한 어감은 순수문학으로 그에 부합하는 수상작품에 대한 믿음 때문인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언제부터인가 손에 쥐어지는 책들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것들로 책장에 머무는 시간보다는 술술 넘어가는 재미가 더 컸다. 그라디가 마주한 이 책은 신선함으로 마음을 반짝이게 했다. 거기에 이제는 세계적으로 필력을 인정받은 작가 한강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설렘을 갖게 했다. 그리고 그 설렘은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신선함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겨울 어느 날, 벤치에서 잠시 잠들었다 일어나보니 눈사람이 되어버렸다는 말로 시작하는 이 이야기는 변신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7살 연하의 가난한 남자와 사랑을 하고 있는 여인은 스물넷에 결혼해 이듬해 아들 윤이를 낳았고, 이혼한 후 고등학생이 되는 지금까지 십년 째 혼자 키우고 있다.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되고 이혼을 하고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워야하는 여인의 삶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하루하루 버티어내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날을 보내면서 그녀는 자신이 삶에 대해 적극적인 의지보다는 삶의 한 부분을 채워가는 사물처럼 인식될 만큼 모든 것에 무심했다. 그래서 눈사람이 된 자신을 보고도 무덤덤했고 자신의 몸이 녹아버리기 전에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그렇다고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닌, 살아서 꼭 해야만 하는 거창한 것보다는 남자와의 만남과 아들 윤이와의 대화처럼 보통의 일상이었다.

눈사람이기에 눈물로 녹아드는 얼굴, 바스러지는 손가락, 둔감해진 감각이지만 여전히 따뜻한 심장은 녹아내림으로써 눈사람이지만 여전히 인간인 여인을 보며 마음이 아릿해진다. 심장의 온기로 사라질 여인은 삶과 죽음이라는 일상적인 것에서 벗어나 존재와 소멸이라는 깊이감을 더해준다. 그래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막연한 경계로 눈을 돌리게 된다.

툭하면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하면서 누가 건드리기라도 하면 덤벼들 기세로 마음의 날을 세우고, 그러다보니 세상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세월이 지나면 다 좋아진다는데 질기게 발목을 잡고 있는 어려움에 몸은 물론 마음까지 지쳐 삶의 의미마저 잃어버리게 되는, 우리네 삶이라는 게 자신의 의지와 생각대로 살아가는 날이 있고, 자신의 의지와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저 주어지는 날을 보내는 살아지는 날이 있고, 그런 날들이 반복 된다는 생각이다. 지금 나는 내 의지와 생각과는 상관없이 하루하루 버티어내는 살아지는 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면서도 언젠가는 내 의지와 생각대로 살아가는 날이 오리라는 희망으로 지금도 버티어내고 있다. 그런 나에게 작가는 한 숨 더 깊이 들어가게 한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와 소멸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렇게 반복되는 게 우리네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나는 존재와 소멸 그 어디쯤에 있는 것인지. 내 발자국은 하얀 벌판 위 어디쯤을 걷고 있는지.......

유년기 시절, 동생과 자신에게 강한 존재감을 주었던 오빠, 고등학생이 되고나서는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다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고 그 일로 부모님은 가해 학생들의 부모로부터 합의금을 받았다나는 사실은 분노와 굴욕감을 느끼에 했다. 그러면서도 부모는 살아있는 자식들보다 죽은 오빠를 그리워한다는 것도 이해하려하는 여인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다. 그리고 어린 윤이의 지나친 의지로 인해 생긴 문제로 사이가 벌어진 남동생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이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벌어진 일들로 감당해내야 할 감정들,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 등을 돌리게 되면서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지기에는 버거운 세상살이는 인간으로 남고 싶은 미련을 접게 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아들 윤이와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하고 싶은 감정은 인간으로 남고 싶은 일말의 바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스러져가면서도 뒤를 돌아보게 되는......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게 된다.

남편은 판견 근무로 인도네시아에서 지내고 어린 딸 민아를 시골 작은 마을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께 맡기고 자신은 학교 선생님으로 일하는 주인공, 그녀는 작은 시골마을에 살면서 여전히 이방인이었다 해마다 손이 없는 날 메주 빚던 풍습을 농한기 사업으로 발전시켜 마을 사람들을 쥐락펴락하는 이장, 반면 속으로는 자신의 잇속을 차리는 음흉하고, 공부도 잘하고 착하다는 말을 듣고 있는 용권, 그 아이 또한 드러내지 않고 집요하게 대진이를 괴롭히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하는 마을 사람들을 통해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악귀 손은 귀신이 아니라 각자의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우리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강화길 작가의

