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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정리를 하고 넘어가야 할거 같아서 적어본다.

목요일에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참을 수 없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운동하면서도 계속 울고 그 다음날도 근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우울해지고 인생이 억울해 졌다. 내 모든 관계에 환멸을 느꼈다. 관계를 그만두고 떠나고 싶다는 느낌이 강렬했다.

감정이 지나가기를 기다려 보는 여유가 없었다. 물론 글로 쓸 여유도 없었다.

엄마와 이야기 나눈 내용은 내가 공부도 많이 하고 직장에도 다니면 편하게 살 줄 알았더니 너무 고생스럽게 산다는 이야기였다. 현미 신랑이 보기보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두 가지 내용이 내 감정을 흔들었는데. 내가 엄마에게 훌륭하다고 인정을 받는 게 아니라 동정을 받는 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고 현미가 살고 있는 삶이 엄마에게 크게 인정받고 있다는 사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또한 아직도 엄마의 말과 인정에 휘둘리는 내가 싫었다. 나는 독립했고 엄마가 인정을 안 해주더라도 내 삶은 하나도 영향이 없는데도 엄마의 말 한마디와 인정에 내가 이렇게도 흔들린다는 것이 힘들었다. 엄마의 말은 나에게는 하나님의 나에게 주신 소명을 잊게 하는 사탄의 말 이기도 하다.

내가 크게 흔들린 이유는 엄마의 말이 아주 틀린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난 내 삶이 무척이나 고단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현미에 비해서 또 크게 나은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으로나 행복지수 면에서나) 그 사실이 현실이라는 것 또한 나를 절망하게 했다.

설 명절 때 보여준 남편의 행동 또한 나를 절망하게 만든 원인 중에 하나이다. 어머니는 분양 받은 집에 입주할 듯한 말을 형님에게 하고 있었다. 나는 전혀 모르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경제적으로 우리집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계시니 내가 모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거였다. 당장 남편에게 사실 확인과 또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 캐묻고 또 캐물었다. 평소에 내가 돈을 버니까 남편은 내 눈치 보는 것 없이 시댁에 경제적 시혜를 베푼다. 물론 그가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걸 알기 때문에 나도 딱히 싫지는 않았다. 그것으로 인정받는 마음이 충족되면 된 것이지.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내가 모르는 경제적 의존부분이 또 추가된다고 생각하니 아..나는 시댁에서는 개호구로 취급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누이는 철저하게 출가외인을 표방하며 경제적 보탬이 없었고 형님 댁은 혼자 번다는 이유로 형님이 경제권을 틀어쥐고 자신의 자원에 낭비가 없었다. 시어머니는 막내(남편)앞으로 들어오는 설 명절 선물을 자신이 독점하는 것이 당연했고 남편은 우리 집 냉동실까지 털어와 그들을 먹였다. 그들은 잠시 인정의 말을 전하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나는 남편의 자원과 우리 집의 자원도 관리 못하는 개호구일 뿐이었다. 시어머니는 나와 남편의 협의도 안된 사실로 형님에게 잘난체를 하고 있었다. 나는 이번 설이 절망스러웠다. 왜 남편은 나를 이렇게 만드는지. 내가 이렇게 되려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건 아닌데. 이렇게 다 시댁에 퍼주려고. 나를 개호구로 생각하게 만드려고 그런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했다.

비교하자면 두 가지 나와 비교되는 삶이 있는데 그들은 또 공교롭게도 40살 동갑내기 이다. 그들에게 모두 질투를 느끼는 걸 보니 그들 나이와 내 나이가 뭔가 관계가 있는 듯 하다. 그들에게는 공통점이라면 내가 그들에게 꼭 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강하다.

