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어 말한다 - 잃어버린 말을 되찾고 새로운 물결을 만드는 글쓰기, 말하기, 연대하기
이길보라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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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펼쳐 읽어보기 전, 나는 이 책이 무엇을 말하는 책인지,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아무런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길보라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만으로도 나는 작가가 최소한 내가 듣고 싶은 얘기를 해줄 수 있겠구나 기대했다.

 이 책의 가장 큰 소재는 코다이다. 코다는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비청각 장애인 자녀를 뜻하는 말인데, 나는 이 단어를 책을 통해 처음 들어봤다. 그리고 그러한 위치에 있는 아이들이 원치않는 상황, 이를 테면 보호자인 부모를 보호해야하는 상황에 놓인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아이들이 부모에게 남모를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점도 말이다.

 책에 작가와 비슷한, 코다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 미라클 벨리에가 소개된다. 나는 이 영화를 이전에 본 적이 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벨리에는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코다이다. 그녀는 특히 노래에 재능이 있다. 하지만 가족은 수어를 통역해줄 자신이 있어야한다. 벨리에는 자신이 가족을 돌봐야한다는 생각에 잠시 주저하지만 이내 사실 부모는 이미 자신이 없기 전부터 잘 살아왔고, 그 이유로 자신의 꿈을 접는 건 말도 안된다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꿈을 향해 날아간다. 노래라는 자신의 재능을 부모 앞에서 펼쳐보이면서.

 영화 속 벨리에는 부모의 보살핌을 받아야하는 자녀이지만 유일한 청인이기 때문에 마치 가장처럼 가족을 돌보며 책임감을 느낀다. 벨리에처럼, 그리고 어릴 적의 작가처럼 청각 장애인 부모를 둔 아이의 경우, 부모의 의사소통을 도우며 부모를 보살필 것을 강요받는다. 장애라는 편견에 갇혀 부모가 성인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그런 분위기가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작가는 부모에게 카세트를 사달라 얘기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낀다. 부모는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화 속 벨리에는 자신의 노래라는 재능에 죄책감을 느낀다. 부모는 자신의 재능을 절대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미묘한 죄책감은 코다만이 느끼고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책을 통해 전혀 모르고 있던 타인의 세계를 조금 엿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가는 참으로 불편하고 예민한 사람이다. 작가는 사소한 것도 절대 그냥 놓치지 않고 관찰하며 그 사소함이 어디서부터 온 것이고 대체 왜 자신을 신경쓰이게 만드는지 고심한다. 장애인을 보며 눈물 짓는 방송, 당연하게 마이크를 쥐는 남성, 지원을 받기 위해 벌이는 가난 경쟁, 예심위원을 한다고 하자 들었던 개고생이라는 말. 어떻게 보면 그냥 흘려 듣고 넘길 수 있는 말을 작가는 절대 흘리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 벌어진 이유, 그런 말이 나오게 된 이유, 자신이 예민하고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을 던진다. 나는 작가가 심심치않게 피곤하다라는 말을 들었으리라 예상할 수 있었다. 대체로 우리 사회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을 그닥 반기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우리는 라는 질문없이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을까? 그것이 과학이든 기술이든 철학이든 예술이든 정치이든 말이다. 세상은 언제나 예민하고 불편한 사람들에 의해 의문이 제기되고, 그 의문을 푸는 과정에서 발전했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말이 있다. 그 때에는 당연히 정답인 줄 알았던 것이 시간이 흐르고 또 다른 개념과 정의가 들어서면 다른 것을 넘어 틀린것이 될 수도 있다. 세상에 확신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걸 배웠다. 당연히 자식이 의사소통이 잘 되면 기꺼이 부모의 수발을 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장애인을 다룬 방송을 보면 습관처럼 불쌍해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은 개고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 ?’라는 질문을 던지자 내 안에도 의문과 불편함이 피어났고 이내 다른 관점으로 생각해보고 반성해볼 수 있었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있는 기쁜 기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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