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한비자 지음, 김원중 옮김 / 홍익 / 199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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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메모를 해뒀다. 나중에 서평 쓸 때 써먹으려고 나름대로 멋있는 말이랍시고 적어 둔 것이다. '政者正也(정치란 바른것이다)란 말은 한번도 정치에 참여한 적이 없는 사람이 했다. 그러나 현실의 권력관계를 직시한 韓非 역시도 제명에 못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디 제명에 못살기만 했나. 따지고보면 그 역시도 주군을 찾아 헤맸을 뿐 한번도 정치에 참여해 본 적은 없다. 그렇게 정치에 참여하지를 못했으니 한가하게 글이나 쓰고 있었을테고, 그덕에 오늘날 내게 그 생각의 일단을 들려주고 있다.

<孫子兵法>을 원문으로 읽은 여세를 몰아 <韓非子>도 원문 그대로 한번 읽어보려는게 당초의 계획이었는데, 정작 책을 손에 쥔 직후에 깡그리 포기해버렸다. 양적인 면에서 손자병법과는 비교도 안되는 방대한 저작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나 책 전체를 꿰뚫는 철학이라는 면에서는 어쩌면 손자병법보다 간단하다. 철저하게 비판적인 인간관, 그리고 그 이기적이고 못믿을 인간들과 살아가면서 가져야할 마음가짐에 대한 얘기들이다.

비내(備內)편의 이런 말은 한비자의 인간관을 대변한다. '의원이 다른 사람의 종기를 빨거나 그 나쁜 피를 입에 머금는 것은 골육간의 친애하는 정 때문이 아니라 이득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마 만드는 사람은 사람들이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 짜는 사람은 사람들이 요절해 죽기를 바란다. 가마 만드는 사람은 어질고 관 짜는 사람이 잔혹해서가 아니다. 사람이 귀해지지 않으면 가마가 팔리지 않고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안팔리기 때문이다.' 맹자는 기껏 잘 대접해주는 군주에게 '하필 이익을 말하느냐'며 혼자 고고한 척 하지만, 한비자는 바로 그 이익을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휘어잡는 키워드로 제시하고 있다.

이같은 인간관이 전제된 상태에서 제시되는 통치술이란, 익히 고등학교 시절부터 들어온 바와 같다. 철저한 신상필벌이다. 그러나 그 상과 벌이라는 것도 상식과는 다소 다른 차원에서 주어진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이 애초에 해내겠다고 말했던 것보다 더 큰 일을 해낸 자는 오히려 벌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지목되고 있는 점이다. 이는 과장된 업적을 경계하는 바도 되지만, 근본적으로는 법과 제도에 의한 정치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몇몇 뛰어난 인재들에 대한 과분한 대접이란 곧 군주에 대한 위협에 다름 아니라는 인식하에, 요즘 말로 하면 철저히 시스템 속에서 부속품으로서의 신하만을 강조한다.

김대통령이 유심히 바 뒀더라면 좋았을 법한 말도 있다. '도대체 군주가 되어 백관이 하는 일을 자신이 직접 다 살피려 한다면 시간이 부족하고 능력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군주가 자기 눈으로 보려고 하면 신하가 겉을 보기좋게 꾸밀 것이고 군주가 자기 귀로 들으려 하면 신하가 듣기 좋게 소리를 잘 가다듬을 것이고 군주가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려고 하면 신하가 빈번하게 언변을 늘어놓을 것입니다' 군주 자신에게마저도 개인 능력에 의한 인치(人治)가 아닌 제도에 의한 법치를 강조하고 있는 대목이다.

다만 이같은 정치관이 실생활에 적응되기 시작하면 다소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한비자의 유세 자료집이라고 할 수 있는 설림(說林)에는 주로 이런 얘기들이 가득차 있다. 하나라의 폭군 걸왕을 멸망시킨 은나라 탕왕이 낼름 나라를 집어삼키기에 명분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무광이라는 자에게 왕좌를 받아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무광이 냉큼 왕좌를 받아들일까 두려워서는 '탕이 군주를 죽이고 악명을 자네에게 떠넘기기 위해서 천하를 자네에게 물려주는 것'이라고 귀뜸했다. 새가슴 무광은 스스로 황하 강물에 몸을 던져 죽었다.

