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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하루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월
평점 :
뒤늦게 박완서 선생의 글을 접하고, 세상에 이런 엄정하고 단정하고도 정 있는 글이 있다니 싶어 놀란 지 얼마 안 돼, 선생이 가셨다. 그 뒤로도 게을러서 다시 읽으며 되새겨볼 생각은 못하고 지냈는데, 우연찮게 내 손에 들어온 이 단편집 덕분에 선생을 다시 만났다. 일에 치이고 정신은 한껏 예민해져서 어쩔 줄 모르던 때였음에도, 첫 장을 넘기자마자 시름을 잊고 새 세상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 <싱아>에서 읽어 익숙한 선생의 유년임에도 새롭게 다가오는 그 느낌에 출판사의 상술이고 뭐고, 아 정말 지금 이 책을 읽게 돼서 다행이다 하는 생각만 들었다. 그분도 전쟁을 겪고 한국에서 여자로 살면서 이런저런 고통의 세월을 보냈겠지만, 많은 이들에게 좋은 글을 읽힌 덕이 있다는 걸 아시고 너무 섧지 않게 가셨기를, 뒤늦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