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하미나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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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상 어느 정도의 우울감은 누구나 느끼는 감정이다. 하지만 그것이 극단을 달리고 자신의 일상생활에까지 침범하게 되면 치료의 순간이 온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 치료로 이어지기 위한 진단의 시간이다. 작가가 인터뷰한 수많은 인터뷰이들은 자신의 진단명을 찾기까지 꽤 오랜 시간을 허비해야했다. 우울증은 내부 문제이기 때문이다. 노란 콧물이 나오니 감기이고, 엑스레이 상에서 뼈가 부러진 게 보이니 골절이고, 폐에 자국이 있기 때문에 결핵인 것과는 결이 다르다. 이삼십대 여성인 인터뷰이들은 권력자인 의사의 앞에서 제대로 기억조차나지 않는 우울의 근원을 설명했다. 그들이 겪어야했던 개인적 서사와 더불어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압박, 만연한 여성 취약의 사회, 가부장적인 가정이 만들어낸 폭력 등 사회적 서사는 성인 남성의 정상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기준에 따라 판단되었다. 진단이라는 건 오랜 시간 동안 의문스러운 고통에 시달리던 사람들에게는 색다른 소속감을 주기도 했지만, 깊고 복잡하고 미묘한 고통을 납작하게 눌러버린다는 생각에 또 다른 고뇌를 주기도 했다.

 우울이라는 건 참으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다. 애초에 그 우울을 겪는 여성 본인조차 자신의 고통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게 대부분이다. 인터뷰이들 중 대부분은 자신의 고통의 시작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만큼 우울과 평생을 함께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우울은 주변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감정과 판단에 의문을 가지며 정상인으로 보이기 위해 자신의 고통을 억눌러야했다. 그리고 그것은 어느 순간 펑 하고 폭발하였으며 쉽사리 없어지지 않는 동반자가 되어버렸다.

 

 우울에 대하여 말하자면 병증, 치료, 원인, 당사자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존재. 돌봄의 주체가 있다. 전에 간병살인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중한 병을 앓고 있는 가족을 간병하다가 결국 살인에 이르게 된 케이스에 대한 책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어떤 맥락에서도 결코 이해되서는 안되는 행위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면 그 누구도 그들에게 살인마라며 손가락질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사회에 소외되어 독박돌봄을 해온 그들은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과 제대로 치유받지 못한 상처로 인해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우울증 환자의 돌봄 상대 또한 우리 사회가 지우고 있는 존재이지만, 분명히 인식하며 관심을 가져야하는 존재이다. 감정은 옮기 마련이다. 그들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에게 옮아져오는 우울을 감당하고자 선택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람에게는 언제나 지침의 순간이 올 수 있다. 그러므로 돌봄 상대 또한 자신의 감정을 풀어놓을 수 있는 또 다른 장치를 마련해야만 한다.

 

 이 책의 인터뷰이들은 각자의 이유로 인터뷰에 참가했다. 인터뷰로 치유를 받은 사람도 있고, 더욱 큰 고뇌를 맞이하게된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결국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여기 있으니 고독해하지 마세요.’가 아니였을까. 나는 동질감의 위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나의 못생김으로 괴로웠을 때는 못생긴 사람들이 쓴 글을 찾아다녔고, 군중 속의 고독을 느꼈을 때는 나와 같은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의 글을 찾았다. 취업을 좌절했을 때, 내 미래에 방황했을 때 모두 나와 같은 고민을 갖고 있는 사람의 글을 찾아 읽으며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곤 했다. 인터뷰이들은 자신의 말 한마디로 인해 누군가가 세상으로부터 똑 떨어진 느낌이 아닌, 나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걸 느끼고 그게 위로가 되길 원한다. 내가 세상의 유일한 하나라는 느낌이 위로가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무리 속에 섞여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라는 느낌이 안정감을 줄 때도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안정감을 찾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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