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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최근에 나온 책들(84)

연휴 기간이어서인지 알라딘에 새로나온 책들이 업데이트되고 있지 않다. 아니, 새로나온 책들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출판사도 대개는 휴무일 테니까. 그런 틈을 타서 예술분야의 책들로만 '최근에 나온 책들'을 꼽아보기로 한다. 최근에 나왔다고는 하지만 더러는 몇 달 전에 나온 책도 포함돼 있는 리스트이다. 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의 경우가 그러한데, 카파와 건축가 리베스킨드를 꼽은 데는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려는 개인적인 '계산'이 반영돼 있다. 너무도 친숙한 우리의 모차르트와 반 고흐에서부터 '낙천주의 예술가' 리베스킨드에 이르는 여정이 연휴를 마무리하면서(갑자기 늘어난 할일들!) 부려보는 '마지막 사치'쯤 되겠다(일상의 시간들과 대립된다는 의미에서 사실 '휴일의 시간'들은 '예술의 시간'들이지 않은가?).   

 

 

 

 

제일 먼저,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이자 프로이트 전문 연구자 피터 게이"가 <모차르트>(푸른숲, 2006). 역사학자답게 "기존의 모차르트 전기에 나타난 신화적이고 감상적인 색채를 걷어냈다. 천재 예술가 삶의 주요 국면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조명하고 있다. 저자는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그의 음악이 탄생한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보여주며 모차르트에 대한 낭만적인 추론을 비판한다. 연대기 순이 아니라 '천재', '아들', '종', '자유 음악가', '거지', '거장' 등 테마별로 각 장을 구성하여 화려한 수식이나 부풀려진 신화 없이 위대한 음악가의 진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다."

그러한 소개의 글에서 내가 제일 먼저 떠올린 책은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모차르트>(문학동네, 1999)이다. 엘리아스의 유작인 이 책은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이란 부제를 갖고 있고, "철저한 사회 문화사적 시각으로 모차르트를 해석한다. 모차르트가 활동하던 당시의 사회 상황에 초점을 맞춰 모차르트의 천재성의 본질을 규명하고자 한 것. 사회의 여러 양태가 구조적 제도적 맥락에서 개인의 천재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내용을 풍부한 일화와 편지들을 근거로 깊이 있게 논하고 있다."

해서, 나는 이 두 사람의 책을 나란히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저자인 피터 게이에 대해서는 그의 <부르주아전>(서해문집, 2005)을 소개하면서 다룬 바 있다. 그리고, 모차르트 관련서로 올해 나온 책으로는 파울 바르츠의 <소설 모차르트>(자음과모음, 2006)가 눈길을 끈다.  

 

 

 

 

두번째 책은 나탈리 에니크의 <반 고흐 효과>(아트북스, 2006). 저자 소개에 따르면 나탈리 에니크는 "사회과학자로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CNRS)의 책임 연구원이다. 주요 저작으로는 <예술가의 화법>, <여성의 지위 - 서구 소설에서 여성의 정체성>, <예술 사회학>,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사회학>, <반 고흐 효과>, <반 고흐의 영광>, <찬미의 인류학에 대해> 등이 있다"고 돼 있는데, <여성의 지위>는 <여성의 상태>(동문선, 1999)로 번역돼 있다. 해서 나는 문학연구자로 알고 있었는데, 전공은 '예술사회학'이라고 해야겠다. 아래 사진을 보면 전공이 무색하지 않은 미모의 학자이다.

