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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와 우연의 역사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휴머니스트 / 2020년 8월
평점 :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작가가 궁금했습니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도 등장했죠. 그 때 처음 알게 돼 19세기~20세기 초 오스트리아 역사에서 또 다시 등장하더군요. 프로이트, 클림트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언급됐지만 앞의 두 인물에 비해 츠바이크는 상대적으로 베일에 싸여있어 궁금증을 자아냈습니다.
물론 국내에도 몇 가지 작품이 번역돼 있습니다만, 어쩐지 쉽게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 책을 통해 거장의 페이지를 훔쳐볼 기회를 얻게 된 셈입니다.<광기와 우연의 역사>는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본인의 장기를 십분 살려 쓴 작품입니다. 역사적 인물의 심리와 상황을 그 자리에 함께 선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그는 특정 인물과 그들의 결정적 순간이 역사의 변곡점이라고 인식했습니다. 다만 보편적인 순간을 선택하는 대신 조금은 자의적인 선택을 했습니다. 레콩키스타도르 바스코 발보아가 그렇습니다. 최초로 다리엔 지협을 건너 대서양에서 태평양까지 건너간 사람의 이야기. 국내에는 거의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탐욕과 명예욕, 원주민에 대한 잔인함과 기독교인으로서의 신실함을 함께 지닌 사람이 어떻게 영광을 손에 넣고 끝내는 몰락했는지 츠바이크는 생생한 필치로 써내려갔습니다. 에스파냐인 스스로조차 광기에 몸을 떨었던 식민지 개척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 인물이라 할 수 있겠죠. 우연히 작곡한 라 마르세예즈가 혁명의 상징이 되어 프랑스와 유럽에서 불리게 된 루제 드 릴의 이야기도 흥미롭습니다.다만 좋은 이야기꾼이라는 츠바이크의 장점은 곧 단점이 되기도 합니다. 엄밀한 교차검증으로 무장한 현대 역사가의 태도와는 차이가 있으니까요. 인물의 심리 묘사는 다분히 작가 스스로의 상상과 과장을 더해 서술됐습니다. 상징적인 특정 인물을 부각하고, 특정 순간을 부각한다는 점도 최근에는 지양되고 있는 영웅주의 사관과 맞닿아 있어 주의해 읽어야 하는 지점이라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