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경제학 - 왜 부족할수록 마음은 더 끌리는가?
센딜 멀레이너선 & 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결핍에 따른 압박이 아무리 말리고 붙잡는다 해도 거기에 굴하지 않고 대역폭을 관리하고 강화하는 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p.333)

 

우리가 원하는 것은 너무나도 많은데 그것을 만족시켜줄 자원은 늘 부족하거나 제한되어 있는 것을 희소성의 원칙이라고 한다. 경제문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이 희소성의 원칙 때문이다. 부족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주어진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거나 최소의 비용이 들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경제원칙이라고 한다.

 

이처럼 자원이 희소하기 때문에 우리는 늘 합리적인 선택을 하도록 고민해야 한다. 이처럼 경제활동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다른 것을 포기해야만 한다. 어떤 선택을 하던 간에 뭔가 다른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어떤 것을 선택할 때 포기해야 하는 것의 값어치를 기회비용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떠한 선택을 하던지 항상 기회비용이 발생하는데,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항상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한다. 기회비용이 지나치게 크다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인간상은 합리적인인간이다. 여기서 합리적이란 말은 희소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그럼 과연 우리는 경제 활동 즉, 경제적 행위나 선택을 늘 합리적으로 하고 있을까?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우리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평소 머리로는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행동은 그와 반대로 하는 아이러니한 경우가 부지기수이다. 인간은 객관적인 이성 못지않게 주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어서 주변의 상황이나 문화적 맥락 속에서 경제원칙과는 명백히 어긋나는 행위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이런 아이러니를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결국 좁게는 인간의 심리적 속성에 대한, 넓게는 인간과 사회 그 자체에 대한 충분한 연구와 이해를 바탕으로 좀 더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전통적으로 경제학은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한다고 말해왔다. 냉철한 이성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말일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경제학은 이성 쪽에 지나치게 치우쳤던 게 사실이다. 이제는 인간의 감정에도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면서 경제행위를 좀 더 균형 잡힌 시각에서 바라보고 연구하는 행동경제학이 최근 유행(?)하고 있다. 경제학과 심리학의 융합이라고 하겠다.

 

알에이코리아의 최신간 결핍의 경제학은 바로 이런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희소성의 원칙을 깊이 파고들어 일상과 조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아이러니를 재미있게 풀어놓는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센딜 멀레이너선(Sendhil Mullainathan) 교수와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엘다 샤퍼(Eldar Shafir) 교수가 공동 저술한 이 책은 원서 제목이기도 한 희소성(Scarcity) 자체에 주목하였다.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형성중인 미완성의 어떤 과학으로서의 결핍학에 대한 설명이라는 것이다.

 

두 저자는 인지과학에서부터 개발경제학에 이르는 매우 다양한 분야의 학문에 의존하여 결핍의 심리적 토대를 드러내고 아울러 이 지식을 이용해서 다양한 사회적, 행동적 현상을 알아보기 위해 심리실험실, 쇼핑몰, 기차역, 무료급식소, 사탕수수 농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환경에서 독창적인 연구조사를 진행하여 얻어진 놀라운 발견과 전혀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지나치게 적게 가지고 있다고 느낄 때 사람의 정신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리고 또 그렇게 일어난 일이 그 사람의 선택과 행동을 어떻게 규정하는지, 이에 관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가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있을 때, 즉 어떤 자원이 결핍되어 있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연구한 것이다. 표지에 들어간 토끼와 로켓을 단 거북이는 이미지는 거북이가 느리다라는 속도의 결핍을 가지고 있지만 그 결핍 현상이 오히려 더 빨리 나아가게 하는 편익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인가 부족함을 느낄 때 우리는 그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이미 결핍감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해버린다. 너무 바쁜 나머지 매번 마감시간에 쫓기는 사람, 늘 돈에 쪼들려 빚을 빌리는 사람, 다이어트를 해야 하는 사람은 각기 다른 유형의 사람들이지만, 이 책에 따르면 이들은 모두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로 동일한 행동 패턴을 보인다. 어떤 자원이든 간에 자기들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적게 가졌다는 조건 때문에 힘겨운 투쟁을 해야만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슷한 심리현상이 유발된다.

