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 예문 / 1995년 9월
평점 :
절판


<달에 울다>를 읽고 난 뒤 강렬하게 남는 인상은 '애잔함' 이였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마음속의 여운이 계속 남아서 다시 한번 읽었다. 인생의 무상함에 대한 애수가 달에서도, 비파 소리에서도, 병풍에서도 그리고 사과에서도 풍겨나는 것을 느꼈다. 그러한 이미지를 전해주는 방식에 있어서 작가의 탁월함이 돋보였다. 마루야마 겐지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볼 수 있는 좋은 작품이였다.

<달에 울다>에서는 인생이라는 무대 위에서 묻혀져 가는 영혼들의 정신 세계와 그것을 담고 있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무대 배경을 참신한 감각으로 잘 전달해 준다. 그 훌륭한 수단으로 설정된 것이 시각적 영상미이다.

산 위의 달, 사과나무에 비치는 햇살, 거기 모여드는 꿀벌, 종달새, 바위 위로 뛰어 다니는 사슴... 마치 소설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들의 생을 더 슬프게 하는 것 같다.

병풍 속의 달은 '여기까지 끌고 온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세월' 을 비추는 서글픈 역할을 하고, 얼어붙은 호수와 고요한 마을은 잘 때마다 쇠약으로 향하는 인간들을 묵묵히 방관할 뿐이다. 철저히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인간은 한편의 꿈을 꾸지만, 꿈꾸는 그곳은 빛도 어둠도 없는 공간이다.

실존을 경험하는데 실패한 허무의 세계. 자신의 혼과 마주하고 싶은 심정을 원한다면 바로 그런 곳일 것이다. 나와 대면할 수 있는 곳 - 고통과 광기를 지나온 인생이 서야하는 그 현장에서 혈액보다 더 뜨거운 영혼을 생각할 수 있다.

고독은 삶의 뒤안길로부터 새 희망의 정수박이를 잉태할 수 있는 위대한 자리이다. 병풍속의 공허한 세계로 나를 이입시키며 그 위대한 자리에서 나를 돌아본다면, 아련하고도 서글픈 환영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동의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에 이끌려, 내게 주어진 인생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힘을 가져본다. 결코 무상하다고 할 수 없는 인생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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