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선량한 차별주의자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처음 읽은 것은 2019년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복지관을 퇴사하고 대학원생으로 지내고 있었고 학과 교수님의 추천 도서이기도 해서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는 사회복지사로서 일하며 경험하고 느꼈던 각종 차별들을 떠올려가며 읽어내려갔고 오히려 제가 차별을 받는 사람이 아닌, (정규직으로서) 특혜를 받고 나도 모르게 차별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주로 했었던 것 같습니다. 책에서도 언급되었던 <미생> 장그래의 명절선물과 매우 흡사한 일이 제가 일하던 기관에서도 발생했던 일이기도 했고요. 장애인이나 다문화 가정과 관련한 내용들을 읽으면서도 이 책은, 제가 고의로 혹은 의식적으로 차별을 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을 한 사람으로가 아닌 한 대상자, 수혜자로서 대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고 저의 생각과 행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오래 기억하지 못하는 저도, 적어도 이 책만은 마음 속에 오래 남아서 제 주변의 차별을 가끔씩 생각해보게 되었지요.

그리고 6년이 지나, 달라진 상황에서 다시 접한 <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제가 한 사람의 특혜를 받는 사람 혹은 차별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다시 읽혔습니다. 저는 현재 대학원을 졸업하고 새롭게 회사에 입사하게 된 저는, 구조적인 이유로 인해 계약직으로 일을 하고 있지요. 이 책에 잠깐 언급된 예시처럼, 저는 입사하자마자 정규직, 계약직뿐 아니라 직업군별로 다른 색깔을 지닌 명찰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명찰을 목에 걸고 다니는 것이 마치 ‘나는 계약직이다’라는 일종의 주홍글씨와 같이 느껴지기도 했죠. 그리고 왜 회사에서는 이런 구분을 두는 것일까, 하고 직원들끼리 회사 입장을 고려해보려고 노력(!)했었습니다. 설마 차별을 하는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하고요. 회사에서 우리를 차별하고 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실망감과 좌절감이 느껴질 것 같았기에(어쩌면 잘못은 회사에서 하고 있을 것임에도) 이를 합리화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차별을 받는 저희의 몫이었습니다. 회사에서 코로나 시기에 다 같이 고생했다고 나눠준 위로금도 계약직인 저희가 받은 금액은 정규직 대비 10배가 차이나는 금액이었습니다. 그때도 부당하다 생각하면서도, 역시 계약직이라 어쩔 수 없는 것인가 하고, 또 다시 저항없이 수용할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사회에서 미처 다 인지하지 못했던 특혜를 받고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선량한 얼굴을 한 채 누군가를 차별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장애인들의 시위를 바라보는 내 시선은 어땠나, 다문화를 한 사람 혹은 한 가정으로 보면서 했던 나의 생각은 어떠했나, 성소수자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떠했던가, 장애를 장애라는 단어를 일상에서 너무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던가 하는 그런 반성들을 이 책을 읽으며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평범한 일상에서도 많은 차별의 상황을 접하게 됩니다. 하지만 ‘차별을 당하는 사람은 있는데 차별을 한다는 사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차별을 받는 사람은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게 될 수밖에 없고 상황을 해결하기보단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건가, 내가 어떠한 이유가 있어서 이런 대우를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 하고 말이죠. 더욱이 이것이 차별인 것인지 혹은 내가 같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어서 대우에 차이가 있는 것인지, 하고 차별과 차이의 경계에서 마음이 헤매기도 합니다. 특히 대우의 차이 혹은 차별의 경우 대개 구조적인 문제인 경우가 많아서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불편한 마음을 수용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6년 전, 이 책을 읽을 때도 마음 한 켠이 계속 불편하고 뜨끔해서 한 줄 한 줄 읽어내려가기가 어려웠지만 어쩐지 그만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은 책을 덮고나서도 연쇄적으로 이어지는 사념들로 인해 홀로 괴로웠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 책을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게 될까요, 아니면 더 힘든 마음으로 읽게 될까요. 특혜를 받는 사람으로서의 저는 차별에 조금 더 예민해졌으면 좋겠고, 차별을 받는 사람으로서의 저는 적어도 차이와 차별을 구분할 수 있고 차별에 대해서는 작은 목소리라도 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차별의 언어를 발화하는 누군가에게 ‘그것은 차별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함께 말이죠. 다시 읽어도 좋은 책이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 읽고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동안 눈 앞에 잘 보이지 않았던 차별을 우리 모두가 조금은 더 선명하게 볼 수 있기를 바라고요. 이 책을 읽고 한동안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과 사회를 대하는 저의 행동이 조금은 부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로 조심스러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런 시선과 행위들이 조금은 더 자연스러워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생각이 시야에 갇힌다. 억압받는 사람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행이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과 싸우기보다 "어쩔 수 없다"며 감수한다. 유리한 지위에 있다면 억압을 느낄 기회가 더 적고 시야는 더 제한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