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은 엄마의 파업 이야기 희망을 만드는 법 9
다이애나 콘 글, 프란시스코 델가도 그림, 마음물꼬 옮김 / 고래이야기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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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의 책상위에 펼쳐진 이 책을 보고 순간 멈칫했다.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아련함은 나도 한때 권리와는 거리가 먼 노동자였기 때문이다. 그 아련함으로 책 속에서 만난 카를리토스는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엄마의 파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카를리토스는 할머니, 아빠, 엄마와 함께 멕시코에서 살다가 아빠가 돌아가자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할머니는 몸이 아파 약을 드셔야 하고, 카를리토스는 학교에 다녀 아직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했지만 청소부 일을 하는 엄마 혼자의 힘으로서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빌딩이 비는 늦은 밤부터 아침까지 일을 하고 대신 낮에 잠을 자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거기에 힘들게 일한만큼의 정당한 대우도 받지 못했다.

갑자기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카를리토스 엄마의 지친 모습 속에서 잊고 있었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단발머리 깡충이며 아무 걱정 없던 그 때, 아버지께서는 시내에서 작은 구둣방을 하고 계셨고 어머니도 함께 일을 거드셨다. 그러나 가진 것 하나 없이 넷이나 되는 자식을 뒷바라지하기에는 형편이 너무 어려웠고 결국 내가 그 짐을 나누게 되었다.

내 손을 잡고 울음을 삼키시던 어머니의 젖은 눈빛을 지금도 나는 기억한다. 맏이라는 이유로 남들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다닐 나이에 나는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실밥 다듬는 일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숙련된 미싱사가 될 때까지 나는 뿌연 먼지 속에서 낮과 밤이 뒤바뀐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가뜩이나 몸이 약했던 나는 결핵에 걸려 식구들과 격리되어 한동안 하얀 알약을 한 웅큼씩 집어 삼켜야 했고 개고기를 밥 먹듯 먹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나는 다시 일터로 나가야 했다. 그렇다고 누구를 원망하기 보다는 당연히 내가 해야 할 몫이라는 생각으로, 조금이나마 내가 부모님께 힘이 되어준다는 생각에 기쁘기까지 했었다.

그 때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그저 돈을 벌여야 한다는 생각에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노동자는 언제나 약자이고 자인 경영주가 노동자의 권리를 찾아주어야 하는데 그러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에 급급했으니. 그리고 그 때는 사회분위기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으니.

그러면서도 자꾸 아쉬워지는 것은 그 때에도 카를리토스의 엄마처럼 누군가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애를 썼다면, 나도 거리로 나가 행진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엄마는 좀 더 나은 노동조건을 얻기 위해 다른 노동자들과 함께 조합을 결성하고 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다. 다음날부터 엄마는 거리로 나가 조합원들과 함께 행진을 하고, 인터뷰도 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했다. 카를리토스는 엄마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읽어주는 신문기사를 통해 파업에 대해 알게 되었고 엄마를 돕기 위해 반 친구들과 함께 손 팻말을 만들어 행진에 참가한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로페즈선생님의 할아비지도 농자노동자들과 함께 파업을 통해 권리를 찾았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카를리토스가 엄마와 주변을 통해 파업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것은 물론 노동자의 권리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리지만 그 일이 옳다는 생각에 손 팻말을 들고 행진에 참여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단 몇 줄로 요약된 글로 배우는 것보다 체험을 통해 배우는 것이야말로 산교육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란 카를리토스가 노동자가 되었을 때는 노동자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앞장설 것이다.

3주일동안 이어졌던 파업은 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동참에 힘을 입어 승리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카를리토스의 집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거실 벽에는 카를리토스가 만든 손 팻말이 걸려있고, 할머니는 아픈 게 많이 좋아졌고 엄마는 자주 웃고, 주말이면 공원으로 놀러가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다른 노동자들에게 도움요청이 오면 두 말없이 달려가고.......

 

노동의 대가인 임금이 인상되고, 보다 나은 노동조건은 일하는 즐거움은 물론 일의 보람도 갖게 한다. 그래서 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되고, 일의 능률도 올라 결국에는 경영주에게도 이익이 돌아가고, 노동자와 경영주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취약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노동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의 존재로 노동자들이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노동현장은 내가 일했을 때보다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개선될 부분이 많다. 가까운 예로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의 파업투쟁, 화물차 운전노동자들의 파업 등의 소식을 접할 때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을 얻게 되길 바라곤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우리들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도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내가 경험했던 열약한 노동환경을 다른 그 누구라도 경험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늘 저녁에는 아이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그리고 카를리토스가 보여준 엄마의 파업현장을 둘러보며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서도 알려줘야겠다. ‘나는 엄마를 사랑합니다. 우리 엄마는 청소노동자예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그 무엇보다 든든한 손 팻말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이 보다 좋은 노동조건에서 일의 즐거움과 보람으로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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