한밤중 들리는 섬뜩한 소리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데런, 떠나간 디엔과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디엔이 들려주었던 꿈 이야기를 곱씹곤 한다. 이 이야기는 몇 번이나 읽어야할 만큼 쉽게 다가오질 않았다. 어쩌면 디엔이 떠났다고 믿는 데런이 실은 죽은 게 아닐까. 그래서 모은 게 확실하지도 않고, 모든 게 의문투성이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끝까지 강한 여운으로 남아있는 부도덕한 스티치가 의미하는 것은 둘의 사랑이라고 못내 받아들이게 하는 권여선 작가의 희박한 마음

폐지 줍는 할머니와 얽힌 일로 시작된 오해. 차에 닿은 것은 종이상자묶음이었지만 언젠가부터 말이 돌고 돌아 뺑소니로 확정되고 그게 억울해서 사람들에게 묻고 직접 할머니를 찾아갔지만 결국은 내키지 않는 사과를 하는 두 여자, 그녀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것들을 다 알고 있는 동네사람들로부터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평범하게 동네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그녀들의 바람과는 달리 여자 둘이 산다는 게 아직은 우리 현실에서 쉽게 녹아들지 못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다는 사람들, 평범해 보이지만 자신들의 잣대에 어긋나는 것은 그냥 두고 보지 않는 집단주의에 주변을 돌아보게 하는 김혜진 작가의 동네사람

크고 화려하고 풍요롭고 자유로운 도시로 유명한 소돔, 하지만 실은 무자비하고 창궐하고 문란해서 하늘의 명령을 받고 소돔을 없애기 위해 내려온 천사들, 이십년 넘게 소돔에서 살아왔지만 여전히 나그네로 취급받는 롯, 그는 마을 사람들이 나그네들에게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려하자 막아냈고 그 일로 천사들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얻게 된다. 찬사들이 산으로 달려가라는 말에 그는 산보다는 작은 성에 살겠다며 그 성을 불태우지 않게 해달라는 간청을 했고 천사들이 청을 받아들여 소돔만 불태우고 작은 성은 남겨두었지만 롯은 그 성에서도 살지 못하고 결국 산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작은 성도 언젠가는 제2의 소돔이 될 것이며 인간의 본성, 이기적이고 배타적인. 그러면서도 순수한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준 이승우 작가의 하룻밤

자신보다 다섯 살 위로 같은 재단의 학교를 나오고 큰오빠와 동창이었지만 그 누구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평범한 인화언니. 정신이 바르지 않는 엄마와 함께 살며 전문대를 나와 독학사로 학사과정을 따고 조교로 일하는. 좋게 보면 장한 일이고 흔히들 말하는 학력세탁이었다. 하지만 겨울방학 내내 교수의 번역을 함께 하며 영선은 인화언니에 대해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최선을 다해 선택하고 최선을 다해 포기하고, 최선을 다해 먹고 최선을 다해 땀 흘리는. 그런 인화언니가 느닷없이 조교자리에서 물러나고 휴학을 하고 어느 날 나타나 1인 시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모든 게 교수에게 이의를 제기한 대가라는 사실에 답답해진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기를 쓰고 바질바질 마음을 다잡아도 현실은 힘 있는 자의 편에 서 있다는. 이 변하지 않는 답답함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그러면서도 나도 영선이처럼 금세 내 자리로 돌아올 것 같은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주는 정이현 작가의 언니

일본인으로 동경대를 졸업하고 우리나라로 유학 온 양코씨, 이대영문과 학생으로 양코씨와 친구로 지내는 태순, 둘은 보통과는 좀 다른 취항이 맞아 생각을 나누게 되었다. 그리고 인간환경계획연구소에 다니는 김수근, 세 사람은 당시를 살아가며 지금은 부적합하고 거짓이 사실처럼 인정되는 것들이 미래에는 바뀌리라는 기대를 갖는다.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어 이야기 속에서는 30년 후의 미래를 보여주지만 읽는 이에게는 오래전의 모습으로 색다른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2012년 태순이 바라보는 여의도는 오래 전 그들이 예견했던 미래로 지금 우리들이 내다보는 미래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해주는 정지돈 작가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

