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에스더 헤르호프 지음, 유혜인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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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좋게 서평 이벤트로 읽게 된 추리 소설 <악연>. 따분할 때 추리 소설만큼 흥미로운 놀이도 없는 것 같다. 내용에 대한 충격이 가시지 않아 서평을 쓰는 시간은 계획보다 늦어졌지만 <악연>은 최근 읽은 추리 소설 중 가장 빠르게 완독한 책이다. 그만큼 전개가 편안하고 플롯도 다소 단순한 편이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느냐 절대 그렇지 않다. 스릴러의 묘미는 '도대체 (범인이 왜 그러는지) 이유가 뭘까'이다. 이 궁금증 하나로 마지막까지 책을 놓지 못하게 한 책이 <악연>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읽는 순간 커티스 핸슨 감독의 영화 <요람을 흔드는 손(1992년작)>이 떠오른다. <악연>의 주인공 헤네퀸은 영화 <요람을 흔드는 손>에서 가족과 아기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완벽하게 연기한 금발의 레베카 드 모네이를 연상시킨다. (어릴 때 본 영화인데도 그녀의 외모와 표정, 몸짓이 지금도 생생하다.) 실제로 <악연>의 원제는 <Close to Cradle>이다. '요람 가까이', '요람 깊숙이' 정도로 해석되겠다. 하지만 국내에 출판되면서 <악연>이라 번역한 것 같다. ('요람'은 우리에게 다소 이질적이니까 제목을 선정할 때 꽤나 고민을 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처음 제목을 보았을 때 다소 진부하고 왠지 여성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여성 작가의 작품인지도 몰랐는데도) 원제를 알고 나니,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니 고개가 끄덕이는 제목이다. <악연>은 세 여자들의 얽히고설킨 관계를 밝히는 이야기며 다소 막장 드라마와 같은 전개와 사이코패스 같은 여주인공의 사악함에 혀를 차며 읽게 된다. 이야기 서술은 전지적 작가 시점이면서 동시에 주인공 '헤네퀸'의 입장과 심정이 곁들여 있다. 그녀가 속으로 내뱉는 말을 독자는 읽을 수 있기 때문에 그녀의 속내에 더 섬뜩해진다. 덕분에 사건이 발생하기도 전에 벌써 기가 막히고 "뭐 이런 X이 다 있어?"욕도 나온다.

주인공의 이름 '헤네퀸'은 영어 이름치고 어쩐지 생경하고 독특해 보였는데 처음엔 그냥 네덜란드 말이라 그런가 생각했다. 그러나 이 이름에도 의미가 있었다. 이름의 뜻과 함께 왜 그녀의 이름이 헤네퀸인지 밝혀지면서 작가가 무척이나 '헤네퀸'이란 인물에 심혈을 기울였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물론 어떻게 그녀가 이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알게 되면서 그녀의 행동과 심리가 다소 유치하다는 인상도 받았다. 결론적으로 소설 <악연>은 여자가 한을 품으면 얼마나 과감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한 사람의 사악한 행동은 또 다른 이의 무지한 질투로부터 비롯될 수 있다는 교훈도 주려고 한 것 같다.

헤네퀸을 뒤쫓는  또 다른 주인공 미리암의 존재는 이 소설의 따뜻한 축을 맡고 있다. 하지만 경찰 신분임에도 우유부단한 태도와 추적 와중에 별안간 로맨스 때문에 멈춰 서는 모습은 정말 답답했다. 그리고 동료 경찰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 지나치게 겁먹는 모습은 다소 거슬렸다. 그만큼 치밀한 헤네퀸과는 대조적이면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리기 위한 작가의 장치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악연>은  '네덜란드 범죄 소설의 여왕'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는 네덜란드 작가 '에스더 헤르호프'가 쓴 소설이다. 작가는 여성이다. (여자라서 그만큼 여자의 심리를 잘 표현했다.) 이 책은 '네덜란드 올해의 책', '황금 올가미상'에 노미네이트되었고, 네덜란드 최고의 범죄소설에 수여하는 '헤반 크라임존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곧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고도 하는데 정말 19금 잔혹, 섹시, 먹먹한 스릴러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마디로 <악연>은 단박에 읽을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중독성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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