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플 Simple - 일상과 비즈니스에 혁신을 가져오다
앨런 시겔, 아이린 에츠콘 지음, 박종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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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플

 

사회가 발전하고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 사회 구성원의 삶은 점점 복잡해지는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그걸 아무런 비판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고도로 복잡한 최첨단 문명의 이기를 마음껏 누리고 있는 현대인들은 한편으로는 정반대의 심플한 삶을 동경한다. 참으로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사회의 복잡성이 증가하게 되면서 기업과 정부는 물론 개인들도 엄청난 자본의 낭비를 감당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낭비를 줄이고 제거하여 사회를 단순하게 만들고, 비즈니스와 행정의 효율을 높여 결국 사람들의 일상을 좀 더 편안하게 해주는 강력한 실천 원칙을 제시하는 책이 바로 <심플>이다.

 

저자들은 사회를 단순하게 만드는 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단순함의 세 가지 원칙만 잊지 않는다면 일상과 비즈니스에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말한다. 혁신적 단순함의 세 가지 원칙(요소)은 바로 공감empathize하고 핵심만 뽑아내어 정제distill하고, 집중하여 명료clarify하게 만들겠다는 다짐과 각오가 조직 전체에 구석구석 배어있게 하는 것이다.

 

단순함의 첫 번째 원칙은 제대로 공감하라는 것이다. 공감한다는 것은 내가 혹은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 것을 간파하는 세심한 관찰과 인간적인 따뜻함이 어우러지는 것을 말한다.

 

훌륭한 인간이 되려면 깊고 넓은 상상력을 가져라. 가까이 혹은 멀리 있는 사람, 모두의 입장을 살펴야 한다. 타인의 고통과 기쁨을 내 것으로 느껴야 한다.” (영국 시인 Percy Bysshe Shelley)

 

클리블랜드 클리닉이 환자의 경험을 중요시하는 환자 제일주의를 표방하며 오늘날 미국 최고의 병원으로 인정받게 된 바탕에는 바로 환자와의 제대로 된 공감이 있었다. 최고 경험관리 책임자chief experience officer가 있고, 시설관리자에서 신경외과 의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직원들이 40일간 케어기버caregiver(돌보는 사람)라는 직책과 오직 환자만 생각하는 자세를 갖기 위해 교육을 받으며, 라벤더 프로그램Code Lavender을 통해 어떤 직원이 돌보던 환자가 사망해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경우 그 직원은 특별 상담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이 직원에게 라벤더 꽃 색깔의 연보라색 팔찌를 나눠주면 다른 직원들이 해당직원에 대해 평소보다 더 신중하게 대하는 등 환자와 직원 모두에게 세심한 인간적 배려를 해주는 것이다.

 

오래 전에 나도 몇 달 동안 국내 유명 대학병원에 입원해 본 경험이 있다. 병원도 물론 나름대로 고객만족 프로그램을 통해 의사, 간호사 등 직원들에게 친절교육을 가르치고 환자와의 공감을 강조하긴 하지만, 클리블랜드 클리닉의 환자 제일주의가 아직 시작단계일 뿐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병원들의 환자 제일주의는 아직 아이디어 구상단계에 불과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혁명적으로 단순해지기 위한 두 번째 원칙은 핵심만 뽑아내어 정제하는 것이다. 이는 가장 중요한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다. 다 잡으려다 다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서비스와 제품의 핵심만 골라내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집중이란 거부하는 것이다. ‘아니오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한 곳에만 집중했을 때 정말로 멋진 제품이 나올 수 있다.” (Steve Jobs)

 

구글의 단순 명료한 홈페이지는 우연히 탄생한 게 아니다. 새로운 기능이나 화려한 디자인, 그밖에도 복잡함을 불러올만한 요소들을 추가하자는 제안과 유혹에 대처하기 위해 내부 오디션이라는 혹독한 자체 평가 시스템을 거치게 되어 있다. 제품과 서비스, 커뮤니케이션과 고객경험, 법률과 규정처럼 무엇이든 단순한 것을 창조하려는 사람이라면 쓸데없는 요소를 선별하고 편집할 때, 속된 말로 죽여야 할 때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본질을 파악해 무엇을 죽이고 무엇을 살려야 할지 알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신생기업인 퓨어디지털과 디자인 회사 스마트디자인은 몇 년 전 공동으로 캠코더 플립 비디오를 출시했다. 플립은 녹화를 시작하고 중단하는 커다란 빨간 버튼 외에 아무런 버튼도 달려 있지 않다. 공동 개발한 스마트디자인의 나산 셰퍼드Nassghn Sheppard우리는 모든 과정을 통틀어 무엇을 집어넣을 수 있을까?’가 아니라 무엇을 뺄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물었습니다.”라고 말한다.