예술사회학자답게 저저의 관심은 '반 고흐' 자신이 아니라 '반 고흐 효과'에 두어진다(원제는 '반 고흐의 영광'이다). 우리가 아는 '반 고흐'가 어떻게 탄생했는가 하는 것. 곧, 저자는 "고흐를 실마리 삼아 치밀하게 예술가 숭배의 매커니즘을 밝힌다. 예술은 현대의 종교가 되었다는 저자의 분석은 치밀하면서도 복잡한 논리의 직조를 통해 하나의 완성된 이론으로 거듭난다. 예술이라는 종교의 첫 번째 성인으로 저자는 고흐를 뽑고, 그가 성인으로 추대된 이후 고흐 이전과 이후의 예술가들은 그 틀 속에서 자리를 잡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러니까 이 '예술사회학'은 '종교사회학'이기도 하며(에니크는 종교학자 엘리아데의 구절을 에피그라프로 삼고 있다) 저자는 그 '틀'을 문제삼겠다는 이야기겠다.

뒷표지에 붙어 있는 한 추천사에 따르면, "에니히는 반 고흐를 진화하는 문화현상이자 오늘날의 미술 실천을 강제하는 신화로서 독해한다... <반 고흐 효과>는 우리가 영웅을 만드는 방법뿐 아니라 그들을 필요로 하는 이유에 대해 상상력에 넘치면서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고로 고흐를 좋아하거나 숭배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한번쯤 읽어볼 만한 책이다.

<반 고흐 효과>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또 다른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의 화염 속에 사라진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을 소재로 쓴 팩션", <반 고흐 컨스피러시>(마로니에북스, 2006)이다. "사랑, 음모, 배반이 얽힌 긴박한 추격전, 그리고 서서히 밝혀지는 미술품 약탈의 진상, 유럽의 여러 나라를 넘나들며 펼쳐지는 흥미로운 이야기"라고 하니까 '다빈치의 독자들'도 같이 읽어보면 좋겠다.  가난에 쪼들렸던 고흐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서 자화상을 많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와 비교하면 상상력이 무기가 되는 작가들은 형편이 좀 낫지 않나 싶다(거꾸로 자기 얘기만 쓰는 작가들은 아무래도 '빈티'가 나는 걸 감수해야겠지만).  

 

 

 

 

세번째 책은 에곤 쉴레/실레(1890-1918)의 <세상의 하이페리온>(미디어아르떼, 2006). 미술비평가 아투어 뢰슬러가 에곤 쉴레와 나눈 대담집 <에곤 쉴레를 회상하며>(미디어아르떼)와 나란히 출간됐다. 책을 낸 출판사 '미디어아르떼'의 데뷔작들이기도 한 이 책은 언젠가 한 인터뷰를 읽어보니까 '볼 만한 도판'에 대한 펴낸이의 욕심이 최초로 얻어낸 성과물이기도 하기에 그 결과가 주목된다(나는 아직 책의 실물을 보지 못했다). 쉴레와 관련하여 내가 이제까지 내가 갖고 있는 책은 프랭크 휘트포드의 <에곤 실레>(시공사, 1999) 정도였다.

<세상의 하이페리온>은 "요절한 천재 미술가 에곤 쉴레와 가족간의 편지, 그리고 감옥에서 쓴 편지들을 엮"은 책이라고 한다. "가족과 떨어져 살았기에 대화가 단절되었던 쉴레는 편지를 통해 자신의 예술관, 그리고 일상에 대한 열정을 가족들에게 표현하고 또 설득했다"고 하고, "편지자료는 쉴레가 태어나고 성장했던 툴른에서 수집한 것들"이라고. 이런 식의 편지들이다: "내 그림 중에 어떤 것들은 그런 고통과 슬픔 속에서 스스로 생겨난 것입니다. 다른 그림에는 나의 행복한 상태를 같이 그려놓았어요. 왜냐하면 예술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의식에 대한 경고를 하고, 그것들을 일깨우고, 또 풍부하게 해주는 사람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언젠가는 알려지게 될까요? 나는 회의적입니다."

