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트 러브
시마모토 리오 지음, 김난주 옮김 / 해냄 / 201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퍼스트 러브



퍼스트 러브, 첫사랑이라는 제목이라 로맨스 소설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은 달달한 로맨스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버지를 살해한 용의자로 검거된 여대생과 그 여대생의 이야기를 쓰게 된 임상 심리 상담사의 이야기이다. 다소 무거운 친족 살해사건을 다루고 있어 로맨스 소설을 기대하고 이 책을 읽어보려고 했다면 다소 자극적이고 짙은 무거운 소설이라는 것을 밝힌다.



이 책은 화가이자 예술가인 아버지와 전업주부인 엄마 사이에 아나운서를 꿈꾸는 여대생이 아버지를 살해한 용의자로 검거된 여대생 칸나의 이야기와 칸나의 이야기를 논픽션으로 집필하게 된 임상 심리 상담사 유키의 이야기 이렇게 두 개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일단 칸나의 이야기를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칸나의 이야기를 집필하게 되면서 자신의 심연 속 묻어두었던 상처들과 마주하게 된 유키의 이야기도 함께 다루어 가장 가깝고 사랑받는 것이 당연한 이들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받은 인물들을 통해 어쩌면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할지도 모르는 사랑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선생님, 저 여기 온 뒤로 계속, 흐물흐물한 괴물을 찌르는 꿈을 꿔요. 징그러워서, 몇 번이나 찔러요. 뭐랑 비슷하다고, 줄곧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누군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저는 왜 이런 곳에 있는 인간이 된 거죠? 역시 내 머리가 이상한 건가요?


칸나씨 사건 당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가령 칸나 씨 내면에 있는 스위치가 켜질 만한 사건은 없었어? 아주 사소한 말일 수도 있고, 상황일 수도 있는데, 그걸 알고 싶어.


...


그러니까 그 정도로 과거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게 아닐까? 가가와 씨 말이, 칸나 씨가 습관적으로 손목을 그었다고.


그 순간, 칸나가 눈에 보일 만큼 심한 혼란에 빠졌다. 거부하듯이 울면서 고개를 마구 저어 댔다.


...


"제 탓이에요...... 전부 제 잘못입니다."


- p. 99-100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소설의 중 후반을 지날수록 이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생명을 가진 존재로 태어나 가장 먼저 사랑받게 되는 존재들에게 상처를 받은 이들의 이야기가 너무 무겁고 우울했기 때문이다. '퍼스트 러브'라는 이 책의 제목은 결코 설레고 풋풋하고 조심스러운 이미지가 아니다. 무겁고 우울하고 차가웠다. 마땅히 사랑받아야하는 이들의 사랑이 아닌 상처를 받게 된 인물들을 보면서 점점 더 적나라하고 충격적인 진실들을 마주하게 되니 상처의 깊이가 있는 그대로 느껴져 감정소모가 심했다.


저자의 문장은 날카롭다. 담담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날카로움과 무거움이 있다. 인간의 가장 밑바닥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퍼스트 러브는 부모의 사랑이다. 그리고 이 책은 퍼스트 러브, 부모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내용적인 면에서 이 책은 술술 읽혔다. 하지만 그래서 심리적인 면에서 이 책이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참혹한 진실들을 마침내 마주했을 때 그 진실이 있는 그대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 책은 화가인 아버지가 죽지 않고 칸나가 살해범으로 몰리지 않았으면 몰랐을 끔찍한 진실들을 독자로 하여금 저자의 담담한 문체로 마주하게 하면서 퍼스트 러브, 부모의 사랑에 대한 의미를 진지하게 고찰하게 만든다. 그리고 서로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두개의 이야기들이 서로 교차되면서 더욱 더 이야기가 쉽게 다가오고 명확하게 다가왔다. 진실은 심연의 끝없는 어두움을 마주한 것 같은 두렵고 참담했지만 묻어두었던 심연의 어두움을 두 인물 (칸나, 유키) 모두 마주하게 되면서 마지막 그 결과가 최선의 결과가 아닐지라도 용기있게 마주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장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게 한다.



흔히 우리들은 상처를 마주했을 때 특히 가장 가까운 이들과 상처를 받고 주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채 어물쩡 넘어가고 그 상처는 천천히 곪아 어느새 돌이킬 수 없는 흉터를 남기는 것 같다. 이 책은 참혹한 사실을 너무도 담담한 문체로 이야기한다. 특히 칸나가 유키에게 쓴 편지들이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칸나의 글과 마지막 재판을 하면서 부정하고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 칸나가 담담하게 말하는 장면에서 자칫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이 책은 가장 보호받아야하는 존재에게 외면당하고 비윤리적인 심리적 학대를 받았던 칸나와 부모와의 소통에 실패하고 상처받았던 유키, 그리고 역시 부모와의 어정쩡한 관계로 인해 상처받았던 가쇼의 이야기까지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받은 상처를 입은 이들을 통해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가족의 관계성, 가족의 사랑에 대해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상처와 치유 그리고 성장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을 읽으며 당연하고 마땅하게 생각했던 가족과의 소통, 가장 밑바닥의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소설이었다. 그리고 상처란 특히 가장 사랑받아야할 존재에게 받은 상처란 제대로 마주하기 힘들기에 그래서 더 대물림되기 쉬우며 상처는 나둔다고 저절로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치유가 필요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책을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상처를 받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나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아는지, 가장 기본적인 울타리가 되어주어야할 가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되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