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다 노클린이 저널에 기고한 두 가지 글을 담은 책으로, 발표 50주년을 맞아 새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는 1971년에 《아트뉴스》에 실렸다. 우선 미술계에서 작가의 성별로 나누어 그 특징을 지어보려던 때에 당시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 질문(제목)에 반박했는지를 나열한다. 그리고 저자는 질문이 의도하는 바에 딸려가지 말라고 조언한다. 그리고 기존 시각을 틀어서 근본적인 사회적 배경의 문제, 전제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한다.책을 읽으며 유의할 점은, 1970년대 초에 이 글로부터 시작된 반전과 연구로 2022년에는 과거와 다른 시각이 깔려있음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 현재 우리가 50주년의 이 글을 읽는 의의는, 생각의 전환을 이룬 이 글이 당대 얼마나 충격을 주었을까 생각해보면서 지금 우리에게 당연한 것 중 전환이 필요한 게 무엇일지 생각해보게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50년간 이루어진 많은 논의 중 우리가 궁극적 도달점으로 여겨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자면 초심을 생각해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한다.과거를 흑백 사진으로밖에 확인할 수 없는 나에겐 무채색의 세상처럼 느껴지는 1971년. 이때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이 제목의 질문에 통상 하게되는 반박이 사실은 묻는 자의 생각을 강화해준다는 것을 어떻게 간파해냈을까. 질문자가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저자는 질문과 답변 후의 효과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한 것이리라.이어진 글 <왜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었는가? 30년 후>는 《밀레니엄 시대의 여성 미술가들》에 2006년 발표되었다. 과도기임을 인식하고 지금의 문제를 또다시 논의한다.나는 사실 미술하면 조형이 더 친숙한 사람이라, 어쩔 수 없는 성별의 차이가 있음을 알고 있다. 일단 힘에 부치면 작품 크기부터가 줄어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회화에서 성별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처음 알았다. 어쩌면 50년간의 발전으로 채 의식하지 못하고 살 정도로 나아졌다는 것일수도.내가 생각하지 못한 세상의 이상한 점을 민감하게 알아채고, 문제의 근원을 간파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