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평역에서 ㅣ 창비시선 40
곽재구 지음 / 창비 / 1983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문학회에 들어갔다. 선배들은 처음 나를 대하던 때 뿐 아니라 시 합평회를 할때도 농담을 할때도 '사평역에서'를 빼놓지 않았다.
군대 휴가 나와서 하는 말
'하늘에는 별이 가득한데 말이야. 철책에 서서 '사평역에서'를 낭송하는 거야. 그러면 눈에서 눈물이 스르르 흐르는 거지.'
궁상에 궁상을 다 떨더니 우리들 문학학습 시켜준다고 또 <사평역에서>를 꺼냈다.
시 한줄 한줄, 시어 하나 하나를 망치로 박듯 우리 가슴속에 세겨주려 애쓰던 선배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내가 시를 처음 만나 알아가던 시절, 나는 그렇게 <사평역에서>를 만났고 <사평역에서>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하지만 그 후 시간이 지나도 도대체 그 시가 어떻게 좋다는 것인지 가슴속에서 대답이 없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가슴속에서 반응이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3년이 지나고 4학년 초입이었다. 갑자기 절친한 후배가 동아리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화가났다. '이런게 실연이구나' 싶었다. 선배의 그 어떤 변명도 귀에 들어오지 않고 내 곁을 떠나겠다는 그 말이 그렇게 잔인하게 나를 때리는 것이었다. 그 날 밤, 군대간 동기에게 편지를 썼다. '실연'당했다고...
녹음기에서는 박종화씨가 낭송하는 '사평역에서'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란 말인가? '사평역에서'가 내 가슴을 탁탁 치는 것이었다. 난로옆에 모인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한편의 시가 실연당한 나의 가슴을 치며 위로하다니...
나는 그렇게 시를 알았다. '사평역에서'는 가슴으로 받아들인 날, 나는 드디어 시를 알게 된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