 

훌륭한 디자인은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트위터 공동창립자 Jack Dorsey)

 

단순한 제품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 무엇을 살리고, 무엇을 죽일지 늘 고민해야 하고 품질, 기능성, 편리함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도 찾아야 한다. 외부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다. 애플의 제품은 품질, 기능성, 편리한 사용법, 단순하고 우아한 디자인이라는 네 박자가 한 번에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핵심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겠다고 결심했다면 시장점유율이나 엔지니어 또는 마케팅 담당자의 목표에 끌려다니면 안 된다. 고객경험의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목표에 모든 것을 맞춰야 한다.

 

선택권은 오히려 적을수록 소비자들이 의사결정을 하기에 좋을 수 있으며, 방대한 정보를 선별하고 정제하는 능력이 매우 중요한데, 특히 금융 서비스 분야에서는 정보의 양을 고객 스스로 결정하게 하는 것도 단순함을 통해 고객을 만족시키는 유용한 방법이다.

 

많은 이들이 혁신과 단순함을 통시에 추구할 수는 없다고 잘못 알고 있다. 혁신이란 이미 존재하는 것에 어쨌든 뭔가를 더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좀 더 나은 무언가를 원하며, 좀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한다. 그게 욕망이고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우리는 더하기의 셈법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왠지 모를 무언가가 줄어드는 느낌을 받는 빼기의 셈법을 쓰는 걸 무의식적으로 주저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빼기가 더 어려운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가끔씩 무엇을 없애야 하는가도 똑같이 중요한 일이다.

 

단순함의 마지막 세 번째 원칙은 핵심적으로 중요한 한 가지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 제품과 서비스를 이해하기 쉽고 편리하게 설계하는 명료함에 집중해야 한다. 너무 많은 정보는 변두리만 맴돌게 만들며 애매모호하고 장황한 설명은 오히려 무관심이라는 부작용을 낳는다. 정보의 계층구조를 활용하여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알맹이를 골라내고 명료하게 시각화하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이 책에는 일상에서 흔히 접하면서도 정작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각종 보고서, 신용카드 약관, 주택 임대차계약서, 스마트폰 등 제품 사용설명서, 보험 약관, 포장과 광고, 전화요금 청구서, 대출 약정서 등에 대해 명료한 시각화 디자인을 도입하여 단순화한 혁신적인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또한 난해한 행정, 경영, 법률 분야의 전문용어를 누구나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순화하자는 언어 운동을 통해 법률과 정부 정책을 이끌어낸 사례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기업은 쉬운 언어를 사용하게 되면 인지적 유창성cognitive fluency'을 높임으로써 고객과 단순하고 정직하게 소통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기업은 특별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며, 고객도 더 큰 만족을 느끼고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다. 기업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브랜드 충성심도 올라가므로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게 되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에서 설명한 상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세 가지 설득의 원칙은 1. 로고스(언어 자체에 들어 있는 논리와 근거), 2. 파토스(청중에 대한 감정적 호소), 3. 에토스(화자의 성격과 신뢰성)이다. 워런 버핏은 매년 2월에 버크셔 해서웨이의 주주들에게 보내는 연례보고서를 작성할 때 바로 이 세 가지 원칙을 충실히 반영하여 복잡한 언어와 개념을 쉽게 풀어 설명하고 청중의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효과적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냄으로써 단순명료한 기업 커뮤니케이션의 모범을 제시했다.

