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명길 평전 보리 인문학 1
한명기 지음 / 보리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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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00년 역사상 조선의 운명을 뒤흔든 침략사를 이야기하자면 왜란과 호란을 빼 놓고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임진왜란은 200년간 평화롭던 조선에 찾아온 조선의 명운을 바람 앞 등불처럼 위태롭게 만들었으며 결국 7년여의 전쟁으로 조선은 지도층의 무능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그대로 보여준 뼈아픈 역사였다. 하지만 이런 역사를 겪었음에도 조선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개인적으로 인과 예, 그리고 효의 도리를 지키지 못했어도 임진왜란 당시 전쟁의 참혹함과 절망감을 몸소 느낀, 외교정책만큼은 중립외교를 펼쳐 격변하는 국외적 상황에서 현명하게 대처했던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인조가 즉위하면서 명과 후금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던 조선은 왜란의 슬픔도 다 극복하지 못한채 정묘호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세력이 커진 후금이 국호를 청으로 바꾸면서 역사상 가장 치옥스러운 전쟁인 병자호란으로 이어졌으며 이는 조선의 임금이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시절 태어나 인조반정을 이끌고 후 병자호란 때 인조와 함께 남한산성에 들어가 결국 청나라에 항복할 것을 왜쳤던 최명길. 망국의 벼랑 끝에서 나라를 구하고자했으며 백성을 구하고자했던 그였지만 결국 역사서엔 나라를 배신한 매국노라고 기록된 그의 생애를 후대의 우리는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요. 최명길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청과 끝까지 맞서 싸워야한다는 척화파와 청에 항복해야한다는 주화파 중 후자에 선두에 섰던 인물로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청과의 화친을 주장했으며 결국 나라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음에도 끝내 매국노라는 오명으로 기억되었습니다. 그렇게 알려진 최명길이기에 솔직히 영화 남한산성으로 보기 전까지는 나역시도 그런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 남한산성으로 보고 과연 최명길이란 어떤 인물일까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습니다.

최명길은 1568년부터 1647년의 격변의 시기를 살다간 인물로 가장 많이 알려진 건 청과의 전쟁인 병자호란에서 주화파를 대표한다는 것으로 청과의 화친을 중용했던 인물이라는 이유로 박대한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명길의 삶은 시작부터 전란의 역사를 함께 끼고 살아왔습니다. 최명길이 태어나 세상에 발을 딛을 때 조선은 임진왜란의 화란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조선 국토 대부분이 유린되었고 그 전후 복구에 시달리고 있을 때 북에서는 누르하치가 주변 부족을 복속하면서 점점 세력을 넓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전후 복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북에서는 이미 여진의 후금이 명의 북방을 압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광해군은 명과 청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광해군의 중립외교 속에서 명은 청을 정벌하기 위한 징발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광해군은 강홍립으로 전장에서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지 말고 적당한 시기를 봐서 항복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것은 당시 분위기상 용납될 수 없는 행위였고 비열한 행위였고 재조지은의 은혜를 입은 조선에 있어서는 그 누구보다 큰 불충을 저지른 왕으로 인식되기에 이릅니다. 게다가 인목대비를 유폐하고(폐모) 영창대군을 주살하여(살제) 조선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사대부의 순리에 역하는 행위를 저지르는 만행을 두 눈으로 보았던 최명길이었습니다.

 결국 최명길은 인조를 옹립하는 인조반정의 반열에 오르게됩니다. 그리고 김류, 이귀 등과 더불어 인조를 옹립하여 1623년 인조반정을 성공시키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이때부터 조선은 불행의 연속을 걷게 됩니다. 전 정부와는 다르게 후금(청)에 노골적으로 적대행위를 하는 조선을 마냥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다음해인 1624년 서북방비를 책임지던 부원수 이괄의 반란이 있었습니다. 이괄의 반란으로 인조는 공주로 파천하기에 이르고 한양을 점령한 이괄은 더더욱 인조정부를 밀어붙이기에 이릅니다만 도원수 장만 등의 반격으로 반란은 진압됩니다. 하지만 인조 정부의 정당성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고 이괄의 난으로 남은 잔당은 청으로 유입되어 청이 정묘호란을 일으키게 되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하기에 이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청은 조선을 정벌할 목적보다는 명을 정벌할 때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한 목적이 컸으므로 형제의 맹약을 맺는 조건으로 철군하기에 이릅니다. 

