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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김현영, [러브 차일드], 자음과 모음, 2010.
난해했다. 그리고 매우 날카로웠다. 그녀의 문장은 이해하기 어려웠고, 그녀가 펼쳐놓은 이야기는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인간을 폐기물로 처리하는 기계적인 과정을 묘사하는 첫 부분부터 이게 도대체 무슨 내용이지? 제목은 러브 차일드인에 왜 이런 내용부터 시작되는거지 라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인간을 쓰레기로 처리하는 현장에 대한 묘사는 결국 이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핵심 내용이자,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능을 한다. 이때 인간이 인간을 쓰레기로, 폐기물로 처분하고 구분하는 과정은 이 시대 문명의 폐단을 떠올리게 하기에 어욱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부감이 있었다는 것은 결국 우리 시대의 모습이 이렇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니까. 인간을 쓰레기로 보고 쓰레기를 처리하는 과정대로 인간을 처리하는 세계. 이 작품의 배경이자 핵심 모티프는 내 표현과는 달리 매우 생생하고, 그렇기에 매우 충격적으로 나타난다. 외면하고 싶은 현실의 어딘가를 작가는 들추어내며 내게 반성을 요구하는 듯 했다. 형식면에서 그녀는 명사화 구성을 취하는 문장을 많이 썼다. 현실에 대해 가급적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며 봐라, 여기가, 이것이 네가 사는 세계라며 냉소적인 조롱을 하는 것 같았다. 마치 작가가 제시한 인물군 - 노동에 착취당하거나, 이러한 착취의 시스템에 동조하거나, 혹은 그러한 세계를 만들고 운영하는 집단 - 중에 너는 어디에 속해있냐는 선뜻 대답 못한 질문을 던지는 듯 했다. 무서웠다. 그리고 정말 묵직했다. 사실 이 작품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스스로 깨닫고 반성하는 부분이 나온다. 작가는 우리에게 이러한 반성과 자각을 요구하는 것일까? 아니면 어느 정도는 자서전적인 내용일 수 밖에 없는 이러한 작품을 통해 작가 스스로 위안을 삼으려는 고백이었을까? 뭐, 사실 아무래도 상관은 없다. 문제는 나. 나의 반성과 자각이 얼마나 일어났느냐니까. 그녀에게 이 작품은 흥미나 유희를 위한 막연한 허구적인 작품이 아니었다. 작품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금, 여기’와의 연계를 통해 우리에게 심각한 고민화 반성이라는 과제를 던져주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