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한 사람들

2. 고전은 힘이 세다.




 <내 이름은 김삼순>을 보셨는지요. 거기서 삼식이의 옛 여자친구가 아름다웠던 기억들을 말하며 삼순이에게 남자친구를 돌려달라고 말하자, 삼순이가 그런 말은 해요. “저. 그런데요 추억은 힘이 없어요.”




 여기저기서 온갖 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모 대학에서 꼽은 고전 100권이나 누구누구의 추천도서 같은 목록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요. 저명인사들은 이 책이 나를 바꿨다고 TV에 나와 책을 소개하기도 하구요.




 하지만 책은 종이와 잉크로 이루어진 무언가일 뿐입니다. 그걸 잊어서는 안되요. 책을 읽는 행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저는 싫어합니다. 좋은 책은 좋은 생각들을 제공해 줄 뿐, 사람을 바꾸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이고 그 관계에 대한 노력과 성찰이지요. 좋은 책을 통해 알게 된 무언가를 삶 속에서 꾸준히 되새김질하고 의심하며 삶 속에서 풀어나가지 않으면 당신이 읽었던 책은 그냥 종이와 잉크덩어리일 뿐입니다. 책에는 길이 없습니다.




 하지만 책 중에서 그나마 힘이 쎈 놈들이 있습니다. 이 놈들은 가히 책들의 대장이라고 할만합니다. 이 녀석들을 제가 감히 대장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의 거의 모든 놀라운 생각들이 이들에게 젖줄을 대고 있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였던가요. 상상력은 경험에서 나온다고요. 우리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데서 무언가를 만들어내지 못합니다. 그 시작과 전혀 다른 무언가가 만들어지는 경우가 있다 할지라도요. 인간이 만들어 낸 거대한 상상력의 시작은 앞서 사라져간 다른 거인들에게 빚을 지고있습니다. 미술도 문학도 철학도 모두 그렇습니다.




 대장인 그 녀석들을 저는 고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대장인 녀석들은 쉽사리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습니다. 삼천배를 해야 만날 수 있었던 성철스님처럼, 이들은 자신을 위해 오랫동안 준비해온 이들에게만 비로소 조금이나마 눈길을 돌립니다.




 저는 마르크스 <자본론 1권>과 플라톤 <국가> 그리고 프로이트 전집을 읽었고 스피노자와 들뢰즈를 읽다가 실패했습니다. 자본론은 인터넷에서 만난 사람들과 1년동안 참고서적 2권을 붙들고 2주에 한번씩 세미나를 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1권을 읽었습니다. 혹시 마르크스라는 학자에 대한 거부감이 있으신지요.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자연스럽게 떠올라 왠지 모를 두려움이 생기는지요.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영국 BBC 방송에서 지난 천년동안의 위대한 인물 100인을 뽑았을 때, 마르크스가 일등을 했었고 또 20세기의 많은 학자들이 마르크스에게서 거대한 상상력을 얻어갔다는 사실만 기억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마르크스는 그를 찬양하는 사람들과 그를 혐오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오해를 받아온 인물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저는 1년동안 공부를 하며 저 만의 마르크스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님의 침묵>에 나오는 시 구절처럼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언제인가 가까이 지내는 친구에게 그 감동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안되더라구요.




 프로이트는 우연히 알게된 대학원생들의 세미나에 끼어서 책을 읽었습니다. 혹시 본인이 책을 좀 많이 읽고 무언가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관심분야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공부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실제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비전공자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노력을 들인답니다. 프로이트 전집이 20권인데, 1주일에 한권씩 읽고 요약해 가는 세미나였습니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전공분야였던 심리학계에서 일정부분 사기꾼 취급받고 있기도 합니다. 심리학은 모르겠습니다만, 프로이트를 알고나면 예술을 예술사를 바라보는 눈이 한층 깊어지는 것은 분명합니다. 저는 6개월동안 세미나에 참석하고도 막상 저만의 프로이트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감동을 받지 못했던 것이지요. 아. 이 녀석과 나는 인연이 없나보다 하고 그럭저럭 지내던 어느 날 술을 먹다 선배가 프로이트에 대해 말해준 말 한마디를 듣고서 제가 공부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몇 분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그 느낌을 몸속 깊이 새길려고 애를 썼었습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트는 세미나를 통해 공부했지만, 다른 고전들은 모두 강의를 들었습니다. 아. 늦게 말씀드리지만, 전 고전을 혼자 읽지 않습니다. 제게 그만큼의 끈기가 없고 또 고전의 메시지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야가 제게 없다는 것은 확실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의 <국가>는 놀라운 책입니다. 만들어진지 2000년이 넘은 책이 어떻게 이렇지. 라는 말을 나오게 합니다. 한국에도 정약용이나 퇴계이황과 같은 훌륭한 학자들이 있지만, 플라톤의 <국가>는 그보다 더 놀랍습니다. 뭐냐면요. 너무 편안하게 말을 합니다. 아주 일상적인 문체로 삶의 모든 문제에 깊이있게 접근을 합니다.




 스피노자와 들뢰즈는 혼자 읽다가 실패를 했습니다. 라깡은 한 학기 동안 강의를 들었는데, 한번도 감동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라깡에 대해 지금도 기억나는 것도 아는 것도 없습니다.




 자. 고전의 힘에 대해 조금만 더 이야기를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지요. 에리히 프롬을 아시는지요. <소유냐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같은 책을 써서 유명한 사람입니다. 20세기의 사상가를 이야기할 때 리스트에 빠짐없이 들어가는 사람이지요. 그런데, 저는 에리히 프롬의 책을 마르크스나 플라톤과 같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에리히 프롬같은 대학자를 놓고 제가 감히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게 우스울 수 있지만 편지니까 편하게 이야기할께요. 그의 책을 저도 좋아하지만, 읽고서 좋다는 것 말고 그가 고전을 썼던 거인인가하는 문제는 다르니까요.




 그는 프로이트와 마르크스를 열심히 공부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두 거인의 어깨위에서 20세기를 날카로운 눈으로 관찰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좀 더 대중들이 읽기 편하도록 글을 잘 쓴 사람이지요. 혹자는 마르크스에서 계급투쟁을 빼고 프로이트에서 유아성욕론을 빼고 먹기좋은 음식을 만들어 배포했다고 말하기도 하지만요.




 많은 책들은 고전이 해놓은 거대한 사유의 품 안에 안주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 순간, 책의 저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거대한 사유에 빚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거대한 사유의 원천인 고전을 직접 만나고 그와 삶에 대한 많은 질문들을 던지는 일은 만약에 그것이 가능하다면, 당신이 세상과 새로운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행운의 여신을 만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혹시 대학 밖에서 고전을 만나고 싶은신 분이라면, 인터넷 창에 민족예술아카데미, 철학아카데미, 연구공간 너머 등을 쳐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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