 

복잡함이 초래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개인과 조직의 수많은 노력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단순함이 마치 본능처럼 조직 전체에 문화로 스며들어야 한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항상 단순한 것을 추구하다. 그들은 논쟁, 토론, 의심을 뛰어넘어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한다.” (전 미국 합참의장 Collin Powell)

 

필립스는 단순함을 기업문화로 전파하기 위해 (1) 고객 중심의 디자인, (2) 사용하기 편할 것, (3) 발전된 제품과 서비스라는 세 가지 원칙을 목표로 삼고, 맨 꼭대기 경영진부터 시작하는 하향식top-down 접근법을 채택하였다. IBM, 애플, 제트블루 항공, 옥소, 구글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사례처럼 단순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조직이라면 조직 목표를 단순하게 디자인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모든 커뮤니케이션과 프로세스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명료함을 추구해야 하며, 경영진의 메시지는 난해하거나 모호함이 없이 늘 변함없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늘 환자를 대할 때마다 '마음HEART'을 담으라고 강조한다. 즉 환자의 말을 경청하고Hear, 공감을 표시하고Empathize, 기꺼이 사과하고Apologize,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대답하고Respond, 마지막으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기회를 준 환자들에게 감사하라Thank는 것이다. 이 병원의 변화 사례는 불필요한 과정을 줄이고 조직 간 장벽을 허물어 통합할 때 단순함이 기업문화로 자리잡고 유연한 조직으로 바뀌게 되며 만족스러운 고객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뉴욕시의 마이클 블룸버그 시장의 311 전화안내 통합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는 거대한 행정기관의 복잡함과 비효율적인 관료주의 혁신의 대표적 사례이다. 대도시의 복잡한 문제와 혼란을 해결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도록 시민들에게 진짜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줌으로써 대도시라는 환경에서 작은 시골 마을의 인간적인 분위기를 창조하여 뉴욕시가 늘 시민들의 민원과 애로사항을 들어주고 답해줄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콜센터가 딱딱한 전자 기계음으로 먼저 차갑게 응답하는 것과는 천지 차이다. 비용 절감도 물론 필요하겠지만, 우리나라의 많은 콜센터는 순수하게 고객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기업의 편의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상담원과 한 번 연결되려면 불필요하게 길고 긴 안내 멘트를 따라 무수한 번호를 눌러가며 엄청난 인내심을 발휘하여 기꺼이 기다릴 준비가 되지 않은 이상 콜센터에 전화를 걸 생각을 못하게 만든다. 정작 급하고 중요한 자신들의 고객을 화나게 만들어 스스로 고객을 쫒아내는 곳으로 기능하는 역설적인 조직운영 시스템이라고 하겠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우리나라 정부나 기업들의 현실과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정말 많은 생각들이 들었다. 선진국이란 어떤 나라인가,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무엇인지,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고객과 함께 지속적인 성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속한 조직은 어떻고, 그 조직 속에 몸담고 있는 나 자신은 그런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개인적인 일상의 복잡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얻고자 하였는데, 오히려 정부나 기업과 같은 조직의 혁신과 변화에 대한 단순하면서도 깊은 통찰과 풍부한 사례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어 특히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고자 고민하는 경영자와 실무자라면 반드시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 특히 부록에 수록되어 있는 각 챕터별 각주는 좀 더 깊이 내용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오늘날 모든 기업이나 행정 당국에서는 언제나 변화와 혁신, 소통을 외친다. 혁신만이 살 길이고 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그런 구호들은 대부분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시작할 때 결심과 의욕은 충만하나 구체적인 실천 과정을 지속하는 것은 말과는 달리 무척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창조경제를 부르짖은들 당정간, 부처간 높은 장벽으로 내부적으로는 물론이거니와 국민이나 기업과 같은 외부적인 소통이 안 되어 변화되지 않고 관료주의의 타성에 젖어 정책의 실효성이 없다면 역시 화려한 말장난에 불과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나라야 말로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정신을 받들어 쉬운 언어를 쓰기 위한 전국민적인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정부에서, 기업에서, 학교에서, 사회 곳곳에서 난해하고 복잡하고 전문적이어서 일반인들은 뜻도 모를 언어를 쉬운 언어로 바꾸어 제대로 된 소통이 이루어질 때 이 사회가 좀 더 투명해지고 단순해져 사람들이 정말 살맛나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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