 

결핍은 어떤 것을 매우 적게 소유할 때의 불쾌함만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초래한다. 그래서 바쁜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나 신용불량자가 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것과 동일한 이유로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지 못한다. 결핍은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어놓고 우리의 마음을 지배한다.

 

저자들은 결핍이 정신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을 묘사할 때 사로잡는다(capture)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주의력을 사로잡히면 경험도 변용되어 주관적인 시간 확장(subjective expansion of time)'이라는 감정이 촉발된다고 한다. 주의력을 사로잡은 결핍은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 혹은 그 대상의 속도를 인식하는 데뿐만 아니라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책은 크게 서문과 본문 총 10장의 3, 결론 및 주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 결핍이 우리를 사로잡는 순간 우리는 몰입(집중)하거나 무시(터널링)하게 되는데,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재능이나 개성이 아니라 대역폭((bandwidth; 인지능력)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2부에서는 결핍이 결핍을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이유를 트레이드 오프(trade-off)로 설명하면서 여유 있는 사람과 여유 없는 사람의 짐꾸리기, 가난한 꿀벌과 부자 말벌, 수납장에 버려진 것들을 비교하면서 느슨함의 중요성을 설파한다. 또한 결핍효과는 기회비용(opportunity cost)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는 전문지식의 함정을 낳기도 하며, 급한 불을 끄느라 터널링에 사로잡혀 계속 쪼들리고 더 빌리거나, 시간이 없어 땜질 처방을 하거나 계획을 세우지 못해 근시안적으로 대처하는 등 미래를 무시하는 어리석은 행동이 되풀이되는 양상을 드러낸다. 저글링(juggling)을 멈출 수는 없는지, 자유재량권(discretion)이 없는 경제적 결핍과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를 정면으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가 실패를 부르는 복합적 가난은 대역폭에도 쪼들리게 된다.

3부에서는 결핍에 대처하는 독특하고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 조직의 결핍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느슨함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무척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또한 우리의 일상 속에 숨겨진 다양한 결핍들에 대해서 대처하는 것도 상세하게 다룬다. 가난을 떨쳐내기 위해 가난한 행동을 바꾸는 아이디어와 공공정책의 인센티브 및 대역폭 관리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특히 공공정책 입안자들이나 조직 관리자들에게 매우 유용한 통찰을 제시한다.

 

특정한 대상에 결핍이 있는 사람들은 한 가지 목표에 고도로 집중하는 심리 현상을 보인다. 이 같은 결핍은 일정한 패턴을 지니는 결핍의 매커니즘을 구성하게 된다. 자원부족(scarcity) - 터널링(tunneling) - 빌리기(borrowing) - 저글링(juggling) - 땜질 처방(solve problems locally and temporarily)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결핍에 빠지면 논리적인 귀결로 터널링 상태에 들어서는데 긴 터널 안에서는 출구만 보이고 주변 상황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다. 당장에는 결핍의 대상에 대한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하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고도의 집중력과 민첩성을 발휘하게 한다. 그리하여 단기적으로는 그 일에서 효과가 있다. 이를 집중배당금(focus dividend)이라 한다. 학생들이 과제 제출 기일이 다가오면 리포트 작성에 더 몰입하는 것과 같은 현상을 말한다.

 

돈이든 시간이든 자원이 결핍되면 사람들은 당장의 문제에만 매달리게 되므로 주변 상황이나 장기적 전망을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무시하고 빌리기를 한다. 정작 긴급하지는 않으나 중요한 일에 자원을 효율적으로 투입하기 보다는 당장 발등의 불을 끄는데 시간과 돈을 소모해버리는 실수나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약속을 뒤로 미루거나 급전을 대출받는 것들이 그런 예이다.