책은 쉴레의 그림 애호가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필독서이겠고, 더불어 그림을 좋아하는 이들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거기에 추가하고 싶은 독자층은 김기덕 감독의 영화들을 즐겨보는 관객들인데, 기억력이 아주 나쁘지만 않다면 <나쁜 남자>에서 여주인공 서원이 서점에서 훔치려던 (그러다 결국 자신의 신세를 망치게 되는) 화집이 에곤 쉴레의 것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감독 자신이 좋아하는 화가라고.  

 

 

 

 

네번째 책은 세계적인 보도사진 작가 로버트 카파(1913-1954)의 이야기 <로버트 카파>(강, 2006)이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알렉스 커쇼가 재구성했다는데, "피가 튀는 전장의 한복판에서, 주요한 역사의 현장에서 불후의 이미지들을 건져 올려 현대사의 생생한 기록으로 남긴 로버트 카파의 열정적이고 모험적이며 자유로운 삶을 흥미롭게 펼쳐 보인다"고 한다. 원제는 <피와 샴페인>(2002).



저자 커쇼는 "부다페스트의 양복장이집 유대인 청년이 1931년 정치 난민으로 헝가리를 떠나고, 베를린을 거쳐 파리, 런던, 마드리드, 뉴욕, 모스크바, 인도차이나 등 전세계를 누비며 '카파이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기까지, 그리고 전장에서 사랑하는 연인과 자신의 목숨을 잃기까지 명료하고 생생한 언어로 복잡한 현대사와 극적인 여러 순간들을 영화를 보여주듯 박진감 있게 재구성한다"고 하니까 카파의 사진들에 매혹되는 바 없지 않다면 펼쳐들어볼 만한 책이다.

아무래도 그의 사진의 주무대는 전장이었고, '카파이즘(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투철한 기자정신)'이란 용어 자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직업/직분은 '전쟁사진작가'이다. "보도사진계에 신화와도 같은 존재로 남은 전쟁사진작가 로버트 카파의 제2차 세계대전 종군기"가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필맥, 2006)이다. 이 또한 <로버트 카파>와 나란히 꽂아둘 책이다.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세계적인 건축가 다니엘 리베스킨드의 건축 이야기 <낙천주의 예술가>(마음산책, 2006)이다. "911 테러로 사라진 세계무역센터 현장을 새롭게 재창조하게 될 건축가 리벤스킨트의 열정과 모험담"이라는 좀 장황한 부제 자체가 책의 내용을 잘 요약해주고 있는 듯싶다.

2년에 한번씩 전세비나 걱정하는 처지에 건축에 대한 유난한 관심을 가졌을 리 없는 나는 이전에 리베스킨드란 이름을 들어본 바 없다. 한데, 그는 대단히 유명하다고 한다. "그가 설계한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현재까지 독일에서 관람객이 가장 많은 박물관으로 꼽힌다"고 할 만큼. 게다가 국내에선 삼성동 현대산업개발 본사의 외관을 설계했다고 하니까 우리와 아주 무관하지도 않다.

Daniel Libeskind's original plan

소개에 따르면, "리베스킨트가 생각하는 훌륭한 건축이란 인생의 굽이굽이 등장하는 갖가지 색을 모두 담아내어 영혼에 내재된 이야기를 들려주는 건축이다. 그는 돌, 쇠, 콘크리트, 나무, 유리처럼 말 못하는 물질을 가지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사람 이야기를 들려주고, 역사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는 빛, 소리, 영혼, 장소 감각, 역사에 대한 경외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 말한다. 건물이 영적인 울림을 지니기 위해서는 실제 존재하는 대상과 보이지 않는 힘이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태도는 자신의 대표작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통해 엿볼 수 있다."

View from south of the Statue of Liberty

아무려나 쌍둥이 무역센터빌딩을 대신하여 들어설 그의 건축물들이 '영적인 울림'을 지닌 건물들, "실제 존재하는 대상과 보이지 않는 힘", 곧 산자와 죽은자, 그리고 살아남은자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고통을 전달해줄 수 있는 그런 상징물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구 종말의 시대에도 우리를 낙천적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06. 10.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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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놓치기 쉽지만 주목해야하는 몇 권의 책...

