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내 아내와 결혼해 주세요
예담 / 2013년 11월
평점 :
판매완료


ボクの妻と結婚してください. 

 

"내 아내와 결혼해주세요." 제목부터 참 충격적이다. 몇 년 전 제목만 보고 깜짝 놀랐던 '아내가 결혼했다'와 비슷한 충격. 이 책은 최근 즐겨듣는 이동진의 빨간책방 '에디터 통신'에서 소개받고 확 구미가 당겨서 사게 됐다. 

단 이틀 만에 독파했다. 그러고 보니 '독파'라는 단어는 안 어울리겠다. 271페이지 정도 분량에 글씨크기와 행간도 적당해서 말 그대로 술술 읽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책 구성이 참 마음에 든다. 주인공이 수첩필기를 읽는 대목에서는 정말 손으로 꾸욱 눌러쓴 수첩필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고, 이메일을 확인하는 부분에서는 실제 이메일을 읽는 듯 세련되고 약간은 건조한 날씬한 글씨체다. 편집에 세심하게 신경 썼구나 싶다. 

또 하나 장점은 번역이 무척 매끄럽다는 점이다. 책 읽는 내내 번역서를 보는 듯한 기분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물론 일본소설이라 특정 단어에 대한 부연 설명이 필요한 부분도 있는데 그럴 때는 역자가 책 아랫단에 간략한 설명을 덧붙인 덕에 몰입해서 읽는 데 전혀 방해가 되지도 않았다. 오히려 번역 팁을 얻은 느낌이다. :-) 그래서 역자 김해용씨 번역서도 좀 더 찾아보았다. 나중에 생각날 때 읽어볼 생각. 

이 책 작가는 유머감각이 뛰어난 사람이다. 무심한 듯 툭툭 써놓은 주인공의 생각이나 말, 행동들이 키득키득 웃음을 자아냈다. 심지어, 나중에는 포복절도했다.(정말로!) 어쩜 이렇게도 부부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묘사하는지, 그것도 너무나도 재미있게. 어떤 페이지는 읽는 내내 배꼽 잡고 웃었다. 주인공이 죽게 될 병에 걸렸음을 알리는 그 심각한 순간에도 날 웃게 만들었다. (스포일러일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첫 페이지에 바로 드러나는 사실이니까.)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작가에 대해 찾아봤는데, 히구치 타쿠지라는 사람으로 일본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방송작가였다. 어쩐지. 히구치 타쿠지의 다른 책을 더 보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강렬한데, 아쉽게도(?) 이게 그의 소설 데뷔작이라고 한다. 일본 작가의 소설이 이렇게 좋았던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발, 두번째 소설도 계속 써주었으면 좋겠다. 제발! 

(에쿠니 가오리의 '냉정과 열정사이'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을 읽었을 때도 그 작가의 다른 책까지 읽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물론 내 취향일 뿐이고, 나는 일본소설 특유의 추상적인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주인공 미무라 슈지가 아내 아야코에게 결혼할 남자를 찾아주는 기획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도움을 받는 주변인들은 공교롭게도 모두 직장 동료들. 재미있던 건 그들이 미무라의 엉뚱한 구상을 듣고 하는 이 말이다. "또 프로그램 때문이구나?" 미무라씨가 만나는 동료들을 통해서 미무라씨의 평소 가치관과 일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일벌레였나보다. 하지만 늘 타인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한 일벌레. 심지어, 죽음을 앞두고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아내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한, 지독한 일벌레.

점점 그의 D-day가 다가오면서 미무라와 아야코의 머릿속을 옮겨다니는 전개는 나를 참 서글퍼지게 했다. 아야코의 삶 속에 묻어 있는 슈지에 대한 사랑과 애틋함. 그것이 삶이 다하기 전에 아내에게 결혼상대를 찾아주고자 최선을 다해 뛰어다니는 미무라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더욱 슬퍼졌다. 

"가족이 먹는 밥은 전 세계 어떤 요리보다 맛있습니다." p.188
이 책에서, 그 어떤 말보다 미무라의 진심이 드러나는 한 마디다. 

강력 추천합니다. :-)



* 기억에 남는 구절 :

"최근에 중년과 노년 여성을 주 시청자로 삼는 건강 프로그램이 많은데, 그거, 병자들은 보지 않아. 병자들이 건강 프로그램을 보면 괜히 슬퍼지거든."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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