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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이정서 지음 / 새움 / 2014년 3월
평점 :
‘당신들의 감동은 위험하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강한 어감은 풀어헤쳐진 마음을 바로잡게 해주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내 손에 길들여진 책과는 전혀 다른 내용에 대한 부담으로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내가 모르고 있던 것들을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소설을 쓰고 번역을 하는 저자가 우리들이 책을 읽을 때는 명성이나 권위, 미디어 보다 실제 눈앞의 문장을 보고 판단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
이 이야기에서 만난 첫 번째 인물은 문학평론가이며 대학원생인 이인서이다.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이미 일간지의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고 잡지의 비평상을 받음으로써 문학비평을 시작했으며 지금은 서른 살의 나이로 조교 생활을 하고 있는데 경제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지만 훗날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꽤 탄탄한 출판사의 편집장인 지우형로 그는 원고를 택해 책을 출간하는 일은 물론 출간될 책을 홍보하는 일도 함께 했다. 류성문은 대학교수이자 평론가로 지우형의 출판사에서 곧 책이 출간 될 필자이다. 나름대로 그는 문학에 대한 기준을 갖고 있었는데 어떤 작품이라도 그것이 문학이라면 법적인 잣대로 재단해서는 안 되고, 그에 대한 판단은 독자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문학도 공동체를 지켜가기 위한 도덕률 같아서 그 나름으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그는 유부남이지만 자신의 강의를 듣던 학생으로, 다시 자신이 적을 둔 대학의 대학원생으로 들어온 한혜원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그녀의 시집을 출간할 수 있도록 힘을 써준다.
정세진은 이인서의 선배로 대학시절에는 대학문학상 공모전에서 소설부문으로 당선을 했지만 졸업을 앞두고 소설쓰기를 그만두고 출판사에 취직해 사회에 진출했고 지금은 출판사의 사장이다. 그와 가깝게 지내는 김진현은 잡지사의 기자로 언제나 낡은 점퍼차림에 민완형사 차림이지만 날카로운 분석적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책속에서 만난 이들의 공통점이 문학으로 내용에 대한 궁금함에 앞서 그들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 만들어진 책을 내 손에 쥐는 것부터가 시작이었고 그 이전, 그러니까 책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책을 만드는 이들, 글을 쓰는 이들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한 권의 책 속에는 저자의 바람은 물론, 그 외의, 아니 더 큰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만난 다선 명의 인물 중에서 비슷한 부류를 따져보면 보이지 않은 힘에 나름대로의 가치관을 지키기 위해 대응하고 있는 이인서와 정세진 사장, 김진현 기자이다. 이들 세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해야 누구나 그에 대해 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나름의 의지를 갖고 있다. 그러고 보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바라는 일을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지우형 편집장은 출간할 책의 저자로는 어느 정도의 권위와 명예가 있는 이로 정해 위험부담을 없애고 책을 출간하면 잘 팔릴 것을 목적으로 언론의 힘을 빌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으로.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대학교수에 평론가라는 권위와 명예에 맞게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래서 어떤 일이라도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을 꺼려하고 대신 옳지 않은 일에도 자신의 이익을 위 눈 감아주기도 한다. 이들 중에 이인서와 김진현 기자, 정세진 사장에게 마음이 끌리는 것은 그래도 우리 세상은 올바른 가치관이 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이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있는 김윤식 교수의 표절 사건은 정세진사장과의 만남에서 김진현 기자의 입을 통해서 시작되었다. 김윤식 교수는 한국 문학계의 대통령 같은 사람으로 저서가 백 권에 이를 정도로 그가 이룬 학문적 성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런 그가 일본 평론가의 논문을 표절했다는 소문이었다. 정세진 사장은 김윤식 교수의 표절 사례를 쓴 사람이 인서라는 것을 알고 원고를 직접 읽게 되었고 표절이 사실임을 확인하고는 김진현 기자에게 그 원고를 보여주었다. 김진현 기자는 그 사건을 크게 다루기로 작정하고 인서를 만났다. 인서가 정세진 사장의 출판제의를 거정하는 이유는 예전에 교수들에게 더 이상 분란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약속 때문이었다. 하지만 김진현 기자와의만남을 통해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게 되었고 책을 내기로 결심한다.
나는 김진현 기자의 고집스러운 올곧음에 마음이 든든해졌다. 김교수의 표절이 확실한데도 언론이나 학계에서 쉬쉬하는 것은 김교수가 쉽사리 범접할 수 없는 인물로 그의 표절은 인정하게 되면 자신들의 입지까지도 우스워지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니 쓴 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언젠가는 그 일이 밝혀지리라는 사실에 몸을 사리는 언론의 모습은 우리 지식인 사회가 갖고 있는 일그러진 풍경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바르고 옳은 힘은 그 상대가 아무리 거대해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 힘의 주체가 힘없는 개인일지라도, 그 때가 지금이 아니더라도.......
‘말’잡지를 통해 기사가 나가고, 정세진 사장의 출판사에서 인서의 책이 ‘타는 혀’로 출간 된 후, 김윤식 교수 쪽에서는 움직임이 있었고 류성문 교수를 비롯한 대부분의 인사들은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나타냈으며 정세진 사장의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은 한 신문사의 지면에서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인서는 모교 교수들까지 학문적 의욕을 인정하지 않고 비난하는 분위기에 자퇴서를 내고 말았다. 그는 구조와 맞서 고립된 한 개인이 싸울 때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희생양의 딱지라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나는 인서가 결국에는 자퇴를 결심하는 모습에 안타까워졌다. 김윤식 교수의 표절보다는 학문적 의지에 목적을 두었던 자신의 뜻과는 달리 대부분의 교수들은 비난을 일삼는 것은 물론 은근한 협박도 서슴지 않았고 결국에는 인서가 버틸 수 없으리라는 생각에. 그리고 이런 문제가 아직은 상업성 보다는 진리를 탐구하고 논의하는 지식인들을 통해 나오는 책을 두고 일어난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들에게 정신적으로 깨달음을 주고 내일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해주는 책, 그 책이 원고를 쓰는 이부터 권위와 명예를 입은 이들로, 출판사의 철저한 마케팅으로 언론에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책 사재기를 하고, 그렇게 해서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책을 통해 깨닫고 느꼈던 것들이 미리 정해져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저자의 우려처럼 우리들의 감동은 위험한 것일까? 마음이 무거워진다. 책꽂이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들이 존재감을 잃어버린 것 같아 허탈해지기까지 한다.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책은 책이다. 책을 통해 얻은 감동은 물리적인 것으로 대신 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으로 삼고 삶의 희망과 지표가 되는 것이다. 다만 그 감동이 위험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 모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앞으로는 책을 살 때 서점가의 베스트셀러에 연연하기 보다는 직접 서점에 가서 많은 책들을 접해보고 고를 수 있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인서의, 정세진 사장의, 김진현 기자의 바람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