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시간 동안의 남미 - 열정에 중독된 427일 동안의 남미 방랑기 시즌 one
박민우 지음 / 플럼북스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내게 매우 특별했다. 다른이들이 이 책에서 수없이 느낀 남미에 대한 애정과 사람에 대한 시선, 저자의 매끈한 글솜씨로도 충분히 특별한 책이지만, 내게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박민우의 대학동기라는 특수한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뭐, 같은 과라 해도 노는 반경과 듣는 수업과 관심사가 별로 일치하지 않아 속깊은 친구는 되지 못했지만, 어쨌든 아는 사람이 쓴 책을 읽는다는 건 참 특별한 경험이다. 얼마 전 동기 모친상에 갔다가 근 10년 만에 박민우를 만났는데, 그 사이 덜커덕 작가가 되어 있더란 말이다. 예의 두뇌회전보다 반응속도가 빠른 수다로 혼을 쏙 빼놓는 것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것 없었다. 그리고 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말이나 글이나 다를 것도 없었다. 책을 읽는 내내 박민우가 바로 옆에서 떠들어대는 것 같은 착각에 계속 큭큭대며 읽었다.

처음엔 책 내용 자체보다는 저자에게 마음이 쓰여서 사고칠 때마다 조마조마해하며 읽었는데, 나중에는 차츰 책 내용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시야가 넓어지면서 먼저 느꼈던 것은 남미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어디서든 사람을 만나고 뒷골목까지 뒤져 친구를 만드는 저자의 선천적 따뜻함과, 그래서 맡을 수 있었던 진한 사람 냄새였다. 예쁜 곳만 찾아다니거나 멋있는 척 폼잡고 혼잣말만 하고 다니는 여행 에세이보다 얼마나 솔직하고 깊고 유쾌하던지, 내내 '또 은인을 만나네, 복도 많아, 얘는' 하고 부러워하며 웃어가며 즐겁게 읽어갔다. 이 책을 읽으며 당장 짐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면, 아마 이처럼 깊이 만나고 교감하는 저자의 심성과 능력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책에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3권을 한꺼번에 사서 밤새워 읽어가다가, 3권 끝맺을 즈음에 와서 갑자기 우울해졌다. 아무리 소심하다고 오버를 해도 어쨌든 박민우는 짐싸서 떠날 용기와 자유가 있다는 생각에, 일상에서 1cm도 못 벗어나는 내 삶의 안이함이 잠시 지겨워진 것이다. 아마 나만 이런 속상함을 느낀 건 아닐 거다. 서른 몇 해 동안 귀찮아서 해외여행도 안 간 나를 충동질할 정도로 쎈 책이다, 얘는. 뭔가 일상이 밋밋하다 느껴질 때, 한번쯤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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