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고통 vs 기쁨
‘마루’는 정신적인 고통을 겪고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던 스승도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마루 : 스승님, 정신적인 고통은 인생에서 필요할까요?
스승 : 글쎄다, 필요할 때가 있지 않을까?
마루 : 고통 없는 삶이 더 좋지 않을까요?
스승 : 사는 게 고통 아니겠느냐! 단지 고통 속에 살다보니 하도 고통에 익숙해져서 고통이 당연하게 생활이 되어서 고통스러운 것을 모르고 사는 것뿐이지.
마루 : 고통은 어떤 때 필요합니까?
스승 : 예를 들면 조개에게 진주는 기쁨일까?
마루 : 이물질을 심어서 암덩어리 진주가 되는데 조개에게는 고통스럽지 않을까요?
스승 : 그렇겠지, 그러나 그 진주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고통일까?
마루 : 사람에게는 보석이라서 기쁨이 아닐까요?
스승 : 고통은 내게는 분명히 고통이지만 멀리서 보는 제삼자에게는 기쁨이 될 수도 있단다.
마루 : 어떤 경우에서 그럴까요?
스승 : 모든 창작품들은 예술가의 고통에서 시작이 된단다. 창작의 고통 속에 대부분 나오지. 그러나 그 작품을 보는 우리는 예술가의 고통보다는 작품을 보면서 영감과 만족을 느끼는 거고.
마루 : 예술가에게만 고통이군요.
스승 : 그렇지, 그러나 그 고통의 산물을 보고 기뻐하는 사람의 얼굴 보면 예술가의 심정은 어떨까?
마루 : 기쁘지 않을까요?
스승 : 나도 그렇다고 생각을 한단다. 그러면 그 고통은 과연 고통일까?
마루 : 고통에서 탄생을 했지만 지나고 나면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스승 :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한단다. 비록 고통 속에서 시작했지만 그 고통을 작품 속에 옮겨놓으면 작가들은 고통을 제삼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고통을 담담하게 바라보게 되면서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단다.
마루 : 그럴 수도 있군요.
스승 : 고통을 속에 담으면 병이 되지만 밖으로 표현하면 더 이상은 병이 되지 않듯이 속에 있으면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캠퍼스나 도구에 표현을 하면 하나의 작품이 될 수도 있지. 내게는 고통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기쁨이 될 수도 있는 진주처럼 말이다.
마루 : 그렇다면 모든 고통은 다 견디면 좋을까요?
스승 : 아니지, 고통뿐인 고통은 피하는 것이 좋단다.
마루 : 고통뿐인 고통이라니요?
스승 : 척 봐도 결과가 고통이 예상되고, 고통밖에 안 남는 고통은 빨리 벗어나는 것이 좋지. 그러나 기쁨이나 행복을 잉태하는 고통은 견디는 것이 좋고 말이다.
마루 : 그럼, 기쁨이나 행복을 주는 고통은 무엇이죠?
스승 : 예술이나 창작과 같이 다른 이에게, 그리고 하면서도 나중에 결과는 행복하고 좋을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지금은 힘든 고통이란다. 참으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고통은 참을 만하지. 그러니 고통만 남기는 고통뿐인 고통은 피하고, 행복과 기쁨이 보이는 고통은 참는 것이 미래를 위해서는 좋겠지.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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