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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랩
멜라니 라베 지음, 서지희 옮김 / 북펌 / 2016년 9월
평점 :
저녁 늦은 시간에 책읽기를 시작하다 평소 잠드는 시간을 지나치면서 내일 일정 때문에 책을 덮고 잠을 자기 위해 불을 꺼야하는 날이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마무리 될지가 너무 궁금해서 다시 불을 밝히거나 아예 새벽에 일어나 책을 마저 읽어야 할 때가 있는데 이번에 《트랩》이 나의 규칙적인 생활리듬에 작게 타격을 주었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 책 읽기를 마쳤기 때문이다.
《트랩》은 말 그대로 함정(trap)이다. 심리 스릴러 소설로 12년 전에 동생을 잃고 그 이후 자신의 집 안에서만 살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인 ‘린다’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끊임없이 공포와 싸우고 바깥세상과 자신의 삶을 엄격히 구분하며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텔레비전을 통해 자신의 그 오랜 공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고 그 공포를 근본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함정 trap'을 치밀하게 준비한다.
동생을 죽인 살인범의 신분에서 유명 언론인으로 변한 남자, 그 남자로부터 자백을 받아내고자 하는 피해자의 언니인 린다. 이 두 사람의 밀고 당기는 심리전이 아슬아슬하게 펼쳐진다. 심리 스릴러 소설은 그 심리의 흐름에 따라 호흡이 가쁘고 문체는 거칠게 생략되며 표현되기도 한다. 그런데 《트랩》의 문체는 정말 사실적이고 그 주변의 상황이 대단히 아름답고 섬세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긴박함이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 마치 창 밖 세상은 사나운 폭풍우에 나무가 바람에 휘날리는데 안전한 실내에는 쾌적한 에어컨이 가동되며 은은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것처럼 작가의 멋진 필력에 함께 녹아있다.
《트랩》을 읽는 동안 ‘선’과 ‘악’, ‘확신’과 ‘불확신’, ‘나의 계획’과 ‘타인의 의도’ 등 상반되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때로 감당할 수 없는 큰 일이 생겼을 때 가족 간에도 불협화음과 불신이 생기곤 하는데, 이 책의 주인공 ‘린다’도 그런 상황에 맞닥뜨렸다. 자신이 목격한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경찰과 가족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사실인지 결정적인 순간에 혼란스러워 한다. 자신이 본 것과 이해한 것이 자신이 계획한 함정에서 벗어나 버리는 순간에 또한 자신을 의심한다. 어쩌면 우리는 완벽을 추구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완벽이라는 것이 나 자신의 세계에서만 완벽임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트랩》은 오랜만에 읽어본 심리 스릴러 소설로 그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이 들었다. 등장인물의 심리를 주관적이면서도 객관적인 시각으로 섬세하게 다룬 필자의 문장력에 감탄하며 읽을 수 있었다. 머지않아 영화로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아주 기대가 크다. 새벽잠을 포기해야 했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