 

그러나 문제는 결핍의 덫(scarcity traps)에 걸렸을 때 일어난다. 한 가지 일이 해결되고 나면 다른 긴박한 일이 생기고 이미 예정되었던 것이든 갑자기 생겨난 것이든 그 이상의 문제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몰려든다. 설상가상의 상황이 반복되는데, 이것이 바로 저글링의 상태다. 결국 여러 개 공 가운데 땅에 떨어지려는 공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모든 게 엉망이 된다. 그렇다고 어느 한 순간에 멈출 수도 없다. 페이데이론이나 카드 돌려막기가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러한 근시안적인 미봉책은 마치 꼬인 실타래처럼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기만 할 뿐이다. 좀 더 느슨함이 유지될 때 즉, 이미 이런 상황이 발생하기 훨씬 전에 조금 더 풍족하였을 때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지 못함으로써 늘 급한 불을 먼저 끄게 되다 보니 결핍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결핍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지닌다. 긍정적인 면은 터널링에 의한 고도의 집중력으로 단기적인 성과인 집중배당금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은 이러한 단기적인 편익에 비해 나중에 치러야 할 대가가 훨씬 크다. 결핍 때문에 터널링에 사로잡히면 유동성지능(fluid intelligence)과 실행제어기능(executive control function), 간단히 말해서 우리의 인지능력에 과부하가 걸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정보처리능력이 저하되는데 이를 대역폭 세금(bandwidth tax)이라고 한다. 결국 우리가 정보를 적절하게 처리할 수 있는 대역폭에 부과되는 세금을 과소평가하고 자주 간과하기 때문에 땜질 처방만 함으로써 충분히 예측 가능한 미래의 장기적 결과를 보지 못하고 되고 결핍은 또 다른 결핍을 낳는 악순환의 고리가 쉽게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결핍 즉 빈곤의 문제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훨씬 더 양질의 의사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예산을 수립하고 주요 지출 용도별로 지정계좌를 만들어 분산 예치하거나, 각종 청구서나 긴급자금에 대비한 저축에 대해서는 아예 자동이체 신청을 해 두어 청구기한을 넘기지 않도록 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질 높은 의사결정임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에서 이들은 다른 스트레스 요인이나 의사결정 혹은 주변 여건들에 의해 끊임없이 방해를 받고, 여러 가지 도전과 주변의 유혹과 과거의 실수들에 의해 자원을 소모하게 되고, 사회적 맥락이나 문화 또는 편견에 의해 방해받으며,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양질의 의사결정은 더욱 어려워진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은 양질의 의사결정을 하기에 더욱 나쁜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 빈곤 문제의 아이러니이다.

 

저자들은 결핍이 어떻게 인간의 정신에 작용하는가를 이해하면 결핍의 덫을 피하거나, 최소한의 유해성을 누그러뜨릴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고 말한다. , 현재 부족한 자원(가난한 사람에게는 돈, 바쁜 사람에게는 시간, 외로운 사람에게는 친구,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에게는 칼로리가 낮은 건강한 식품 등)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신적 대역폭(mental bandwidth), 즉 인지 능력의 여유 공간(slack)을 확보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돈 빌리기처럼 부족한 자원을 자꾸 끌어 모으려고 애쓰는 것보다 오히려 멀티 태스킹을 함에 따른 인지능력의 과부하를 적절히 제어함으로써 보다 양질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적절한 느슨함을 가지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다.

 

New Scientist가 이 책을 2013년 최고의 과학서적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였듯이 하버드 경제학과 프린스턴 심리학과 두 천재 학자의 집념과 협업의 결과물은 현실의 다양한 사례와 실험 연구에 기초하여 누구나 읽기 쉬우면서도 합리적 행동을 전제로 하는 경제적 인간의 비합리성을 예리하게 발견하여 경제문제의 본질에 좀 더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두 명의 신세대 학자들이 차기 노벨상 후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데, ‘경제는 심리다!’라는 말이 내 손에 잡힐 것 같다. 지금까지 우리가 배워온 전통적인 경제학적 지식만으로는 결핍 현상을 영원히 해결하지 못할 것 같아 답답해하고 있는 조직의 리더나 자영업자 등은 물론 주부나 직장인 할 것 없이 자신에게 부족한 자원보다는 오히려 정신적 대역폭을 제대로 관리함으로써 보다 현명한 의사결정 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는 놀라운 통찰과 해법을 담은 전혀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라고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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