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지음, 이유진 옮김 / 푸른숲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이 슬프다. 절대로 그럴 수 없는, 절대 그래서는 안되는 사람인 엄마가 자식이 죽기를 바랐다는 것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발생한 것을 암시한다.  얼마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으면 차라리 죽음을 바랄 수밖에 없는 지경에 내몰렸을까를 생각하니 책을 만나기 전부터 살짝 긴장하게 됐다.

12살이 던 어느 날 갑자기 쓰러져 의식불명이 되고 4년 후 깨어났지만 이후 9년 동안 마틴 피스토리우스는 손을 흔들어 보일 수도 목소리를 낼 수도 없어 자신이 깨어있음을 표현할 길 없는 유령으로 살아간다. 인간 사회에서 소통하지 못한 인간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취급을 받지 못한다. 소리 없는 목격자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 쓸모없는 몸 안에 갇혀 절망에서 환각까지 두로 탐험하고 다니는 그의 정신이 그래도 자기가 살아있음을 누군가 알아줄지 모른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 장면은 측은하고 가슴 뭉클했다.

햇빛과 그림자가 떨어지는 모양만으로 시간을 파악하고 그렇게 시간이 무한함을 이해한다. 자신을 둘러싼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을 일초 단위로 셀 수 있고, 자신의 신체에 내리는 고통을 산산이 부셔 조각조각 느낄 수 있었다니 마치 모든 욕망을 초월하여 고요함의 경지에서 평정심을 체득한 도인의 경지를 보는 듯하다. 숫자를 세면서 자신을 데리러 올 아빠를 기다리는 어린 남자에게 기다림은 얼마나 간절한 희망이고 또한 가혹한 형벌이었을까? 아빠와 동생의 말에 농담을 건넬 수 없지만 그래도 마음은 늘 그들과 함께 TV를 보면서 함께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고정관념이라는 상자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은 아니냐고. 식별되기는 '까다로운 아이' '가식적인 연인' '무던한 배우자'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그 상자 속의 내용물을 알아주지 않으니 갇혀있는 상태와 다를 바가 없다고. 우리는 심지어 자신조차도 자기의 내용물을 제대로 모른 체 살고 있지는 않은지 물을 일이다.  

처음 그가 컴퓨터 스피커폰으로 동생에게 "안녕, 킴. 행복한 크리스마스 보내."라고 말했을 때, 나의 눈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목은 뜨거워졌다. 기분 좋은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갇혀있던 몸에서 풀려나 그의 영혼이 자신의 삶을 되찾는 순간이 내게도 기쁨이었다.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릴 때마다 절망의 늪에서 기어올라온 그의 용기와 행운을 축하해주었다. 마치 세상에 태어나 주변 세계와의 의사소통을 연습하는 영아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우리 모두에게도 있었지만 기억에서 지워진 영아기의 체험을 의식 있는 어른의 구술로 대신 듣고 있는 것 같다. 처음으로 색깔 이름을 배우고 욕구를 예, 아니오로 표현하게 되고 희망과 기대와 좌절과 절망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 때의 경험을 엿보는 듯 새롭다.

그를 돌보는 가족들의 사랑과 가족을 사랑하는 그의 간절함이 나를 감동시킨다. 아마도 그런 절실함이 그를 다시 깨어나게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서 더 멋진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그의 노력이 가상하다. 그가 원했지만 감히 꿈꿀 수조차 없었던 완벽한 여자를 만났다. 사랑을 알고 사랑을 만들어가는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싶다면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에서 중요한 것을 찾을 수 있으리라.  아름다운 사랑의 힘을. 

그는 잃어버린 시간의 강을 건너서 이제 막 감각이 깨어나는 기쁨을 누렸고 자신의 능력을 계발해가는 성취감을 맛보았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더 강해지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삶이란 이 단순한 공식 말고 더 특별한 무엇이 있겠는가? 행여 반복되는 일상이 권태로우신 분, 매번 신나고 판타스틱 한 일을 하고 있지만 돌아서면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으신 분, 지금 자기가 쓸 수 있는 시간의 의미가 얼마나 특별한 것인지 감각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어쩌면 이 책이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 자신을 사랑할 용기를 주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