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속에서 인생그림책 12
박희진 지음 / 길벗어린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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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으슬으슬하다며 소파와 한 몸이 되어 누워있는 할머니에게 손녀가 찾아왔다. 손녀의 손에는 할머니를 위한 파이가 들려있지 않다. 가벼운 수영가방 하나만 어깨에 걸려있다. “할머니, 수영장 가요!”

싫다 싫다, 하는 할머니를 이끌고 수영장에 간 손녀는 결국 혼자 물에 뛰어든다. 풍덩! 수영장에 뛰어드는 사람들로 꽉 채워진 장면에는 어떤 글자도 없지만, 수영장의 냄새와 공기가 그대로 전해진다. 웅웅거리며 울리는 물소리와 뛰어드는 사람들의 활기찬 기운까지.

그제야 할머니는 빨간 망토처럼 두르고 있던 이불을 벗어놓고 슬그머니 수영장에 발을 담근다. 심드렁하기만 하던 눈빛은 조금씩 빛나고 처져있던 입꼬리가 올라가는데, 바라보는 내 얼굴도 함께 펴졌다.

물속에서 할머니는 자유롭게 유영한다. 천근만근 무겁던 몸은 가벼워지고 한 마리 새처럼 훨훨 날아다닌다. 이불 속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책장을 펼치고 또 펼치면 꿈결처럼 아름답고 포근한 물속 세상이 드러난다. 그 속에서 할머니는 안온하다.

싫다, 하며 이불을 감고 있는 할머니. 수영장 물을 빼꼼 들여다보는 할머니. 살짝 발을 담가 보고는 어(괜찮은데?), 하는 할머니. 모두 낯설지가 않다. 한 걸음 나아가기가 귀찮아서, 두려워서, 자신 없어서 주저앉아 있다가도 살짝 새로운 맛을 보면 오, 괜찮은데 하면서 슬쩍 일어선다. 결국에는 푹 빠져 즐거워하며 웃는 할머니 얼굴이 우리 아이들 자라가는 모습과 꼭 같다.

박희진 작가의 <물 속에서>는 시원한 수영장을 배경으로 하지만 왠지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이 더 크게 다가왔다. 배경으로 차가운 하얀색보다 미색이 많이 사용되었고 물속 세상도 물기가 많은 파랑에다 옅은 노랑과 분홍이 고루 칠해져서인가 보다. 발장구 끝에서 퍼져나가는 분홍이 할머니의 두 뺨까지 물들여 발그레한 미소를 띠며 손녀와 눈을 마주치는 장면은 정말로 사랑스럽다.

글자로 쓰인 이야기와 함께 그림으로 많은 것을 들려주는 <물속에서>. 이 여름이 지나가도 수영장 속 할머니를 자주 들여다볼 것 같다.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나 한 발 내디딜 작은 용기가 필요할 때, 아니면 그저 부드러운 물속에서 안온함을 느끼는 할머니처럼 쉬고 싶을 때도.

*서포터즈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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