 

 

 

 

네오콘 프로젝트
남궁곤 편집 / 사회평론 / 2005년 3월

- 가끔 기초 학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너나할 것 없이 봇물터지듯 불만들을 토로하곤 한다.
사실 위의 책은 예전에 "북&이슈"란 서평전문지에서 내게 서평 청탁을 해와 어쩔 수 없이 읽었던 책이다. 어째서 나에게 저 책의 청탁이 들어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편집자에게 저는 국제정치학 전공자도 아니고,  솔직히 저 책을 읽고 소화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며 정중히 거절하려 했는데, 하도 다급하게 부탁을 하기에 게다가 이미 그 전에 나의 전공과 상관없이 얼토당토않게 촘스키와 김동춘 선생의 책 서평을 "녹색평론"에 실은 적이 있는데 편집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 정도 되면 도망가기 어렵다.)

 

 

 

 


하는 수 없이 읽었던 책이다. 국내의 국제정치학 관련 학자들이 미국의 신보수주의 역사와 현재, 정세, 그리고 그들이 정신적 대부로 모시고 있는 레오 스트라우스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파헤치고 있었다. 이 책의 장점은 우선 국내학자들이 집필한 책이란 사실이다. 세계화 시대에 국내와 국외를 구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만 좋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으나 국내적 관점과 입장의 관철이란 점에서 국내 학자들의 저술은 외국 학자의 명저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리고 두 번째 장점은 책 제목에 "프로젝트"란 말이 들어 있긴 하지만 실제 이 책 자체가 일종의 프로젝트처럼 짜임새 있게 구성되었고,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국제정치학 전공자가 아닌 문외한인 내가 읽어도 이해 못할 대목은 거의 없었다. 세 번째 장점은 역시 책의 주제다. 우리는 미국의 강력한 그늘 아래에 있다. 대한민국이란 국가형성부터 국가구성에 이르는 전과정이 미국의 영향 아래 이루어졌고, 그 영향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솔직히 요사이 MBC에서 하고 있는 "신돈"을 보면서 원의 영향을 축출하려는 고려의  몸부림이 과거의 역사에만 국한된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점에서 미국의 주류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네오콘을 해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현실적 과제이다.

예전에 권용립 교수의 책과 강연을 듣고, 전화로 통화하면서도 실감한 것이었지만 우리 지식계 혹은 사회의 일반적인 분위기는 하워드 진과 노암 촘스키로 상징되는 미국의 일부 양심적인 지식인들에게 지나치게 기대하고 있다. 불행히도 이들은 미국 사회 내에서 고립되어 있으며 그야말로 한 줌도 안 되는 이들이란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도 네오콘들을 이해하는 것은 미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다.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장 마생 지음, 최갑수 머리말, 양희영 옮김 / 교양인 / 2005년 8월

- 지난 2005년 5월부터 12월까지 위성DMB방송 "북채널"의 고정 패널로 활동했었다. 방송의 주요 콘텐츠(예술가들의 생애와 업적)를 제공하고, 실제로 방송에 참여하면서 예술가들에 대해 진행자가 물어오면 답하는 그런 역할을 했다. 그곳에 꽤 많은 책들이 무료로 우송되어 오곤 했는데, 방송 연구에 도움을 얻겠다며 몇 권씩 집어오곤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방송을 그만 둔 지금까지 반납하지 않고 있다. 지난 한 해 내가 유난히 바빴던 이유 중 하나는 대학원에 진학한 것이고, 이른바 "투잡"으로 방송 프로그램에 참여한 일이다. 덕분에 지난 해 책 구입 비용의 상당 부분을 충당할 수 있었다.(그런데 위성DMB방송이란 DMB폰이 있어야 하는데 나조차도 그게 없어서 듣지 못했으니 과연 몇 사람이나 들었을까는 의문이다.)

