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빼기의 기술 - 카피라이터 김하나의 유연한 일상
김하나 지음 / 시공사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카피라이터 출신 작가인 김 하나가 짬짬이 써놓은 5장을 넘지 않는 분량의 에세이 모음이다. 1부는 한국에서 고양이와 친구들과 가족 이야기가 등장하는 일상을 소재로 했고 2부는 여행지 남미에서 반 년을 지내는 동안에 겪은  사연들로 채워져있다.

목차가 쓰인  페이지의  여백 사이로  표지에서 본 수영복 차림의  여자가 둥둥 떠다닌다. 아등바등 열심히 물살을 가르며 치고 나가는 수영이 아니라 편안하게 단지 부유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거기서부터 벌써 힘 빼기의 기술을 제대로 보여주는 느낌이 들어 좋았다. 

프롤로그 부분에서 소개되고 있는 작가의 집안 분위기는 내가 자란 환경과 너무 달라서 이질감을 느꼈다. 어쩌면 내가 힘 빼기가 안돼서 힘든 것이  집안 분위기 탓인지 모른다. 우리 집은 한 푼의 돈도, 한 시간의 노동도 의미 없는 곳에 허투루 소모되는 걸 용납하지 않으셨던 분위기라, 나 또한 쓸데없이 빈틈없게  살려고 애썼던 게 아닐까? 여전히 진지하고 심각한 태도를 버리지 못해 대충 살기를 어려워한다.
그런 이유로 이 책 제목을 본 순간 내게 필요한 책이라는 강한 끌림으로  선택했고  새로운 얘기들이 나를 이끌어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작가의 표현마따나 "만다꼬"는 상대의 행동에 대해 살짝 핀잔주는 뉘앙스를 풍기는 단어다. 무엇을 시도하려는 사람의 의욕을 꺾는 허무주의와 무기력을 조장하는 말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는 이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작가는 너무 오랫동안 자주 집에서 들어 무의식에 강력하게 자리 잡은 단어가 '만다꼬'라는데 그럼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하면서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세월을 만들어간 걸 보면 어떤 태도를 갖는가는 집안 분위기 탓 만은 아닌 것 같다. 암튼 나에게는  당찬 모험을 즐기는 그녀의 일상이 부러웠다.

"힘을 빼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줄 힘이 처음부터 없으면 모를까. 힘을 줄 수 있는데 그 힘을 빼는 건 말이다.
(......) 주삿바늘 앞에 초연한 엉덩이처럼, 힘을 좀 뺀 것들이 세상의 긴장을 좀 더 유연하게 만든다."
     ㅡ44, 46p

짧은 이야기라 읽는 부담이 없다.  그러나 짧다고 해서 대충 얘기를 하다마는 함량 미달의 글은 없다. 각 꼭지마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게 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지가 카피라이터다운 깔끔한 문체와 솔직한 성격을 반영한 소탈한 표현  속에  따뜻함까지 묻어서 다가온다. 유쾌하지만 지나치게 친한 체하지 않고 유익하지만 조금도 가르치려는 권위는 없다. 딱 술 한 잔 하면서 일과 우정과 연애에 대해 오손도손  담소 나누기에 적당한 사람 냄새를 풍긴다.

단숨에 읽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책이었지만, 더운 여름날 달리 갈 데가 없고 특별히 일을 벌이기도 싫다는 핑계로 책을 든 김에 내쳐 읽어버렸다. 덜렁덜렁하지만 호기심 많고 항상 친구들을 위해 집을 개방해두는 낭만적이면서 화끈한 작가의 매력에 빠져 더운 여름날을 잘 쉬었다. 이 책은 다음에 또 휴가처럼 쉬고 싶을 때 꺼내 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여름 둥둥 떠다니는 편안함을 느끼고 싶은 분이라면 힘 빼고 읽을 수 있는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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