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 외 지음, 정재곤 옮김 / 세상사람들의책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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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음식물 쓰레기를 처분하지 못해 골치를 썩는 사람과 먹을 것이 없어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현실의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금리가 내리고 은행이 고객확보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은행 문턱은 여전히 높다. 가난한 사람과 은행! 어울리지 않는다. 어딘가 어색하다. 세상에는 크고 작은 편견이 존재한다. 특히 은행의 문턱이 유독 가난한 사람에게 높다는 사실은 세계적인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꿈꾸는 경제학자였던 무하마드 유누스의 눈에 비친 이러한 은행의 관행은 비합리적이었다. 꿈꾸는 사람에게 때로는 상식도 이해할 수 없는 비상식에 속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할 권리가 있는데 왜 은행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빌려주지 않는 것일까? 유누스는 가난한 이들도 융자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며 투쟁하던 끝에 이들을 위한 은행을 설립한다. 올해로 설립 26년째를 맞은 그라민은행이다. '그라민'은 방글라데시말로 '마을'이란 뜻이다. 말 그대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빈자(貧者)의 은행이다. 1976년 유누스는 주머니 돈 27달러를 털어 시골 마을 주민 42명에게 대가없이 빌려줬고, 그의 꿈은 현실이 되고 지금은 세상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그것도 인구의 36%가 극빈선 밑에서 허덕이는 방글라데시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는 유누스 그라민 총재가 26년에 걸쳐 이뤄낸 꿈에 관한 보고서이고, 가난 없는 세상을 실현하려 애써온 유누스 총재의 자서전이다. 이 책은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경제학자가 빈민을 위한 은행을 설립하고, 그의 신념이 어떻게 수백만 명의 운명을 바꿔 놓았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모든 경제활동의 출발점은 인간이었고 최상의 가치는 희망이었다는 사실을 이책은 또한 증거하고있다.

그라민은행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로, 아무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빌려주고, 둘째로, 절대 필요한 만큼 조금씩만 빌려주며, 셋째로, 절대 담보나 보증이 필요 없이 오직 신용만으로 빌려준다는 점이다. 사실 기존은행에서 보면 위험한 영업방식이다. 더구나 설령 돈을 갚지 않더라도 사법처리를 하지 않는다. 사람은 정직하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빈자대출, 인간존중은 유누스의 신념이다. 가난한 사람임이 증명된 다섯 명의 소수빈자 그룹을 한 묶음으로하여 5명 상호간의 선의와 노력, 신용을 공동담보로 대출해준다. 어디까지나 대출자의 자립의지가 최선을 담보라는 것이 그라민의 철학이다. 떼이지 않고 이자만 챙기는 종래의 금융기법을 완전히 깨버렸다. 기존의 은행이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과 편견을 완전히 뒤집었다. 그러나 결과는 경이로운 것이었다. 이 은행의 상환율은 지난해 4월부터 올해 3월까지 98%에 달했다.

그라민은행의 설립과정과 다양한 실험들, 주택융자와 의료시스템 등의 새로운 도전까지 담고있는 이 책에서 유누스 총재는 '우리 모두가 가난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꿈을 함께 나눈다면 그런 세상은 실제로 찾아올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근면 등 그라민은행 대출자가 지켜야 할 16계명을 도입, 은행의 역할을 단순융자에서 사회개혁으로 확대시킨다.

이 책의 궤적을 따라 읽어가다 보면 인간에 대한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꺠닫게 해준다. 유누스가 보여주는 신뢰는 남자든 여자든, 늙든 어리든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며, 빈곤층을 향해 사회에 만연해있는 편견을 깨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또한 가난은 개인 탓이 아니라 돈을 매개로 꿈과 희망을 가질 때 누구나 큰일을 해낼 수 있다는 신뢰가 바탕이 된 것이다. 우리사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자신의 가족과 부유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는 그릇된 인식 속에 놓여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으로 아름다운 삶이 어떤 것인지, 가진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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