우리가 안방 사극에서 흔히 보는 권모술수의 축약본이라고 할만한데, 주의해야 할 점은 이 권모술수가 그냥 나온게 아니라 논리적 추론을 거쳐 최종 단계에서 실생활에 적용된 것이라는 점이다. 근본도 모른채 그저 권모술수만 배웠을 때 그것이야말로 모래위의 성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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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초상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20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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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최근의 이문열은 내게있어 경멸의 대상이지만 젊은날의 초상의 작가 이문열은 내게 이외수와 함께 언제나 경외심을 일게하는 작가였다. 그리고 이책은 내가 이문열을 접한 처음 작품이었고...요사이 왠지모를 우울한 감정이 도드라지더니 없어질 생각을 않고 나로 하여금 이책을 다시 잡게 되었다. 나의 이십세가 어떻게 지났는지에 대해 고찰함과 동시에 이문열의 이십세를 읽었다. '젊은 날의 초상'은 많은 이들에게 추천을 받았던 이른바 '이십세가 되기 전에 꼭 읽어야할 책' 목록에 끼어있는 작품이다.

세가지 중편이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하나의 장편을 이룬다. '하구', '우리 기쁜 젊은날', '그해 겨울' 이 세가지 이야기는 분명히 독립적이면서도 서로를 긴밀하게 끌어안고 있다. 간혹 필요에 따라 여기저기 침투하기도 하면서 나의 진지한 여행길로 인도하고 있는 것이다. 글을 읽으며 독자는 나와 동일시되기도 하고, 철저히 타자화시켜 배격하기도 한다. 이런 독자의 이중성은 '나'가 겪고 있는 지적 혼란의 시기에 부합하는 태도라고 본다.

80년대 초 '나'의 방황은 시기적절한 이유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아니 그들의 방황은 시대의 흐름에 몸을 싣는 것이었으며, 정당했다. 그들만의 특권이었으며, 또한 자부심이었다. 허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21세기 초입에 들어선 지금 '나'의 방황은 배부른 지적 건방 내지는 사회적 아웃사이더의 치기어린 비행 정도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다. 그의 그런 행적을 부러워하면서도 또한 한편으론 비웃는다.

이문열의 현학적인 문체는 분명히 예민한 이십세의 감수성을 뒤흔들어놓을 수 있을만하지만 그것은 결코 내가 겪었던,혹은 겪을 수도 있었던,혹은 겪어야만했던 이십세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무엇이 나의 이십세를 이야기하는가. 무엇이 나의 이십세를 만들고 있는가. 그것은 썩어빠진 사회를 부정하고, 모호한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기를 원하는, 그래서 이유있는 방황을 택하는 눈이 뜨인 이십세가 아니라 사회의 흐름에 몸을 싣고 '왜','어떻게'를 잊은 채 그저 움직이고, 과정없는 결과를 낳아야만하는 이십세이다.

이문열의 '나'에게 묻고 싶다. 지금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는지. 이미 접근해있는 모든 가치로부터 떠나면 더 큰 가치를 붙들게 될수 있는지. 자질구레한 애착에서 용감히 벗어나면 미래의 더 큰 사랑을 얻을 수 있는지. 아마도 나의 이십세는 그런 큰 모험을 할만큼 담이 크지 못했던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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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아들
이문열 지음 / 민음사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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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전쯤의 기억이라 생각된다. 이 '사람의 아들'은 읽기 전에 나를 참 힘들게 했던 책이다. 제목에서 오는 느낌도 그랬고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줄거리는 책에 대한 거부감마저 느끼게 만들었다. 피해가고 싶었는데.. 어쩔 수 없이 읽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책을 잡은지 하루만에 끝을 보고 말았다는거다. 나는 ‘지겹게 오래 잡고 있겠구나’하고 생각했었는데... 분명 어려운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장 한 장 한 장이 참 쉽게 넘어갔다. 허구인 소설이라는 사실도 잠시 잊고 이게 정말 사실일까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읽으면서 가장 힘들었던건 예수나, 야훼 등 크리스트교에 관해서 아는게 별로 없다는 사실이었다. 기본적인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하니까 처음에는 무슨 이야긴가 하고 한참을 아리송해했었다. 그래도 친구에게, 어머니께 물어가면서 아는건 아는대로 모르는건 모르는대로 읽어나갔다.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은, 본성이 착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백지상태, 그러니까 성무선악설에서 이야기 하는대로가 사람의 원래 모습인 것 같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다 착한 마음도 악한 마음도 배우게 되는것인데 어떤 성향이 더 강한가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지 완벽하게 ‘선’ 인 사람도 완벽하게 ‘악’인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어느쪽으로든 완벽하다면 그건 정말 ‘신’이겠지.