하여간 그곳에서 꼭 집어내오고 싶었는데  끝끝내 집어오지 못한 책이 바로 위의 책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이다. 사실 세계사 시간에 프랑스 대혁명 과정에 대해 배우면서 세계사 속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극적인 사건들로 손 꼽는 몇몇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레판토 해전이나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 함락, 프랑스 대혁명을 결정적으로 뒤엎은 사건이라 할 수 있는 "테르미도르의 반동", 보불전쟁의 와중에 벌어졌던 파리 꼬뮌 등등이 나의 호기심을 진하게 끌어당겼다. 콘스탄티노플 함락 과정에 대해서는 최근 이와 관련한몇 종의 책들이 출간되었으나 교양인에서 "문제적 인간"이란 주제로 연속하고 있는 평전 시리즈의 첫 권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은 매우 구미에 당기는 책이었다.

흥미로운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로베스피에르가 막스 갈로의 "나폴레옹" 보다 나에게는 시사해주는 바가 더욱 큰 인물인 탓도 있다.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 지음, 김태희 옮김 / 교양인 / 2006년 1월

- 2006년 1월 새해 벽두에 나온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이란 따끈따끈한 책이 현재 내 책상 위에 놓여 있다. 놀라지 마시라! 이 책은 무려 1,000쪽이 넘는다. 튼실한 '각주'와 '찾아보기'만 거의 얄팍한 단행본 두께다. 앞서 "로베스피에르"를 이야기할 때, 역사의 틈새란 점에서 나폴레옹과 로베스피에르를 잠시 이야기했는데, 로베스피에르의 실각이 결국 나폴레옹의 등극을 가져왔다면 괴벨스와 히틀러는 그야말로 상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대중과 파시즘의 위험이 증대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을 반면교사로 삼아보기에 충분한 책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괴벨스에 대해 내 개인 홈페이지(http://windshoes.new21.org/person-goebbels.htm)를 통해 글을 쓴 적도 있다. 특별히 괴벨스에 주목한 것은 사실상 그가 나치와 히틀러의 초기 측근 멤버들 가운데 실질적으로 유일한 지식인이었던 탓도 클 것이다. 그는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다음은 의심하나 계속하면 나중에는 믿게 된다."라며 대중을 철저하게 기만과 선동의 객체로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활용했던 인물이다. 만약 가능하다면(나는 이미 구입했지만) 아돌프 히틀러에 대한 평전의 결정판으로 평가받고 있는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1.2"와 "히틀러 최후의 14일"과 함께 짝을 이뤄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무장한 예언자 트로츠키
아이자크 도이처 지음, 김종철 옮김 / 필맥 / 2005년 4월

