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처음부터 없었던 인연

 

스승 : 인연은 사람이 알아서 엮는 거라는 것이냐?

마루 : 어쩌면 인연은 처음부터 없었는지도 모르죠.

스승 : 그것은 또 무슨 말이지? 처음부터 없었다니!

마루 : 이건 어디까지 저의 가설입니다.

스승 : 나한테는 겁내지 말고 말을 하라!

 

마루 : 우리는 지나고 나서 인연으로 규정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모든 역사 속의 인물들을 보면 지나고 나서 우리가 위인이 만났던 사람들을 인연으로 만들고, 재미있게 엮어서 읽을 수 있는 하나의 이야깃거리로 만들잖아요. 우리가 위인을 만들었고, 위인의 인연의 고리를 재미있게 스토리로 만들었잖아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위인은 그 사람이 처음부터 인연이라는 것을 알았을까요?

스승 : 글쎄다 …… 알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

마루 : 그렇군요! 위인들이 인연이라고 믿으면 인연이 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거군요. 그러면 저의 가설은 없는 것으로 해주세요.

스승 : 그런데 너의 말도 전혀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

 

 

마루 : 대통령이 되고 나면 사람들이 인연을 들먹이면서 산에 정기 어쩌고저쩌고 하겠죠. 그런 것처럼 그게 인연일지 아닐지는 지나고 나봐야 죽기 전에 인연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거라는 말이죠. 제가 말하고 나서도 너무 심오하네요.

스승 : 그러게, 너무 옆으로 샜어!

마루 : 스승님, 죄송한데요, 제가 어디까지 하다가 위인이야기로 샜나요?

스승 : 인연은 사람이 정한다고 하지 않았나?

마루 : 아, 네! 인연은 사람이 정해요, 정말!

스승 : 왜 그렇게 생각을 하지?

마루 : 저는 하늘이 인연을 미리 정해두었는지 알았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스승 : 그러게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느냐고?

마루 : 자기 스타일이 아니래요.

스승 :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니?

마루 : 제가 고백을 한 사람은 제 외모가 자기가 찾는 사람이 아니래요. 그래서 인연이 아니래요. 반면에 저한테 고백을 한 사람은 제가 자신이 찾는 스타일의 사람이래요. 그래서 인연이라고 생각을 하고 접근을 한 거고요. 그런데 저는 인연이 아니라고 말을 했었죠.

스승 : 너는 무슨 마음으로 인연이 아니라고 말을 했느냐?

마루 : 솔직히 말하면 안 예쁘더라고요. 마음에 안 들었어요.

 

 

스승 : 그게 인연이 아닌 이유인 것이냐?

마루 : 사람들은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인연이 아니래요. 자기 마음에 들면 인연으로 믿고 싶고, 마음에 안 들면 죽어도 인연 아니라 잠시 즐기는 사이로 믿어버리죠. 마음에 들면 상대방에게 너하고 나하고는 절대 헤어질 수 없는 인연이라고 세뇌시키고, 최면을 걸어요.

스승 : 그럼, 네 말에 의하면 인연은 하늘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서 이미 정한 기준에 적합판정을 받으면 인연의 조건을 갖춘 것이고, 자신의 마음에 안 들면 눈 밖에 나서 인연으로 엮이고 싶지 않다는 그런 말이냐?

 

 

마루 : 스승님, 적합판정은 좀 ……. 사람에 쓰는 말이 아닌 듯싶습니다. 그것은 고등어나 생선 종류에게 쓰는 말 같기도 한데요.

스승 : 음,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않느냐? 인연을 사람이 정한다고 하는데 말이 안 되지 않느냐?

마루 : 자유연애가 생기면서 이미 하늘에서 정한 인연은 끝난 것 같습니다.

스승 : 인연도 인연을 다했다는 말이구나.

마루 : 그렇죠,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것이 인연이 아닐까요.

출처-  의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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