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한 사람들

6. 다시, 책 읽기에 대하여




 글을 쓰다보니 책 이름을 많이 말하고 싶은 욕구가 계속 떠올라 조심스럽습니다. 좋은 책을 나열하는 글이 되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에 책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여기까지만 하려고 합니다.




 간혹 친구들에게서 책을 추천해달라는 말을 듣곤 합니다. 그럴 때면, 매번 조심스럽습니다.

실은 좋은 책이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독자적인 우주를 가진 존재이고 그 존재가 지닌 사고의 결은 모두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다는 행위를 일종의 만남이라고 규정한다면, 사람에 따라 좋은 만남이 다른 것처럼 제게 참 좋았던 책도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는 좋지 않은 책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만남은 개별적이고 독자적입니다. 연애로 힘들어 하는 후배에게 좋은 충고를 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다만 책을 읽는 것과 관련해 한 마디만 보태려고 합니다. 카프카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내 머리를 산산히 망치로 부스는 것과 같은 충격을 주지 못한다면 무엇하러 책을 읽는가’ 라고요. 물론 책을 읽는다는게 찜찔방에 가서 몸과 마음에 휴식을 갖는 것처럼, 헐리우드 액션영화를 보고 나서 때로는 머리가 개운한 것처럼 그런류의 즐기는 행위일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요.




 책을 읽다보면 감사할 때가 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혼자 알지 않고 무슨 이유에서건 글로 남겨 수백년이 지난 세월을 살아가는 나와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주었을까 싶어서요. 카프카의 말처럼 그런 책들은 때때로 불편하고 때때로 사람을 뒤흔들어 놓아, 그들을 만나고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사고하는 폭이 달라지고 사고하는 언어가 달라지는 거 말이예요.




 어려운 사고를 하게 되고 현학적인 말을 쓰게 되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좀 더 정직하게 자신을 바라볼 용기를 얻고 또 좀 더 진솔하고 정확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길을 알게 되는 그런 것이지요. 진리는 명제화된 무언가가 아니라, 진실하게 사는 행위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리는 인식해야 될 대상이 아니라, 살아내야 할 시간인 것이지요. 우리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신만의 진리를 가질 수 있고, 우리 삶이 모두 독자적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베스트셀러에 주목하되, 경계하셨으면 합니다. 베스트 셀러들은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책이 팔리는 공간은 수요과 공급이 만나는 시장이라는 사실 역시 잊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신의 삶을 경영하는 방법들이 인기가 좋은 것이 최근 몇 년의 추세입니다. 가슴이 따뜻해 지는 이야기들을 모은 모자이크와 같은 책 역시 하나의 축을 형성하고 있구요. 하지만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절실한 것이 경영기술일까요. 물론 각자 알아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21세기 한국에서 필요한 생존기술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책들이 한 인간이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지리한 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서, 그럼에도 우리가 별개의 존재일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 무엇을 알려줄까요. 기술적으로 사무적으로 만나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부모나 형제나 아내나 가까운 친구와 같은 존재를 대함에 있어 어떤 인내를 가르쳐 줄까요.




 가슴이 따뜻해지는 여러 이야기를 읽는다고 가슴이 따뜻해질까요. 물론 책의 광고처럼 메마른 마음을 적셔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이 온통 추운데 자신의 방에 보일러가 고장나지 않았다고 만족하는 진리가 삶의 자세가 꼭 책을 통해 얻어야할 무언가일까요. 정말 가슴이 따뜻해지는 길은 고통 뒤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한 칸트처럼, 아주 불편하고 어려운 일입니다. 대한민국에 통계로 잡히는 노동자들 중에서만 하루 8명씩 노동재해로 죽고 200명이 다치는 사실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지요. 대한민국의 5%가 넘는 장애인들의 한 달외출 일수가 5일이 채 안된다는 이야기를 아셨는지요. 가깝게는 지하철에서 선로에 뛰어들어 자살을 하는 사람을 치이고도 계속 운전해야 하는 지하철 승무원 분들의 삶도 모르셨을테니까요. 일상의 소소한 따뜻함과 즐거움을 아는 일은 소중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서 있는 땅에서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함께 알아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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