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속국가 일본 - 미국의 품에서 욕망하는 지역패권
개번 맥코맥 지음, 이기호 외 옮김 / 창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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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보면 우리를 안다”라는 말은 성장기부터 지금까지 늘 아주 간단하게 일본을 얘기하는 화두이다. 도대체 어떻길래? 하면서도 심층적인 관심과 상대적 비교에는 비교적 게을렀던 것 같다. 올해 여행을 핑계로, 여름부터 일본에 관한 여러 종류의 책과 정보를 접하면서, 결코 알 수 없었던 그 화두에 대한 결정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는 좋은 책 한권을 읽었다. 한 반쯤 읽었나? 그리곤 짧은 일본여행, 돌아와 집중해서 며칠을 꼼꼼히 읽고 난 후에 일본이라는 국가이름 대신 신자유주의에 묶여 있는 세계화의 우산 속에 있는 어떤 나라라도 결코 자만하지 못할 각종 사례들에 대해, 다소 어깨가 무거워 진다.


“미국의 품에서 욕망하는 지역패권”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종속국가 일본”은 호주출생으로 그 간에 저술한 저서들이 “범죄국가, 북한 그리고 미국”, “일본, 허울뿐인 풍요”, “일본제국주의의 현황” 등의 제목만 보더라도, 적어도 동아시아에 대한 꽤 많은 식견을 가진 학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그 중 한 권의 책도 접하지 못한 내가 어줍잖게 그를 소개하는 것은 이번 책 “종속국가 일본”에서 보여주는 그의 광범위한 사례들, 자료수집의 결과를 분석해 내는 그의 노력에 있다 하겠다.


영원한 12살, 의존적인 초강대국, 일본모델의 해체, 부시의 세계속의 일본, 아시아의 일본, 헌번과 교육기본법, 오끼나와:처분과 저항, 핵보유국 일본, 정신분열증 국가? 등 모두 9장으로 분류되어 있는 이 책은 그야말로 세계화와 아시아의 맹주로서의 일본의 자기당착적 오해와 현실, 그리고 불편한 미래에 대한 분석이 각 장의 제목답게 아주 세세하게 그려 있었다.


“미국의 또 다른 주” 일본의 정치인이 뱉은 오늘 날 일본의 도메인 중에 하나이다. 오랜 역사와 함께 한 “탈 아시아 국가”개념의 정체성이 이차대전 종료 후 전범국가로서의 공허한 양속하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초강대국, 미국이라는 환상 앞에서 자진해서 그 치마 속으로 들어가 급급하게 지내온 50년, 그 오만한 태도 속에 감쳐 진 그 나약함이, 90년대부터 일기 시작한 거품경제라는 내부적 몰락으로부터 야기된 각종 국가 위상에 대한 도전을 미국이 던져 놓은 온갖 미끼의 끄트머리를 부여잡고 겨우 겨우 버텨나가고 있는 오늘, 일본의 현실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기도 하다.


영국과 프랑스를 합한 GDP로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면서 1인당 GDP는 18위. 2006년 기준, 비정규직 노동자가 662만명을 넘어서고, 빈곤층이 15.3%에 육박하는, 15세부터 34세사이에서 학업도 직업도 갖지 않는 소위 니트족이 213만명, 120만명의 은둔생활(히끼꼬모리)자, 313만명의 실업자,미국의 2배에 달하는 매년 32,000명의 자살, 무보험 생활자가 1,00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일본, 한편으로 매년 1만명 이상의 박사가 배출되고 있으나, 그 중 시간 강사 등 관련 분야에 3,000명만이 취업하고 있는 일본은 과연 먼 나라 이야기일까?


메이지유신 이후, 지역별 고유 가치의 신들을 천황중심체제로 바꾸면서 근대정치를 확립한 후, 막부시절처럼 군부의 강력한 지도하의 전범국가가 된 일본이, 다시 미국이라는 또 다른 천황 밑에서 그 충성의 맹세의 일환으로 신사참배를 지속해 온 코이즈미 총리 행보는 아시아도 유럽도, 아메리카도, 그 어디의 언저리에도 쉽게 일치하지 못하는 국가 정체성의 어줍잖은 몸부림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화 기류 속에서, 민영화 실패에 따른 국민 생활환경의 변화, 국민들은 날라가 버린 연금과 복지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데, 이라크파병, 각종 원조 및 미국 군사협력 비용 증가, 반환된 오끼나와 기지의 헬리포트 프로젝트, 지속적인 제공, 군비확장, 핵시설보유등 오랜 친구(?)라고 속고 있는 미국의 눈 밑에서 정치인들이 잃어버린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기 위해 오늘의, 아니 미래의 국부마저도 담보 잡아야 하는 현실을 그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헌법 수정을 기도하고, 난징사태 등 지난 날 아시아지역에 자행한 모든 역사의 흔적이 아직 지워지기도 전에, 납치사건 등 북한과의 갈등고조를 통한 역사의 오도, “마음의 노트”라는 개인수양록을 작성하고, 국가를 부르게 하며, 과도하게 경색되어 가는 교육체제로의 전환을 통해 “교육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란 목표를 통해 회귀하고 있는 이 현실 또한 그들은 어떻게 대외의 감시자들을 납득시킬 것인가?


적어도 짧게는 오백년 전의 그들의 문화를 보고 돌아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은 오늘,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쇼핑센터에서 백화점에서 만난 그들의 오늘과 책 내용이 오버랩 되면서 결코 편하지 않은 느낌 속에 있는 것은 아마 저자가 말한대로 일본인의 자기 정체성 혼란이란 표현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행(?)스럽게도 한국어판 출판을 격려하면서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을, 1945년 이후 양 국가가 모든 조건이 미국과의 관계 맺기를 강요당한 공통점 하에서도, 민주화운동과 시민사회의 성숙 등 결코 어떤 방향으로도 치우칠 수 없는 건강한, 국가 정체성으로 표현했다. 저자의 말, 역자의 말 뿐 아니라, 본문 안에서 아마 귀동냥으로만 만났던 일본에 대한 실증적 사례들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권하고 싶은 책이 되어버린 것이 이번 독서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자기 정체성, 대동아전쟁의 같은 피해 지역인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의 입장은 매우 다르다. 적어도 중국, 아세안지역과 같은 시각으로 일본을 탓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 다행스럽기조차 하다가도, 일본의 침략국가취급은 누명이며, 대동아 전쟁을 치르지 않았다면 현재와 같은 인류평등의 세계가 오는 것은 100년, 200년 늦었을지도 모른다며, 식민통치마저 후안무치하게 미화한 일본 항공자위대 최고책임자 다모가미 도시오의 망언을 욱해야 하는 것, 역시 나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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