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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 이 문장이 당신에게 닿기를
최갑수 지음 / 예담 / 2017년 2월
평점 :
책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는 이미 사랑에 빠진 기분이었다. 카페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손만 뻗으면 닿는 위치에 맛난 아메리카노를 끼고 핑크빛 냄새가 솔솔 풍기는 최 갑수님의 책을 집어 들었다. "이 문장이 당신에게 닿기를" 바란다는 표지의 문구를 읽는 순간, 작가의 진심 어린 구애는 애인의 따뜻한 입김처럼 내 마음을 살랑거리게 한다.
"영원히 살 수 없으니까 사랑을 하는 거다." ㅡ 허연, 「 신전에 날이 저물다 」 47p.
책은 작가가 사랑하는 영화, 책, 노래의 문장들이 작가의 사진과 글과 함께 엮여져있다. 사랑에 빠지고 사랑에 설레고 사랑에 아파하고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내뿜는 몸짓의 언어들이다. 사람들은 그 구절들을 읽으면서 자신의 사랑을 떠올릴 것이다. 나 역시 소싯적 사랑이라는 감정에 이끌려 시를 짓고 편지를 썼던 추억을 떠올렸고, 혹시 그 사람과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같은 버스정류장을 두 번 세 번 지나갔던 기억도 소환되었다. 사랑에 목말라하고 사랑에 몸부림쳐본 사람만이 꺼낼 수 있는 마음의 편린들이 곳곳에서 후드득 떨어져내린다.
"그리움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답고 선명하다. 어쩌면 우리는 그리워하기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닐는지." ㅡ 119p.
그의 책은 갈피마다 그리움으로 가득 차있다. '지난해 이맘때 포크로 반듯하게 잘라 당신 입에 넣어주던 카스텔라'가 존재하는 그 봄을 쫓아간다.
사진들은 쓸쓸한 그의 마음을 닮았다. 정면으로 다가가 눈을 마주치고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그는 여행지에서 만난 풍광과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기 보다 자신의 프레임 속으로 사랑을 자연을 음악을 들여놓는다. 그는 사랑이라는 물체에서 한 걸음 물러나있다. 작가가 사람들의 채취를 훔쳐보고 소유했듯이, 사진 곳곳에 남겨진 여백 속에서 나는 그의 쓸쓸함을 엿보았다. 해변의 모래사장, 텅 빈 도로, 연한 잿빛 하늘, 검푸른 수면, 작가는 그런 빈자리에 사랑을 채우려는가 보다.
그래서 그는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만난 풍광과 사랑에 빠지고 돌아와서는 음악을 들으며 사진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여행과 나눈 사랑의 달콤함을 되새긴다.
아마도 그는 여행이라는 연인을 만날 때 가슴 설레고 돌아와서는 두고 온 연인을 그리워하며 가슴앓이 하다가 또다시 만날 새로운 연인을 꿈꾸는 사랑을 나누나 보다. 사랑은 삶이어야 하는데 그에게 사랑은 여행이다. 눈 감고도 짓는 아침밥이 아니라 사랑 앞에서 여전히 길을 찾아 헤매는 낯선 이방인이다. 그것이 그의 사랑 방식인 것 같다. 그의 사랑은 뜨거운 삼바 리듬의 열정적인 춤사위가 아니라 쨍하게 청명하고 쌀쌀한 가을날 호수의 잔물결 같다. 그가 남겨둔 사진의 빈자리를 응시하면서 빈 마음을 채우고픈 사람들은 그의 사랑 예찬에 공감하고 위로받을 것이다.
'사랑보다도 더 사랑한다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그대의 손길이고 눈빛이고 입술이어라.' 그리고 '사랑해'라는 달콤한 말 한마디다. 이것은 해석을 거치지 않고 전해지는 원초적인 언어다. 들어도 들어도 닳지 않고 모자람이 없는 '사랑'이라는 울림은 가식과 거짓을 초월한 순수한 고백이며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을 맹세하는 아름다운 헌신이다.
우리의 삶은 이런 순간의 모음이다. 지금 이 순간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 사랑은 언제나 우리의 천국이고 안식처이며 여행의 종착역이다.
"우리의 하루는 오늘도 하루만큼 지나갔고, 언제나 시차 부적응인 이 삶의 허망을 위로할 방법은 어쨌든 사랑밖에 없을 테니......" ㅡ 프롤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