 사실 제대로 생각이 박혀있던 위정자라면 이 때부터 국방력을 강화하든 아니면 외교로 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하든 일단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이 당연지사며 결전을 치를 의사가 있었다면 그에 맞는 용병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당했던 조선은 학습효과는 전혀 없었나봅니다. 입으로는 와신상담과 결전을 외치지만 실상을 보면 사실 국가를 유지할 근간인 방어군조차 미비하던 때였습니다. 또한 전쟁을 수행하는 것에 가장 기본 중 기본인 병참을 확보하여야하나 전국에서 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군량미는 가장 형편이 좋은 곳이 3개월가량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전쟁을 수행하기에 앞서 화전을 운운하는 자는 그 누구보다 군략과 병법 그리고 무예에 앞장서서 습득을 하여야하나 그저 ˝말˝뿐인 사대부는 계속해서 소위 말하는 ˝입만 털고 있었습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최명길은 그 누구보다 냉철하게 북방의 이치에 밝은 자를 중용할 것을 조언하지만 그 누구도 그 말은 듣지 않았습니다. 또한 전 정부의 패악질이었던 청과의 중립외교를 단지 본인 정부의 정당성을 강화하고자 파기하는 순서를 밟기 시작하였으며 그리고 북방에 밝은 자를 중용하기 보다 박엽을 처형함으로써 오히려 기용하지 않고 단지 ˝명분˝만 위해서 그 누구보다 큰 실책을 저지르게 이릅니다. 또한 청을 정벌하기 위한 원병을 요구하기 위해 조선에 들어온 감군 황손무는 조선에 머물면서 조선의 실정을 온몸으로 체감한 뒤 조선은 본토를 방비할 병력조차 미비한 사실을 알고 괜한 도발을 하기보다 본토를 방위하기 위한 대책부터 세울 것을 조언하였으나 당시 집권층은 그 말을 귓등으로조차 듣지 않았습니다. 과학기술을 천시하였던 당시 성리학자들은 임진왜란 당시에도 200년 전 문종 기에 만든 화차로 임진왜란에서 대승을 거두었던 교훈은 이미 온데간데 없이 잊어버리고 국방력 강화에는 전혀 관심없이 본인들의 안위에만 신경쓰는 정도에 이릅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의 국방력을 보면 청과의 결전에서 군의 사기만 있다면 남한산성에서 유린 당할 만큼의 약체는 아니였습니다. 사실 병자호란에서도 청군과의 결전에서 일부 승리한 전투도 존재하였습니다.

 결국 조선은 청의 심기만 계속하여 도발하여 병자호란을 맞이하게 됩니다. 전략을 강구할 시간을 허비하고 사소한 문제에 본인들의 자존심을 세우면서 이도 저도 못하면서 결국은 가장 최악의 수를 두게 됩니다. 명분만 중시하는 성리학의 가장 큰 폐악이 아닐까라는 안타까움으로 계속해서 이 책을 봤었습니다. 가장 쓸모없는 학문이자 백성의 근간마저 뿌리뽑았던 최악의 적폐였던 성리학과 유교가 아직까지도 이어지는 사실이 사실 정말 안타깝습니다만 이 내용과 관련성이 없어서 여기에서 약간 접어두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병자호란에서 청군은 조선을 정벌할 수 있는 전략을 충분히 수립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방어전술이 산성에 집중되어있음을 파악하고 산성을 우회하여 한양으로 바로 공격하는 전격전을 수립하였으며 조선 왕실이 유사시 도성을 버리고 바로 강화도로 파천하는 전략을 미리간파하고 강화도로 가는 길목을 차단함과 동시에 일부가 강화도로 피난에 성공할 시 보강된 수군전력을 이용하여 강화도를 공략하는 전략까지 강구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는 무능한 정부는 정묘호란과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고 맙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남한산성의 군량과 산세가 험한 것만 믿고 무작정 들어갔던 정부는 굶주림과 물자부족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군병은 추위에서 제대로 결전조차 하지 못한 채 얼어죽기에 이르렀으며 설사 전투를 수행한다고 해도 화약이 부족하였고 훈련이 부족하여 태반이 무의미하게 전사하였습니다. 실제로 북문전투에서도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 조총수의 실수로 전군이 패닉상태에 빠졌고 청군의 기병대는 그대로 살육을 하였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위정자는 본인은 스스로 나서지 않고 입만 털고 있었습니다. 전투를 운운하면 어찌 학문을 하는 자가라는 핑계로 회피에 이르렀으나 유일하게 한명인 최명길은 그 적진을 뚫고 회담의 여지를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나라가 멸망하는 것보다 더 어려울 것 같은 일말의 희망불씨를 최명길 홀로 살려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최명길은 당대의 박대한 평과는 달리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매국노라는 오명을 쓴 신하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상당한 두께 만큼이나, 최명길의 생애와 그에 평가들을 통해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인물의 진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최명길 그는 누구였고 그가 바라본 지키고자했던 조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현재의 모습이 그 당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격변하는 중국과 미국의 국외적 상황과 여당과 야당의 끊임없는 적폐논란과 당파싸움을 보면서 과연 우리가 가져야할 냉철한 현실인식은 무엇인지 다시한번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 그의 책임감과 포용성과 유연함을 깨닫게되길 바랍니다. 병자호란의 배척당한 노련한 정치가 최명길의 진면목을 알게 되길 바라며 이 책을 추천하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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