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
라르스 케플러 지음, 김효정 옮김 / 북플라자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흠뻑 빠져든 추리 스릴러를 만났다. 

무기력감과 우울감 때문인지, 단순히 춘곤증 때문인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그저 드러눕고만 싶을 때, 하지만 마음이 원하는 대로 방바닥에서 며칠씩 충분히 뒹굴어줬건만 영 컨디션이 회복이 안 된다면? 단언컨대, 추리소설이 제일 가는 처방이다.

죽어 가는 집중력과 활력을 제대로 일으켜 세워준 추리 소설, 바로 북유럽 최고의 스릴러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스웨덴 부부 작가가 공동으로 쓴 <스토커>다.

'스토커'는 제목과 표지 디자인만 보면 분명 어떤 사이코 집착남(혹은 여자)의 집요한 스토킹과 이를 막기 위해 누군가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이야기가 예상된다. 하지만 모든 추리 소설이 그러하듯 그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롭고 촘촘히 전개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스토커

저자 라르스 케플러

출판 북플라자

발매 2017.04.01.

출간 즉시 스웨덴 베스트셀러 1위로 직행하고, 지금까지 전 세계 40개국에 출간되고 600만 부가 돌파되었다는 <스토커>를 두고 『타임』은 "인간 내면의 어둠을 이끌어낸 북유럽 최고의 스릴러"라는 찬사를 보냈고, 스웨덴 스릴러 매거진은 "이 책을 펼치는 순간 밤을 꼴딱 새워야 한다"라고 호평했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까 설렘과 긴장감으로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주저 없이 사건이 시작된다. 이미 살인은 발생했다. 그 살인에 대한 단서는 오직 국립 범죄수사국에 날아든 의문의 유튜브 영상 링크뿐이다. 유튜브 영상 속에는 살해된 여성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담겨 있다. 잠시 후 자신에게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평화로운 혹은 지루한 일상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보내는 모습이다.

캄캄한 밤, 밖은 보이지 않은데 당신의 방 안은 환히 밝혀 있다. 누군가 당신의 움직임을 창문으로 지켜보고 있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당신은 밖이 보이지 않는데 말이다. 아,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게 오싹하다. 그리고 그가 잠시 후 집 안으로 성큼 들어온다면? 너무 놀라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것 같다.

이처럼 범인은 혼자 있는 여성을 창밖에서 촬영하고 얼마 후 집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와 잔인하게 여성을 살해한다. 살해하기 직전 자신이 촬영한 영상을 유튜브로 업로드하고 경찰에서 보란 듯이 그 링크를 보낸다. 과연 범인과 살해된 여성은 어떤 관계란 말인가? 피가 낭자해지도록 잔인하게 살해한 걸 보아 원한의 관계일 수도 있겠지만 현장에는 범인을 추리할 수 있는 단서는 하나도 없다. 그저 미친놈의 소행인가 경찰이 고민에 빠져 있는 동안, 문제는 또 다른 유튜브 영상이 도착했다는 사실. 이제는 다른 여성이다.

그러나 새로운 영상이 떴지만 경찰은 넋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 영상 속 여인이 살아 있을 때 당장이라도 달려가 살인을 막고 싶지만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 살고 있고, 누구인지 신원을 밝힐 수 있는 단서는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오로지 그녀의 집 안과 그녀가 옷을 갈아입는 정도의 모습만 담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가 처참하게 죽음을 맞고 나서야 신고를 받고 출동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 미궁에 빠져 출구를 찾을 수 없을 즈음,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나마도 범인의 묘략이라고 해야 할까. 두 번째 사건 피해자 여성의 남편이 집으로 돌아와 아내의 죽음을 목격하고 너무 놀란 나머지 사건 현장을 훼손하고 만 것이다. 남편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죽은 아내를 침대로 옮기고, 피로 물든 집 안을 깨끗이 치워 버렸다. 경찰은 사건 현장의 마지막 모습을 재현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남편의 진술을 기대하지만 남편은 기억을 지우고 대답을 회피한다. 이때부터 정신과 의사 에릭이 등장한다. 에릭은 최면으로 기억 저 편에 숨은 진실을 끄집어내는 최고의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 과연 에릭은 남편으로부터 어떤 진실을 읽어낼 수 있을까.

제아무리 추리 소설이라고 하지만 읽는 내내 도저히 범인을 가늠하기 힘들었다. 몇 시간째 움직이지 않고 읽건만 범인을 추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더  페이지를 넘기며 한 문장 한 문장 놓칠세라 세밀하게 관찰하며 극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읽게 된다. 아니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흠뻑 빠져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리라. 책은 이미 10분의 1로 페이지가 몇 장 남아 있지 않은 상황, 범인을 밝히기 직전 절정에 다다른 무렵에는 도저히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다. 범인에 대한 궁금증이 극에 달아 소변 마려운 것도 참아내며 숨죽이며 책장을 넘겼다. 그만큼 <스토커>는 끝까지 독자를 끌고 가는 치밀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범인에 대한 호기심과 의구심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스토커>는 범인을 추리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의 어두운 내면에 담긴 욕망과 환락, 종교의 타락을 담고 있다. 특히 19금을 넘나드는 야릇한 광경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장면 하나하나 디테일이 생생해 마치 눈앞에 펼쳐진 영화 화면을 보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래서일까. 영국 런던 신문 『이브닝 스탠더드』는 <스토커>를 두고 "책장을 넘길 때마다 모래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난다. 미묘한 디테일이 살아있는 이야기다."라고 평했다. 정말 사소한 묘사조차 쉽게 넘기지 않고 섬세하게 표현하여 그 현장 속에 독자가 함께 있도록 만든다. 당장 영화로 만들어도 될 만큼 치밀한 묘사가 장점이다.

놀랍게도 범인의 존재는 반전이었다. 끔찍할 만큼 <스토커>는 잔인한 살인을 다루고 있지만 끝까지 훈훈함을 잊지 않도록 따뜻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진실을 파헤치기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고 곤경에 처한 타인을 돕기 위해 애쓰는 노장의 경찰 요나는 따뜻한 인간미와 의리, 희망을 상징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왜 사건을 추적하는 36세의 수사관 마고 실버만이 임신한 상태로 나오는지도 사건이 마무리되고 나서야 어쩌면 작가가 마련한 장치가 아니었을까 어렴풋이 그 의미를 추리해볼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며칠씩 이어졌던 무기력감과 우울감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봄이 왔음에도, 몰두하고 싶은 일이 없을 만큼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고 느낄 때, 또는 내 정신력과 집중력은 진정 그 한계에 다다랐단 말인가 고민에 빠진다면 주저 없이 추리 스릴러 <스토커>를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아직 "내 집중력, 살아있네!" 제대로 확인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물론 너무 화나고 답답해서 짜증 나는 일상 때문에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거나 도망치고 싶을 때도 역시나 <스토커> 속으로 떠나보길 추천해본다. 개인의 문제 해결은 말끔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마지막엔 기분 좋게 책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며 새롭게 일상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소심하게 추천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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