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본 그리스도와의 연합 - 바울의 구원론에 대한 석의-신학적 연구
콘스탄틴 R. 캠벨 지음, 김규섭.장성우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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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울이란 사람을 생각해볼 때 그는 교회에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다. 그의 회심, ,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열정과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귀감이 된다. 또한 그가 저술한 서신들은 신약성경에 포함되어 있으며 설교에도 많이 언급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에게 친숙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바울이란 사람은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는 인물이다. 바로 그가 저술한 편지들을 통한 그의 사상과 신학을 생각해볼 때 그렇다. 바울은 많은 편지들을 저술했지만, 그의 편지들에서 발견되는 많은 사상들은 그의 사상이 무엇이라고 정하는데 어려움을 준다. 편지들은 각 교회가 처한 상황에 맞게 저술되었기 때문에 특정한 주제가 바울신학의 핵심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많은 세월동안 바울신학의 중심이 무엇인지를 정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아직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을 저술한 콘스탄틴 R. 캠벨도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학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바울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는데,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뜻하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어구가 바로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 가지 어려움이 있으니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에 사용된 전치사 안에라는 의미를 가진 이 단어가 하나의 고정된 의미로만 사용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상황과 문맥에 따라서 여러 뜻으로 해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캠벨은 말하길 그리스도 안에는 유연성 있는 바울의 관용적 표현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이러한 상황을 주의하며 캠벨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하는 그리스도 안에라는 어구와 문자적으로 그리스도 안에라는 어구가 아니더라도 문맥상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나타내는 어구들을 포함하여 석의와 신학적 작업을 통하여 치밀하게 논증한다.

   캠벨은 석의와 신학적 작업을 통해서 모호한 개념을 가지고 있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4가지 주제로 정리한다. 그것은 연합, 참여, 합일, 통합이다. 연합은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믿음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 참여는 그리스도 내러티브의 사건에 참여하는 것, 합일은 그리스도가 가진 주권에 대한 충성하는 것, 통합은 교회의 집단적 측면을 나타낸다. 4가지 주제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표현할 때 사용되지만 한 가지 문제는 이 주제들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주제 안에서 개별적으로 하나씩 나타나지 않고 한꺼번에 사용되기 때문에 이것들을 통틀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고 캠벨은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바울신학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어디일까? 먼저 캠벨은 바울신학을 바라보는 관점으로 4가지를 소개하는데 그것은 열쇠(key), 중심(centre), 바퀴 형태(wheel-shaped model), 그리고 그물 형태(a web-shaped model)이다. 이중에서 열쇠, 중심과 바퀴 형태는 특정한 주제 하나를 선택하기 때문에 다른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게 여겨질 수 있다는 문제 있다. 따라서 이 세 가지는 바울신학의 구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하면서 그물 형태가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바울이 쓴 편지들보다 더 많은 신학적 주제들이 바울서신 안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바울신학의 주제를 정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있다. 앞에서 주장한 그물 형태는 물고기를 잡는데 쓰이는 형태로 그물의 구조가 하나의 중심을 가지기 보다는 서로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적합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그물 형태의 구조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각각의 신학적 주제들을 엮어주는 끈(webbing)이다. 바울신학에 있어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바울의 사상과 신학적 내용들을 흩어지지 않게 모아주고 분리되지 않도록 강하게 붙잡아주며 유기적으로 연결해주는 끈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필수적이다.

   캠벨은 바울신학에 있어서 하나의 나무만을 보기를 원하지 않은 듯하다. 만일 그가 나무만을 보기 원했다면 이 책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튼튼한 끈이 아니라 열쇠 혹은 중심이라고 설명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캠벨은 바울신학을 하나의 산으로 보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울서신이 가지고 있는 특징들 때문에 핵심적 주제를 고르기가 어려운 상황은 결국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나무 한 그루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큰 산을 바라보는 것이 바울신학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여겨진다.

   산은 나무 하나만 있지 않고 수많은 나무들이 한데 모여 있다. , 캠벨이 주장한 그물 형태의 구조처럼 바울신학은 나무 한 그루로 특정되는 신학이 아니라 많은 나무들이 한데 모여서 큰 산을 이루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이 산을 오르는 이유는 특정한 지점에 있는 나무 한 그루만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상에 올라서 바라보는 풍경을 보기 위해서 올라간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캠벨과 함께 한 석의와 신학적 작업은 등산하는 과정을 보는 듯하다. 등산은 위로 올라갈수록 가파르고 올라가기 힘겨운 길들을 따라간다. 이 책에 나오는 석의와 신학적 작업을 따라가는 것은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며 어려움을 느낀다. 그러나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아름답듯이 저자와 함께 바울이 말하고자 했던 의도에 대해서 고민하며 씨름하는 이 과정을 거친 후에 바울신학을 바라보면 나무 한 그루만 보는 관점을 벗게 되고 큰 산을 보게 되리라 생각한다.

   이제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캠벨이 주장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있던 바울신학을 하나로 묶는 끈과 같은 역할을 한다고 볼 것인지, 아니면 책에서 캠벨이 말한 대로 하나의 중심을 놓고 다른 것들을 바라보는 열쇠, 중심, 그리고 바퀴형태로 볼 것인지는 독자에게 달려있다. 하나의 중심사상을 원하는 독자에게는 캠벨의 주장은 우유부단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캠벨이 책에서 보여준 치밀한 석의와 신학적 작업을 통해 도출한 결론이 결코 우유부단한 것으로 치부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우리는 사도 바울과 직접 대화를 할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와 대화를 할 수 없기에 바울신학에 대한 많은 주장들이 나와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에겐 그동안의 연구사를 통해 나온 많은 자료들이 존재한다. 연구사를 통해 나온 자료들이 바울신학에 필요한 주제들이고 지금껏 많은 논의를 했음에도 결론이 나지 않는다면 이제는 방법을 바꿔서 하나를 정하기보다는 캠벨이 주장한 것처럼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끈을 통해서 흩어져있던 주제들을 하나로 묶어 바울신학을 연구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들이 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이 책의 결론부에 캠벨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소개한 내용을 인용하며 마치겠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을 통해 주어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신자들은 성령에 의해 믿음으로 그와 연합되어 그와 함께 죽고, 고난받고, 다시 살아나고, 영광을 돌리고, 그의 안에서 예정되고, 구속함을 받고, 그의 영역과 하나가 되고, 그의 백성들에게 통합됨으로써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를 향유하게 된다”(p.5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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