- 사실 얼마전에서야 이 전기의 작가인 "아이작 도이처"를 기념하는 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쓴 "마르크스주의에 봄날이 왔는가"란 글을 읽다 보니 "아이작 및 타마라 도이처 기념상(Isaac and Tamara Deutscher Memorial Prize)의 공동 수상자인 닐 데이비슨(Neil Davidson)과 베노 테쉬케(Benno Teschke)는 현대 자본주의의 정치 구조를 창출한 위대한 부르주아 혁명들에 관해 논쟁했다. "란 대목이 있었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와 아이작 도이처는 마르크스주의를 속류 마르크스주의(스탈린)와 분리해내고 싶어했다는 점에서 보자면 서로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1907년 폴란드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난 그는 대학에서 철학, 역사학, 경제학을 공부했다. 당시의 분위기와 그가 공부한 학문만 살피더라도 그가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것은 당연해보인다. 그는 폴란드 공산당 당기관지의 편집자가 되어 스탈린주의와 코민테른에 반대하고, 트로츠키의 반나치 통일전선을 지지하다가 당에서 제명당한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고 할 말이긴 하지만(아이작 도이처에 대한 책이 있다면 좋겠다), 당시 트로츠키를 지지한 이들이 겪어야 했던 혹독한 숙청과정(제명과 암살 등은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등을 참조하는 것도 좋겠다)은 말로 이루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잔인하게 진행되었다. 이것은 좀 더 개인적인 호기심이긴 하지만 로자 룩셈부르크 이래 폴란드의 역사와 사회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란 생각도 들었다. 서로 얼마간의 개연성을 지녔는가를 지적하려면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지만 로자 룩셈부르크, 아이작 도이처로 이어지는 사상적 계보란 점에 나는 "일상적 파시즘"을 주장하는 임지현 선생을 끼어넣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일상적 파시즘"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한 바는 없지만 그의 주장들에서 나는 위와 같은 폴란드적 지적 흐름을 감지하곤 했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러시아와 독일(혹은 다른 국가)에 의해 분할되었던 경험,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히틀러(파시즘)와 스탈린(사회주의)에게 동시에 침공당한 경험, 특히 스탈린에 의해 자행되었던 폴란드 지식인들에 대한 대량 학살사건(카틴숲 사건 등)은 이전에도 이후에도 폴란드적 역사 경험을 바탕에 깔아두어야만 이해될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작 도이처는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을, 마르크스에서 시작해 레닌, 룩셈부르크, 트로츠키로 이어지는 이른바 '고전 마르크스주의'(classical Marxism)와 '제2 인터내셔널'에서 시작되어 스탈린으로 이어지는 '속류 마르크스주의'(vulgar Marxism)로 구분했다. 이에 대해 페리 앤더슨은 '서구 마르크스주의'(western Marxism)라는 제2의 전통이 있다고 주장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유럽에서 사회주의의 패배 이후 전개된 것은 노동계급 운동이 아니라 대학에 근거를 두고 정치 경제 문화가 아닌, 철학 문제, 유물론이 아닌 관념론을 중요시하는 전통 속에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전통은 영국적 상황(20세기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혹은 사상적 흐름 속에서 유럽 출신의 망명자들이 차지하는 위치는 미국의 경험 못지 않게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나미어(Namier), 아이센크(Eysenck), 포퍼(Popper),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 아이작 도이처(Isaac Deutscher), 이사야 벌린(Isaiah Berlin) 등) 속에서 아이작 도이처와 결합되어 독특한 문화적 풍토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전통과 결합한 문학비평 속에서 버밍엄현대문화연구센터의 "문화연구(Cultural Studies)"가 탄생했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곁가지로 많이 샜는데, 이 책에 대해 E.H.카가 했던 말은 귀담아 둘 만하다. "인간을 개인으로 다루는 것은 전기고, 인간을 전체의 일원으로 다루는 것은 역사라고 구분하는 것은 그럴듯한 일이겠고, 또한 좋은 전기는 나쁜 역사를 만든다는 생각도 그럴듯해 보입니다. ··· 사실 전기물 가운데에서도 역사에서 중요한 공헌을 한 작품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 분야에서도 아이작 도이처(Isaac Deutscher)의 스탈린과 트로츠키의 전기는 그 두드러진 보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을 제외한 전기들은 역사소설과 마찬가지로 문학작품에 속한 것들입니다." 위와 같은 말들을 주절주절 늘어놓은 까닭은 이 책을 꼭 트로츠키의 전기로서만이 아니라 아이작 도이처의 저작으로 읽어내는 것 역시 로서는 매우 중요한 접근이란 생각 때문이다. 앞서 캘리니코스와 아이작 도이처의 연관성에 대해 말했는데, 두 사람 모두 마르크스주의의 미래를 카우츠키나 스탈린, 코택동이 아니라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과 트로츠키, 룩셈부르크와 그람시에서 찾고자 했다는 점에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이작 도이처의 트로츠키 전기의 나머지 부분들은 물론, 아이작 도이처 자신의 다른 책들과 그 자신을 드러내는 책들도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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