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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이제 대부분 지하철역 앞에는 자전거보관소가 있다. 정부는 국민건강증진과 교통혼잡방지, 에너지절약차원에서 자전거 이용을 권장하고 있다. 자전거전용도로도 많이 생겼고, 자전거 인구도 꽤 늘었다. 일산 호수공원에서는 사이클 복장을 곱게 차려입은 아주머니가 목련을 재촉하는 바람을 즐기고, 세발자전거를 탄 아이는 햇살의 간지러움이 가져다주는 졸음만으로도 행복하다. 출퇴근 수단으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늦은 아침에 발놀림을 재촉해야 한다. 짐받이 자전거를 타는 사람에게 페달을 밟는 일은 짐의 무게에 비례하여 삶의 무게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의 목적은 다양하고, 그에 따라 느끼는 기분도 다르다. 그렇다면 자전거를 타고 긴 여행을 떠난 사람들은 어떨까.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 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일은 복되다.' 김훈은 52세의 나이에 풍륜(風輪)이라 이름 붙인 자전거를 저어 반도의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이 땅의 풍경과 삶의 흔적을 담은 산문집에서 이렇게 말했다. 구르는 바퀴는 몸과 연결되어 있으니, 태백산맥을 넘을 때나 군산 옥구염전을 지날 때나, 길은 잘게 부서져 그의 몸 안으로 들어온다. 땀에 젖은 등판과 터질 듯한 심장에도 그는 자전거 바큇살에 반사되는 햇빛만큼 즐거워한다. 그에게 자전거는 국토를 들이키는 수단이었을 뿐 아니라, 사람들과 이어주는 '길'이었다.
두해전 호주에서 만난 나오라는 일본친구는 8개월 간 자전거로 호주대륙을 여행한다고 했다. 그는 하루에 80∼120㎞를 달렸다. 40도를 넘나드는 사막과 사나흘 인가조차 보이지 않는 길에서 생명의 위험을 느끼기도 했다. 그는 대륙을 완주하겠다는 꿈이 있었고, 자전거는 그 꿈을 위한 도구였다. 자전거는 한국의 아저씨와 일본의 청년 모두에게 위대한 도구이자 그 자체로 하나의 목적인 셈이다.
김훈은 내리막길을 내닫는 자전거처럼 거침없이 산천이 품고있는 역사를 쏟아내고, 먹이피라미드의 맨 밑바닥의 아린 냄새를 간직한 재첩과 같은 삶의 무게도 전해준다.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 새재 넘기를 단념하고 향리에 묻힌 조선시대의 처사, 그리고 IMF 이후 낙향한 가장의 삶이 생생하게 전해진다. 신라의 고승 원효와 의상의 삶을 비교한 글이나, 세종로에 선 이순신 동상의 갑옷과 영화 가케뮤샤의 등장하는 사무라이의 그것을 비교한 대목에서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마암분교 아이들은 번쩍거리는 그의 자전거를 부러워했다. 반면 나는 번뜩이는 그의 통찰력이 부럽다.
자동차의 엑셀을 밟는 것과 쉼 없이 자전거의 페달을 구르는 것은 속도 이상의 차이를 지닌다. 기술문명이 진보하면 할수록 인간은 그것과 분리된다. 그러나 자전거는 사람과 한 몸이 되어서야 쓸모가 있다. 사람의 운동이 자전거로 전해지고, 그것이 곧 길로 이어진다는 것. '몸이 곧 길'이라는 깨달음은 경험의 직접성에서 온다. 시간이 돈으로 계산되는 오늘날, 속도는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렸다.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시간에 쫓기던 톰 행크스는 무인도에 조난됨으로써 마음의 평온을 얻었다. 김훈은 자전거의 페달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었고, 나는 눈으로 그의 페달을 쫓음으로써 깨달음을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