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트렁크 팬티를 입는다 - 까탈스런 소설가의 탈코르셋 실천기 삐(BB) 시리즈
최정화 지음 / 니들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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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학교 신입생 때 매일 오전 550분에 일어났다. 학교에 일찍 가기 위해서나, 공부를 하기 위해서 그렇게 일찍 일어난 게 아니다. 준비를 하기 위해서였다.

 눈 뜨자마자 머리를 감으러 들어갔다.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샴푸, 트리트먼트 두 개를 사용해 감고, 타올 드라이를 한 후에는 미스트도 뿌렸다. 고데기를 할 수 있을 정도까지 머리를 말리는데도 짧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머리를 얼추 말린 후에는 화장을 해야한다. 로션, 선크림, 프라이머, 컨실러, 파운데이션(그날 그날 내 피부 컨디션에 따라 스펀지로 바를지, 브러쉬로 바를지 달라졌다.), 파우더, 블러셔, 쉐이딩, 섀도우(최소 2), 아이라이너, 마스카라, 아이브로우, 마지막으로 립스틱까지.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지난 밤에 준비해두었던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차려입고, 그동안 달궈놨던 고데기로 헤어 스타일링까지 해야한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나면 드디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평발인 나에게는 더더욱 불편한 구두에 발을 욱여넣고 현관문을 열고 나면 눈 뜬지 2시간은 지나있었다.

 그래도 그 때는 그렇게 꾸미는게 즐거웠다. 중고등학생 시절 틴트도 바르지 않던 나에게 화장과 치장은 신세계였다. 2시간동안 공들여 준비하고 나가면 들을 수 있는 예쁘다소리가 내 자존감을 채워준다고 생각했다.

 내가 좋아서 하는 거라고 생각했던 꾸밈은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조그마한 용돈으로 화장품과 옷을 사들이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매일 아침 꼭두새벽에 일어나는 것도 힘들어졌다. 뿐만 아니라 화장을 한 얼굴이 내 진짜 모습이라는 착각이 들었다. 어쩌다 늦잠을 자서 화장을 못하는 날이면 맨 얼굴이 창피해서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나서야 나갈 수 있었다. 뽀얗게 칠하지 않은 내 얼굴은 창피한 얼굴이 되었고, 2시간을 들여서 만들어 낸 내 얼굴이 나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맨 얼굴을 드러내는 게, 나의 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점점 창피한 일이 되어갔다. 더운 여름 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마스크로 화장기 없는 얼굴을 가리고 사람들 틈속을 수그리며 지나갈 때, 그리고 맞은 편에서 나를 향해 오는 친구가, 화장기 하나 없이 다크서클이 드러난 얼굴을 하고도 환하게 웃으며 걸어오는 모습을 봤을 때, 나는 그제서야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떤 것이 나를 불편하게 할 때 그게 진짜 나를 불편하게 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아니면 단지 전에 그런 경험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즉 낯설기 때문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디폴트로 화장을 하던 모습에서, 당장 맨 얼굴로 다니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꾸 옅은 눈썹이 신경쓰였고, 울긋불긋한 내 볼이, 유달리 작아보일 것 같은 내 눈이 신경쓰였다. 한 겹 화장이 둘러져 있는 얼굴에서 벗어나는 건 불편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람들은 내게 무관심했다. 내가 화장을 하던 말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러거나 말거나 점심에 뭐 먹을지가 더 중요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저 이전에 그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느꼈던 것이다. 화장을 하지 않아서, 책 속에 나와있는 것처럼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서, 혹은 제모를 하지 않아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허상일 가능성이 높다. 누구나 낯선 것에는 경계심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낯설다고 피할 필요는 없다. 조금만 그 낯섬을 견뎌보면 편안함의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화장 안 하는 게 무조건 예쁘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나는 우리가 예쁠 필요가 없다는 얘길 하고 싶다.”

 학생들이 짙은 화장을 한 모습을 본 어른들이 으레 하는 말이 있다. “니들 나이 때에는 그런 거 안 해도 이뻐.”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의문이었다. 아니. 나는 전혀 안 예쁜데? 나의 젊음을 접목시켜 판단해보려고 해도 아닌 건 아니였다. 중요한 건 예쁘고 안 예쁘고가 아니라는 건 뒤늦게서야 알았다. 나는 지금도 내가 그리 예쁜 편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예전처럼 그 사실에 연연하며 안 예쁨이라는 글자에 을 떼어보고자 노력하지 않는다. 안 예뻐도 괜찮다. 내가 얼굴로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닌데 굳이 예뻐야 하나? 나는 나대로의 매력이 있다. 그 사실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여자라면 예쁘기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만약 내가 작가와 같은 인생 선배를 일찍 알게 되었다면 더 빨리 달라질 수 있지 않았을까?

 나는 화장의 속박에서는 벗어나 자유롭지만 그 외의 것들에서는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브래지어를 벗는 것, 새로운 속옷을 착용하는 것, 면생리대를 사용하는 것은 아직 나에게 높은 벽처럼 느껴지는 일들이다. 누구도 나에게 책 속의 모든 것들을 시도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만일 지금 그대로의 상태가 편한 사람이라면 그저 책을 한 번 읽고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하고 책을 덮으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는 일상 속에서 작은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한 사람이다. 슬슬 꽉 조여오는 바지가 불편하고, 계속해서 나가는 꾸밈 지출을 줄여야 할 필요성을 인지하고 있고, 고통스러운 생리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나처럼 변화하고 싶고,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먼저 변화의 길을 걸어본 사람의 지난 경험을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가장 먼저 트렁크 팬티를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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