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한 사람들
5. 예술 : 아름다움을 찾는 일에 대하여
무언가를 읽고 보고 듣고서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떨 때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을 받을까요. 칸트는 <판단력 비판>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을 느끼는 행위를 지성과 감성이 만나 유희하는 행위, 그러니까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이 함께 어우러져 뛰노는 데서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이 있다고 했어요.
그 말은 거칠게 표현하면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을 느끼는데 이성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어떤 작품은 따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마음을 흔들 수 있지만 제 경우는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대체로 맞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노래를 아주 못합니다. 노래방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겁부터 날만큼 노래를 못하고 그림도 그만큼 못 그립니다. 그런 저 자신이 안타까워 그림이라도 열심히 공부해서 좀 더 좋은 눈을 가져보자는 결심을 대학시절 했었습니다.
처음에는 시공사의 디스커버리 총서를 사서 마네, 모네 등의 화가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지금 다시 그림 책을 사서 보라고 하면 시공사의 책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누가 산다면 말릴 계획입니다. 다름아닌, 전두환의 아들이 운영하는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몰랐었습니다. 5.18 광주 민주화 항쟁을 아시는지요. 수백명의 광주시민들이 군부정권에 의해 학살당한 사건인데, 그 학살을 지휘한 한가운데 전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이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는 운동에 동참하지는 못하더라도, 현대사에서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에 대한 예의는 갖추면서 살아야지요.
그리고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2번 읽었습니다. 학교에서 교양 수업으로 같은 제목의 수업을 2번씩 들었구요. 그림 전시회도 부지런히 찾아다녔구요. 그런 노력끝에 제가 얻은 것은 미술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었어요. 뭐였나면요, 제가 보기에 뭔지 모르겠는 작품은 감동이 없는 작품은 적어도 내게는 좋지 않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공부를 하기 전에는 오히려 뭔가가 있는 것이라는 허영에 빠져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함민복이나 황지우, 황동규, 정현종의 시를 좋아합니다. 제가 알아들을 수 있게 시를 써주거든요. 그리고 많은 시집들이 시집 한 권에 제 입장에서 좋은 시를 한 두개 이상 찾기 어려울 때가 많은데, 좋은 시인들은 시집 전체에서 어느 수준을 유지해 주더라구요.
전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책에 대해 말할 때도 가장 자신이 없는 분야가 소설이구요. 대학 1학년 때에는 김소진의 소설에 잠시 빠졌었는데, 요절한 작가인지라 출판된 책이 한정되어 있다보니 그 이후로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김훈의 <칼의 노래>를 저도 좋아하구요. 공지영의 소설 중에서는 전 <별들의 들판>이 가장 좋았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은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인데, 이 책은 내용을 고려할 때 쉽사리 추천을 못하겠습니다. 다만 저는 그 소설에 나오는 한윤희라는 여자 주인공의 캐릭터를 많이 좋아합니다.
재작년 여름 제가 너무 소설을 모르는 것 같아 문학평론가들이 뽑은 한국의 현대소설 베스트 5 목록을 신문에서 스크랩 한 후, 그것들을 읽었습니다. 최인훈의 <광장>은 비슷하게 이념의 문제를 다룬 밀란 쿠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보다 이름은 멋이 덜 멋지지만 더 훌륭한 소설입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은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생각하면서 읽으면 놀라운 소설이구요. 고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만났던 염상섭의 <삼대>는 이제와서 보면 좋은 소설이 분명할텐데, 아직 못 읽었습니다.
문학평론가의 글 중에서는 돌아가신 김현 선생님의 글을 좋아했어요. 그 양반은 뭐랄까, 일상적인 언어로 글을 써서 현학적이지 않은데 대단히 날카로우면서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다하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예술을 만나는데 있어, 그러니까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책을 읽음에 있어 자신이 편하게 접할 수 있는 것만 찾지 말기 바랍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감수성은 계발되고 훈련되는 것이거든요. 고등학교 시절까지 자신이 지닌 감수성의 땅을 적극적으로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으니, 대학시절부터는 평생 우려먹을, 평생 지을 건물의 땅을 산다는 마음으로 낯선 것들에 적극적으로 도전하셨으면 해요.
인권영화제와 같은 소수자 영화제를 찾아가는 것도 독립영화나 다큐멘터리를 찾아보는 일도 좋구요. 남미나 제 3세계의 음악을 들어보는 것을 정민아의 <상사몽>과 같은 퓨전 가야금 음악을 들어보는 것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