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한 사람들
4. 자서전과 평전에 대하여 : 우리가 타인의 삶을 알고자 하는 것은
저는 훌륭한 사람들은 자서전을 써주길 바랍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분들은 어지간해서는 자기 자서전을 쓰지 않으십니다. 최근에 돌아가신 아동문학가 이오덕 선생님 같은 분이 자서전을 남기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장기려 박사님 같은 분도 그렇구요. 그 분들께서 살아오신 모습을 생각하면 그런 일이 없을 줄 알면서도 미련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있어 후세에 평전들이 생겨나지요.
소크라테스와 예수는 직접 글을 쓰지 않았습니다. 부처와 공자가 직접 쓴 글은 아직 본 적이 없는데, 제가 확실히 몰라서요. 이 똑똑한 양반들이 왜 다들 글을 쓰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한번씩 해봅니다. 특히 노자 같은 아저씨는 성 문지기가 부탁하지 않았으면 아예 도덕경도 안 썼을 거 아니예요.
모든 만남은 일대일의 개별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해서였을까요. 그러니까 모든 개개인에게는각자 지닌 독자적인 삶의 역사에 기반한 의식구조가 있고 그에 따른 대화를 해야 하기에, 문자라는 보편적인 형식을 지닌 형태의 대화를 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화석화된 문자가 말 그대로 경전이 됐을 때를 걱정해서 였을까요.
여튼요. 저는 평전이나 자서전 류의 글을 좋아합니다. 역사속의 흔적을 남긴 인물이 아니더라도 자기 삶의 과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누군가의 인생을 따라가보는 일은 살아가는 힘을 줍니다.
그런데, 간혹 평전들은 상대방에 대한 존경이 지나쳐서 인지 사람을 신화화하고 사람냄새를 박탈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무언가 드라마틱한 느낌은 있을지언정 그에게서 우리가 진정 배워야 할 혹은 알고 싶은 인간적인 면모들은 거세시켜 버립니다. 그는 나와 같은 문제로 힘들어하고 좌절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누군가의 삶은 알고자 하는 원동력 아니던가요.
<닥터 노먼 베쑨> 같은 책이 그래요. 닥터 노먼 베쑨은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스페인과 중국 민중들을 위해 거침없이 살아간 훌륭한 의사입니다. 그런데 그 책을 읽다보면 그의 좌절과 고뇌, 갈등이 느껴지지 않아요. 저는 세상에 떠도는 ‘체 게바라’가 싫고 그의 평전도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싶어 손을 대고 싶지 않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냐면요. 간디의 자서전을 읽다보면, 간디가 10대에 조기 결혼을 해서 갈등하는게 나옵니다. 한창 성욕이 왕성하던 시기 절제를 못해서 힘들어 하는 간디의 모습을 볼 수 있거든요. 백범일지를 읽어보면 김구가 얼마나 투박하고 순박한 사람이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내용이 아니라 문체에서요. 거침없고 정직하구요. 그는 자신의 행위를 설명할 때, 수사어구를 동원하지 않아요. 전 그 문장으로 인해 김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김산/님웨일즈의 <아리랑>은 읽을 때마다 님웨일즈에게 감사하는 책입니다. 님웨일즈는 김산과의 대화를 통해 그의 이야기를 살아있는 내용으로 글로 남기는 일을 해주었습니다. 참고로 <아리랑>은 대학 1학년 때 읽을려고 하니 재미도 없고 내용도 딱딱해서 실패했었는데, 26살에 다시 그 책을 만났을 때는 너무나 감사했던 책입니다.
그러고 보면 책을 포함한 모든 만남은 시기라는 게 있습니다. 저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중, 고등학교 시절 읽지 못했던 게 안타깝습니다. <데미안>은 저처럼 대학생이 되어서 읽지 말고 십대에 읽어야 하는 책인 것 같아요. 아마 저는 세계 2차 대전 때 독일군 병사들이 참호에서 가슴에 품고 읽으며 느꼈다던 <데미안>의 감동을 저는 앞으로도 영영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성칠 교수의 <역사 앞에서>라는 책도 제가 아마 일찍 만났었더라면 그 가치를 몰라봤을 책입니다. 글을 읽으면 처음에는 별다를 것 없는 일기거든요. 드라마틱하지도 않구요. 한국전쟁을 거치며 그 이념의 혼돈속에서 역사를 공부하고 또 자신의 자존심과 존엄을 올바르게 지켜나가고자 하는 한 교수의 고뇌가 그 일기 속에 담겨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시대를 살아가야 하니까, 공자의 말처럼 어느 사회에서나 올바르게 사는 법은 있다고 하지만 그 길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러고 보니 <산정에 배를 메고>라는 이구영씨의 책도 있습니다. 남파 간첩으로 체포되어 징역을 살았던 이구영씨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담담한 문체로 이어지는 내용들을 읽다보면 묘한 감동이 밀려듭니다. 자신이 믿는 무언가를 쫓아 살아간다는 것이 때론 이런 것이기도 하구나 하는 마음이요. 아. 저는 감옥에서 쓰여진 신영복씨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서준식씨의 <옥중서신>을 모두 좋아합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면 전 단연코 <옥중서신>입니다.
그 이유 역시 제가 자서전 류의 글을 좋아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영복씨의 글은 참 정갈합니다. 차분하고 맑은 느낌의 글, 도대체 감옥에서 어떻게 이런 성찰들을 해 나가며 버티어 나갈 수 있는지 놀라울만큼 적개심이 그 책에는 없습니다. 물론 그것은 신영복씨의 훌륭함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서준식씨의 글을 읽다보면 그가 그 안에서 느껴야 하는 좌절과 답답함 그리고 자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느껴지고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자기자신과 싸워나가며 자신과 세상에 지지 않으려 애쓰는 그 눈물겨운 싸움들을 볼 수 있습니다.
좀 더 편안한 책들을 예로 들면 시인 백석과의 사랑을 다룬 기생 자야의 <내 사랑 백석>이나 <오체불만족> <기적은 당신안에 있습니다>와 같은 책들 역시 저는 좋았습니다.
하지만 물론 평전 중에서도 좋은 책들이 있습니다. 자서전이다 평전이다 하는 이분법적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한 것이겠지요. <전태일 평전>은 훌륭한 책입니다. 그것은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님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