민요섭이 창조했던 아하스 페르츠의 ‘신’은 어쩌면 내가 한번은 바랬던 신이기도 한 것 같다. 완벽하지 못한 인간을 있는 그대로 보아주는 신. 그래서 한번쯤 나쁜일을 했대도 눈감아 줄 수 있는 신. 하지만 신에 관해서 생각하는 건 워낙 어려운 일이라서 나는 생각하다가 말았었다. 절대적인 신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건 생각해봤자 나와는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책 속에 내가 잠시 그리다가 말았던 신을 완성해낸 사람이 있었다. 민요섭. 그는 그러한 신을 만들어 내고 그에 따랐지만 결국 본래의 예수의 ‘하느님’에게로 돌아간다. 돌아가던 길에 결국 멈춰서고 말았지만.

그가 창조했던 ‘신’은 선도 악도 아니고 모든 것의 중심이었다. 선과 악에도 중심, 착한 일을 해도 칭찬하지 않고 나쁜 일을 해도 꾸지람이나 또는 용서란 것도 없고. 한번에 보면 정말 신이란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지만 그게 아니다. 민요섭의 아하스 페르츠의 ‘신’은 허수아비다. 감정도 뭐도 없는 방관자일 뿐이다. 그런 신이라면 있을 필요도 없다. 필요에 의해서 ‘신’이 있는 것은 아닐테지만, 사람들이 ‘신’을 믿는 것은 필요에 의해서 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신이 그냥 보기만 하고 어떤 일도 하지 않는 다면 사람들에겐 신을 믿는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독실한 신앙인들께는 왠지 권하고 싶지 않은 책으로 기억되며, 작가 이문열의 초기작품들을 감상하고 싶으신 독자들께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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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1 지혜가 드는 창 44
진중권 지음 / 새길아카데미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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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이 도대체 뭘 말하는 건지 조금의 이해도 없는 상태에서 호기심만 커져 여기저기 알아본 결과 접하게 된 이책. 처음 저자의 이름이 진중권이라는 사실을 알았을때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회전반에 대한 독설로만 유명한 줄 알았던 사람이 미학을 전공하고 이러한 책도 썼구나하는 기분에서 였다.

별에 대한 감상적인 이야기로 저자는 이책을 시작한다. 두권짜리인 이서적은 고대에서 현대까지 이르는 서양예술사와 예술의 방법론에 대한 저자의 확고한 지식을 유감없이 증거한다. 특히 두번째 권에서 보여지는 예술의 방법론에 대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간의 대화형식은 조금은 특이(?)한 저자 유머감각을 보여주기도 하며, 간간히 들어있는 예술사진자료들은 자칫 지루해질수도 있는 텍스트를 무리없이 읽어내게 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이책 하나로 미학에 대한 전반적 기본을 쌓았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미학이라는 생소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일독의 가치는 있으며 추천의 여지도 다분히 남겨주는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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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NOT? -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 읽기
유시민 지음 / 개마고원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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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은 벌써 오래 전에 출판된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통해 이미 그의 반골기질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제대로 읽어야 할 세계사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거꾸로 읽어야만 했던 시대에 그의 글은 불온한 시대에서 불온(?)한 사상으로 낙인 찍혀 한동안 그의 죄원이 되더니 그래도 세월은 많이 바뀌었나 보다. 이 정도 글로는 감방 문턱에도 못가니. 유시민, 진중권 등을 선두로 한 이 일군의 전업 욕쟁이들이 호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직명거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ㄱ'씨, 'K'씨, '갑'씨 등등 안 그래도 성씨 많은 나라에 없는 성씨를 만들어내는 신문, 잡지들만 봐오다, 이 직사포의 통쾌함을 맛보게 되면 더 이상은 '명예보호'라는 이유로 희한한 성씨로 둘러대는 기사들이 역겨워진다.

유시민은 이 직사포 특공대의 첨병으로 몇몇의 동지들과 함께 적진에 뛰어들었다. 적은 예전보다는 쇠퇴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유시민따위는 100명이 덤벼도 두렵지 않다고 큰 소리다. 군사전문가들은 이 작전을 미션 임파서블이라 부른다. 그러나 실패율이 99.9%에 가까운 이 작전에 참가하는 유대원의 모무한 행동에 그래도 박수를 치는 까닭은 그의 영웅담이 후세에 널리 알려-지지는 않더라도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보이게 보이지않게 틀림없이 남아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건필을 바라고, 직사포병 훈련소 설립에도 게으르지 말 것을 당부한다. 올바른 사회상식을 가지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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