첫째로 동생 현미는 직장에 다니지 않고 아이를 한 명 키우는 전업주부 이다. 남편을 고르고 골라 경제력이 있고 학식도 풍부하고 성격도 인자한 사람과 결혼했으며 지금까지 문제없이 살고 있다. 최근에 벤츠로 차를 바꾸고 또한 집도 하나 장만하게 되어 경제적으로나 노동적인 면으로도 풍요로운 삶을 살아내고 있다. 엄마에게도 가장 걱정을 주지 않은 딸로 하나님의 사랑을 외치며 교회도 열심히 다니고 있다. 아마도 현미는 자라는 내내 나와 비교 되었을 것이다. 학창시절 그녀가 공부를 그리 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존심은 높아서 늘 그것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가만 보면 엄마와 가장 성격적으로 비슷한 딸이 현미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뛰어났지만 지금은 엄마에게 나의 고생스런 삶으로 걱정시켜주는 딸이 되었다. 엄마의 잘못은 아니다. 엄마는 내가 원하는 바와 달리 나를 잘 이해 못하고 있다. 나는 꼭 내 욕심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직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다시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다) 모든 부모들은 자식이 사회에 순응해서 일반적이고 편안한 삶을 살기를 바라지만 나는 생각해보니 엄마의 뜻에 따르지 않은 지가 꽤 오래 되었다. 대학 때도 여자에 어울리지 않는 일도 엄마의 바램과 다르게 거침없이 했었다. (현미는 그러고 보니 그렇지 않았다. 결국 엄마의 바램 대로 살아온 것은 바로 현미 이다. 교회 일도 그렇다) 지금도 내 열망과 노력을 엄마는 이해 못한다. 어린 시절에는 그 사실을본능적으로 깨달아서 엄마의 인정을 멀리 했었는데 지금에서야 다시 흔들리다니. 나도 엄마의 인정을 어지간히 받고 싶었구나라는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다 이해 못하니까 .엄마를 이해해야 한다. 엄마 나이 때 사고 폭은 그 정도 이다. 더 넓은 것을 생각하지 못하신다. 그저 자식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인 내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엄마가 바라는 바와 달리 어떤 운동과 투쟁의 심정으로 직장을 힘들지만 유지하고 있다. 나와 같은 여성들이 어떤 공부를 하고 일을 해도 잘할 수 있다는 것. 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내 조카와 아이들에게 남녀 구분 없이 공부의 분야를 선택해도 좋다고 말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꼭 여성이 진출해도 되는 분야와 안 되는 분야를 설명하고 있는 내가 초라했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 조직에서라도 전산실에서 여자도 일할 수 있고 받아줄 수 있고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굳이 이야기 하라면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일하고 있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엄마와 다른 사람이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의 개별성을 내 자신이 그 동안 인정을 못하고 있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인정을 못해줬는데 누가 해주랴. 나라도 인정해주자. 나는 투쟁하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그렇게 애쓰는 것이 내 삶이라고. 누가 인정해주지 않더라도(설사 그게 부모라 하더라도) 괜찮다고. 어쩌면 나의 개별성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두번째로 사무실의 지** 이다. 그녀는 나와 같이 직장에 다니고 아이를 둘 키우는 힘든(?) 삶을 유지하고 있다. 내가 연대의 손길을 내밀기도 하고 그녀의 이야기도 들어주기도 하고 하였으나 이 사람은 내게 무슨 악감정이 들었는지 아니면 본래 그런 사람인지. 내 이야기는 한번도 물어봐 주지도 않고 자신의 경제적인 자랑이나 자식 자랑에 집중하였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녀의 대화에는 끼어들지 않았다. 그 대화로 인해 나는 약간의 상처로 우울해졌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직장에서 내가 하는 노력들과 다르게 그녀는 다른 행보를 했다. 이기적으로 직장 생활을 했고 계약직 처럼 직장 생활을 했다. 그런데도 자신의 경제적 상황이 좋아져서 인지 여전히 차, , 집안 가구, 전자제품, 아이의 학교성적, 공부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고 고개가 수그러들지 않았다. 조직생활에서 복종이 없었다. 아마도 내 경제상황과 그녀을 비교해서 자괴감이 들었던 것 같다. 회사생활을 내 가치관대로 하는 것이 크게 이 세상과는 상관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직이나 타인이 인정을 해 주는 것도 아니고 나는 가정을 그녀에 비해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은 죄책감. 그런데 물리적으로도 정말 너무 몸이 힘들고 시간도 없었다. 전업주부 한테서나 또는 슬렁슬렁 일하는 동료한테서나 인정도 못 받고 그냥 욕심 많은 사람, 무리하는 사람으로 치부되어서 사는 꼴이라니…...결국에 와서는 체력적으로도 방전되어 있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 울어도 울어도 울음이 그치지를 않았다.

나의 개별성을 나 조차도 인정 못 해준 결과 이기도 하다. 난 여성이면서도 하고자 하는 열망이 많은 사람이라 세상의 저항도 많고 사람들이 인정을 안 해줄 경우도 많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인지 하였다. 그리고 나를 천천히 보아주지 않은 사람들의 인정까지 바랬던 사실이 나의 큰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도 하나님이 주신 깨달음이다. 그리고 실격당한자들을 위한 변론이라는 책을 읽고도 깨달았다. 108배도 했었고 기도도 하였다.

내 삶에 이런 깨달음을 주시는 분이 바로 나의 하나님이다.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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