수상작으로 책 속에 실려 있는 작별을 비롯한 후보작 6편은 짧지만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한다. 그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마음을 헤아리기에 마주하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깨닫게 된다.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좋지만 두고두고 의문을 갖게 되는 것도 좋다는 것을, 하나의 작품 속에 담겨있는 작가의 온 마음을 함께 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해진다. 가슴 속에 자리 잡는다. 한 권의 책이 전해주는 모든 것들이 특별한 선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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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침착하지 못하고 충동적일까? - 여러 가지 사례를 만화로 소개하는 성인 ADHD 안내서
후쿠니시 이사오.후쿠니시 아케미 지음, 이호정 옮김 / 영진.com(영진닷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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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반짝입니다. 마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무기력한 날을 보내는 자신을 볼 때마다 은근한 걱정도 들었어요. 이런 저에게 이 책은 자신을 확실하게 아는 것은 물론 또 다른 삶의 방향을 짚어줄 것 같아요. 저자가 보여주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함께 하는 시간은 특별한 선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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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oming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자서전
미셸 오바마 지음, 김명남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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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겉표지에 미셸 오바마를 마주하니 마음이 반짝입니다. 미국최초의 퍼스트레이디가 들려주는 삶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얻게 해줄 것 같아요. 시카고 변두리에서 태어나 여성과 약자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미셸을 통해 진정한 용기를 품을 수 있기를. 인종차별에 맞서는 것은 물론 그 과정을 통해 얻은것들로 당당한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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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집 상구 보림 창작 그림책
유애로 글.그림, 유석영 사진 / 보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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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그린 책, 거기에 사진이 함께 하고 있는 이 책을 마주하는 순간 마음이 반짝였다. 마치 그동안 잊고 있었던 소중한 것을 되찾은 것 같은 설렘으로.......

 


 

20181017_141556.jpg


 

사진관 집 상구.’ 제목에서 느껴지는 정겨움은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단발머리 깡충이며 아무 걱정 없던 그 때를, 그리고 그 모습은 상구와 많이 닮아있었다.

상구와 누나 삼총사, 그리고 상구가 동생으로 여기는 독구와 병아리들,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사진관이 바로 상구네 집으로 사진사인 아버지는 사진관은 물론 밖으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는데 그럴 때면 근사한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녔다.

상구는 그런 아버지를 통해 사진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어보기도 했고 가끔씩 아버지를 도와드리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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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 두 장 책장을 넘기며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흑백사진에서 전해주는 아련함, 그 사진을 지금으로 옮겨놓은 듯한 알록달록 색으로 그려진 그림. 그리고 상구의 환한 웃음으로.

요즘은 대부분 휴대폰이나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사진관을 찾는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예전에는, 사지늘 찍으면 반드시 사진관을 찾아가 필름을 현상하여 사진으로 만들어주면 찾으러 가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바로 암실에서 이루어졌다. 지금도 기억난다. 수학여행이나 소풍을 다녀온 후, 사진관에서 사진을 찾아 확인해볼 때의 즐거운 웃음이....... 그리고 그 때의 즐거움은 한 장의 사진으로 지금도 사진첩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소중한 순간으로.

그러고 보면 휴대폰 속에 저장된 수많은 사진보다는 한 장의 사진을 손으로 만져봄으로써 더 많은 것을 전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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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구의 보통 일상은 색다른 즐거움을 전해주고 있다. 여름이면 강 건너 외할아버지 수박밭에 가서 수박을 먹고 즐기는 웃음을, 장날이면 장터를 휘젓고 다니는 동동거림을, 눈꽃처럼 쏟아지는 튀밥의 고소함을, 겨울 어느 날, 눈 내리는 날이면 친구들과 어울려 눈사람을 만들기도 하고 썰매를 타던 왁자한 즐거움에 밤이면 아랫목에 모여 앉아 고추감주와 찹쌀떡을 먹던 맛있는 즐거움도.......

정말이지 이렇게 어린 시절을 마주하고 있으니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마도 아이는 이 이야기를 머릿속으로만 그려볼 것이다 마치 옛날이야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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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내가 어렸을 때 이야기를 들려주면 반짝이던 눈빛 속에는 놀람과 부러움이 담겨있었다. 그러고보면 이렇게 글과 그림, 사진으로 함께 하는 이야기는 아이의 가슴 속에 자리 잡게 해주는 특별한 선물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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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와는 달리 금강 하류에 있는 강경에서 살았던 상구는 생새우로 담근 젓갈을 원 없이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강경 젓갈이 유명한 것을 보면 그 때 김장철이면 붐볐을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책장 깊숙이 꽂혀있던 사진첩을 꺼내어 한 장의 사진을 마주한다. 흑백사진 속에 얌전한 꼬마를 마주하며 이름을 불러본다. 사진관 집 상구가 전해준 따뜻한 웃음을 가슴에 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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