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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역사 - 피아노가 사랑한 음악, 피아노를 사랑한 음악가
스튜어트 아이자코프 지음, 임선근 옮김 / 포노(PHONO) / 2015년 5월
평점 :
온동네 아이들이 피아노 학원을 다니던 시절, 그 당시 나도 그렇게 피아노를 접했다. 부모님은 피아노를 너무나 배우고 싶었지만 배우지 못했던 본인 이야기를 하며 자식들을 전부 피아노 학원으로 몰아넣었다. 그래서였을까. 누구나 한번쯤 배우는 피아노. 그것이 당시의 나에겐 그리 매력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바이올린을 배우는 친구가 부러웠고 그 외 보기 드문 악기를 배우는 친구들이 무조건적으로 부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피아노를 그만두고도 십년이 더 지난 요즘 피아노 선율이 귓가에 맴돈다. 자꾸만 피아노 시디를 사게 되고 길가다가 거리에서 피아노 공연을 하는 사람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그만큼 피아노란 대중적인 음악이 아닐까. 하지만 대중은 결코 피아노를 깊이 알고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되었다. 피아노에 대해 잘 알고 듣는다면 피아노의 또 다른 면모를 보게 되지 않을까.
피아노를 즐기는 것과 피아노 음악을 즐기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다고 생각될지 모르지만 피아노의 역사를 알고 보니 피아노 음악이 평소와는 다르게 들린다.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였는데 사실은 사연많은 친구였구나, 그런 기분이랄까. 피아노의 탄생부터 시작해 우리가 잘아는 피아노 연주자들의 이야기가 풍성히 담겨 있다.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본것처럼 흥미롭게 피아노 이야기가 정리가 된다.
시간가는줄 모르고 본 책이지만 몇가지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19세기 이래로 사창가의 거의 모든 업소들에는 피아노가 비치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아는 브람스도 그런 비천한 환경에서 피아노 연주자로 일했다. 그 유명한 음악가가 호등가에서 피아노를 쳤다는 말이다. 쉽게 그려지지 않는 그림이지만 그런 환경에서 예술가는 굴욕감을 느끼고 음악에 대한 더 큰 열망에 시달렸을 거라고 짐작해본다.
연주자와 연주자의 카리스 마간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카리스마 넘치는 연주가였던 리스트는 아버지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아버지는 아들이 감히 베토벤의 하머클라비어 소나타에 도전했을 때 아들의 따귀를 때렸다. 나중에 베토벤은 리스트의 연주회에 참석해 어린 피아니스트의 이마에 입을 맞춰주었다. 니콜로 파가니니는 청중이 무대 위에서 마법이 행해지고 있다고 믿게 만들 정도였다. 이렇게 카리스마를 갖춘 연주자들은 청중과 교감을 크게 할 수 있었지만 때때로 깊이가 없다는 지적을 들었다. 마치 콘서트장에서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는 음악가에게 깊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것인듯하다. 연주자란 청중과 교감도 중요하지만 진중한 연주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걸까.
굵직하지만 사진과 그림을 보며 흥미롭게 읽은 책이었다. 피아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종종 펼쳐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