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 장도연·장성규·장항준이 들려주는 가장 사적인 근현대사 실황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1
SBS〈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제작팀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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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이 나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굉장히 기뻤다. 왜냐하면 나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의 열혈팬이기 때문이다. 우연히 파일럿으로 시작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라는 예능을 알게 되었고, 이후부터는 한 주도 빼놓지 않고 목요일만 되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를 처음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 빠지게 만들어준 에피소드는 바로 1화인 '암호명 마카로니 그리고 거짓말'다. 납치, 북한 공작원, 간첩 등 흔히 시사르포 프로그램에서 다룰 법한 이야기 전개에 나는 점점 빠져들었고, 뒤이어 가슴 아픈 반전을 알게 되자 눈물을 흘렸다. 이 에피소드 이후로 지금까지 매주 꼭 챙겨보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좋은 이유는 우리의 얼마 되지 않은 과거를 다룬다는 것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 다루는 사건들의 시점은 주로 1940~1990대의 근현대사이다. 그리고 이러한 근현대사의 역사는 아직까지 깔끔하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더러 있기 때문에 현재에 다루기 민감하고, 그러다보니 다루기를 피하는 편이다. 학교에서도 역사나 사회 시간에 근현대사를 중요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그러다보니 분명히 얼마 멀지 않은 시대에 우리 나라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잘 알지 못하는 사건이 많다. 주목받지 못하고 먼지만 쌓여가는 사건과 사람들을 다시 끄집어 내어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그 사건을 받아들여야하나 의문을 던지는, 근래들어 아주 의미있고 재밌는 프로그램이다. 이러한 프로그램이 책으로 나온다니.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책에는 방송에서 다뤘던 모든 에피소드가 들어가있지는 않고, 선별된 일곱 가지의 사건이 담겨져있다. 그 중 방송에서도 책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이다. 사람을 죽여 살인죄를 인정받아 사형을 받은 박흥숙은 당시에 '무등산 타잔'이라는 별명으로 신문에 보도되었다. 단단한 몸과 매일 몸을 단련한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 그리고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까지. '공포의 무술인'을 떠올리는 그의 별명 '무등산 타잔'. 하지만 이 사건의 내막은 전혀 달랐다. 가난함에 못 이겨 가족끼리 뿔뿔이 흩어져 살던 중학생 어린 나이의 박흥숙은 가족끼리 살아보고싶다는 소망 하나로 어린 나이에 직접 집을 짓는다. 겨우겨우 완성한 조그만 집에서 박흥숙의 가족은 옹기종기 모여 산다. 하지만 그 집은 허가도 받지 않은 '불법 건축물'이었다. 그 불법 사안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놀랍게도 박흥숙은 자신의 집이 무너졌을 때 분노한 것이 아니라, 자기보다도 힘없고 늙은 사람의 집이 무너졌을 때 분노했다. 박흥숙의 사연을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의 아픔과 분노에 공감하고 연민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결국 사형을 받았다. 그의 마지막 말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그럼 우리는 어디서 사냐'라고 묻자 '안 보이게 굴이라도 파서 살아라'라는 답을 들은 박흥숙은 실제로 굴을 파서 집을 만드려고 했었다. 그렇게까지 해서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던 박흥숙은 '우리가 개돼지만도 못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죗값을 치렀다. 

 

 서진룸살롱 살인사건은 실제로 TV 방영 직후 범죄 미화 논란이 있었다. 조폭 놀이를 하며 사람을 살해한 고금석을 이후 죄를 뉘우치고 반성했으며, 산동네 초등학생들의 키다리 아저씨가 되어주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 또한 가해자를 미화하는 것이 불쾌했기에 방송을 봤을 당시에는 의아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책을 펼치고 하나하나 글을 읽으며 사건을 다시 되짚어보니 이 일을 특히 조명하고자 한 제작진의 의도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사람은 변하는가.' 예전부터 이어져 온, 아무도 명확한 대답을 내리지 못한 이 질문을 제작인은 다시금 언급해보고 싶었던 듯 하다. 나는 각종 쏟아지는 강력범죄에 관한 뉴스를 보면 늘 생각했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아." 사람을 잔인하게 죽여놓고도 뻔뻔하게 기억이 안난다 말하는 가해자를 수도없이 본 까닭일까, 아니면 모자란 죗값을 치르고 나온 후 또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파렴치한을 너무나 많이 본 까닭일까. 나는 사람은 변하지 않으며 악인은 반성하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TV로 해당 에피소드를 볼 때에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내 확답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정말로 고금석, 그가 반성하지 않았다면, 어차피 죽을 몸, 뭐하러 기도를 드리고 자신의 영치금을 기부했을까. 그가 저지른 죄는 나쁘다. 그가 어떤 반성을 한다고 해도 그가 죽인 사람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죄를 참회했고 자신에게 주어진 죗값을 받아들였다. 사람은 변할까.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반성했을까. 그 깊은 속내까지는 알 턱이 없다. 하지만 굳건히 가지고 있던 생각에 물음표를 찍게 된 사건이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이 나오고 나면 으레 나오는 반응은 '저런 일이 있는 줄 몰랐다.'이다. 그 일이 고작 30~40년 전에 일어난 일인데도 말이다.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역사에 무지하고 과거에 무딘지 매번 새롭게 느끼곤 한다. 가까운 과거로부터 되짚어 보고, 그에 따른 의문에 답을 찾아야 가까운 미래의 답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각종 음향 효과와 자료화면을 통해 한 편의 영화를 보듯 티비 프로그램으로 보는 것도 재밌지만,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과거의 그 때를 문자를 그리며 천천히 되짚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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