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재상 아들
한 동네에서 어린아이의 울음이 그치지 않자 무슨 구경이라도 났는지 동네사람들이 그 집을 에워쌓았다. ‘뚝 그쳐! 울면 계속 매질을 할 거야!’ 하면서 무식한 아버지는 자신이 때리면서 오히려 아이를 울린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아이가 울어서 자신이 때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아이의 고집을 어릴 때부터 꺾겠다는 심사도 갖고 있었다. 그 아버지라는 사람의 고집과 성질이 하도 대단해서 ‘저러다가 애를 잡지, 잡아!’ 하면서도 동네사람 그 누구도 말리지를 않았다. 그렇게 아무도 성질 더러운 백정의 앞에 나서지 못하고 있을 때 한 스님이 그 집 앞을 지나가다가 누군가에게 떠밀려서 무식한 백정 아버지 앞에 나서게 되었다.
백정 : 뭐야! 당신은?
순간 스님은 산적 같은 고약한 인상의 백정 앞에서 아이를 구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말을 했다.
스님 : 그 아이는 장차 재상이 될 재목입니다.
그제서야 백정 아버지는 아이에 대한 매질을 멈추고 대우도 달라졌다. 그 당시 스님이란 사람들이 존경하는 직업이었다. 물론 아버지는 백정으로 자신의 직업을 한탄하면서 자신이 받는 천대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몰랐는데 그래서인지 자식이 보물단지처럼 감사했다. 그리고는 재상이 될 재목이라면 자신이 최선을 다해서 뒷바라지를 해서 꼭 재상으로 만들고야 말겠다고 다짐했다. 그때부터 맞춤식 교육으로 재상이 될 수 있도록 모든 뒷바라지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30년 후에 정말 아이는 재상이 되었다. 백정 아버지는 감사한 마음에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스님을 찾아왔다.
백정 : 스님, 어떻게 그리 사람의 앞날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추십니까? 스님의 말씀대로 저의 자식이 재상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 감사는요. 당신의 노력이 그렇게 만든 것을요.
백정 : 아무튼 조촐하게 잔치를 벌이니까 다른 분은 몰라도 스님께서는 그때 꼭 참석을 해주십시오!
스님 : 그리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백정 아버지는 돌아갔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동자승이 어떻게 앞일을 그렇게 잘 맞추었는지 궁금하여 물었다.
스님 : 알기는 뭘 알아! 그냥 애 잡겠다는 생각에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말했었던 것뿐인데 진짜 재상이 될 줄은 나도 꿈에도 생각 못했다.
초대날짜에 스님은 그 재상의 집으로 갔다. 그랬더니 한눈에 척 봐도 재상의 자태와 위용이 돋보이는 사내가 있었다.
스님 : 재상님, 감축드립니다.
사내 : (손사래를 치면서) 큰일날 소리이십니다! 제가 재상이 아니라 저의 동생이 재상입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스님 : 아, 제가 결례를 했습니다.
동생을 축하하러온 형님이라는 사내의 관상을 보고 그렇게 판단을 했던 것이었다. 아무리 봐도 관상만은 재상도 저런 재상감이 없는데 거 이상하다고 스님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 생각도 잠시, 인기척이 났다.
재상 : 스님께서 저를 재상으로 봐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아마도 스님 덕분에 제가 재상이 되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스님 : 별말씀을요. 재상님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재상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겠습니까? 다 노력한 결실이 아니겠습니까?
재상 : 아무쪼록 즐거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관상만으로 보자면 형이 틀림없는 재상감인데 왜 재상이 동생 몫이 되었는지, 동생은 벼슬길에 오를 관상이 전혀 아닌데 자신이 배웠던 관상학은 다 부질 없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스님이 여태껏 40년 이상 배운 관상학에 허무함을 느끼던 찰나에 백정이었던 아버지의 관상을 보고는 생각했다.
스님 : 백정도 마음먹기에 따라 저렇게 인상이 변화할 수도 있구나! 아무리 백정이라도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는데 어찌 사람들이 백정이라고 경계를 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노력이 없었다면 재상 아들은 결코 없었을 것을! 재상 아버지가 있기에 재상 아들이 있는 법! 백정은 그날 죽고, 재상으로 다시 태어났구나! 재상의 관상을 갖고 태어났어도 재상이 되지 못한 것도, 재상의 복을 갖고 태어나지 않았어도 재상이 된 것도 다 부모하기 나름인 것을 ……. 내 말 한마디가 이렇게 운명을 바꾸어 놓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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