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깊이에의 강요
재능은 있지만 깊이가 없다. 평론가의 이 한마디 말은 젊은 독일의 한 여성 예술가를 자살이라는 극단적 죽음으로 까지 몰아갔다. 그 평론가는 그 여성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기위해(악의는 갖지 않았다)한 말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이제껏 펼쳐왔던 그녀의 예술에 대한 회의와 극단적 우울을 일으켰다. 
"깊이가 있다"는 말은 무엇일까?
학문에 있어서는, 그 분야에 관한 정보와 지식을 과거에서 미래까지 꿰차고 있는 상태라 할것이다. 인간 관계에 있어 깊이가 있다는 말은 사람사이에 마음을 열고, 서로의 감정을 공유하는 상태가 될 것이다.
예술에 있어서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보통 예술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깊이가 있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전적으로 예술가 자신이 아닌 작품을 평가하는 외부인에 의존하게 된다. 즉, 작품을 평가하는 사람들이 "깊이가 있다"라고 찬사해야 비로서 예술가는 깊이있는 예술을 하는 '진정항'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자신이 이루어낸 성과를 반드시 남에게 평가받아야만 인정받고, 그 자신도 비로소 안심할 수 있는 게 얼마나 안타까운가?(성과라는 말 자체도 남에게 인정받아야 성과가 되지, 인정 받지 못하면 헛된 일이 되고 만다.) 

2. 장인 뮈사르의 유언
이야기는 뮈사르의 친구 루소의 뮈사르에 대한 비평으로 시작된다.
이 이야기가 실제인지는 모르겠지만,(단편소설집인걸 보면 사실이 아닐것이다.)현재로선 뮈사르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이다.
온 우주는 조개화 된다는 주장!
그러나 이 얼마나 독창적인가?
모든 과학적 진실은 항상 변하기 마련이다. 고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있기전에는 프톨레 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정설이였고, 다윈의 진화론이 있기전에는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현대과학에 있어서도 여태까지 온 우주의 절대적인 진리로 여겨져왔던 뉴턴의 역학법칙은, 최근에 밝혀진 양자역학에 의해 재정리 되고 있다.
현재에 아무리 우스운 논리도, 과학사 적인 흐름에 있어서는 절대 무시할수없다.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고자 하는 작은 노력 하나하나가 모여, 진실에 다가갈수 있게 하는 디딤돌이 된다. 

3.문학적 건망증
문학적 건망증은 독서를 즐겨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에게나 와 닿은 가슴아픈 주제일 것이다. 작가가 문학적 건망증을 고백했듯이, 나 또한 이제껏 읽은 책들의 내용이 가물가물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가?!!!! 
작가의 위안처럼 책의 내용이 서서히 우리의 내면을 변화시켜가서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매우 비극적이게도 내면의 무의식속에 한없이 침식되어 가다가 결국 소멸되어 버리는 것인가?
나는 후자를 방지하기위해 책을 읽으며 메모와 정리 그리고 느낌을 적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여전히 비극적인 망각의 위협으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실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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