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늘 나남창작선 114
안정효 지음 / 열음사 / 199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가로서도 번역가로서도 역량을 발휘하는 안정효씨의 단편집이다. 탁탁 끊기는 듯한 묘한 매력의 문체는 아마도 작가의 오랜 기자생활이나 번역가로서의 경력에서 나오는 자산이라 생각된다.한 번 걸려든 물고기를 좀 더 확실히 낚기 위해, 낚시 바늘에는 뾰족하게 가시 하나가 돋아 있다. 그것이 바로 미늘, 그렇게 걸려든 물고기는 다시 빠져나가지 못한다.

'미늘'의 주인공 구찬에게 있어 미늘은 무엇일까. 항상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그의 소심한 성격? 아니면 놓아줄 듯 놓아줄 듯 그를 물고 늘어지는 수미? 그것도 아니면 그를 인정하지 않는 가족들? 그 미늘이 어떤 것인지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그는 걸려든다. 그리고 꼼짝달싹하지 못한다. 우유부단한 그가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 '현실적인 가능성으로서 그 앞에 나타난' 죽음이다. 그 상상만으로도 그는, 안도할 수 있고 일시적인 도망자가 될 수 있다. 결국 그는 혼자서 그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일은 엉성하게 마무리되고 만다. 이제 '미늘의 끝'이란 속편격의 소설도 나왔다고 하니, 한 번 읽어보고 싶은 심경이다. 무엇보다 구천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지, 그 선택이 이끌어낸 결과란 무엇인지 알고 싶다. 이밖의 단편인 '황야'나 '미국인의 아버지'에서도 안정효 특유의 냉정한 관점을 듬뿍 감상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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