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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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사과는 잘해요], 현대문학, 2009.

“아들! 화분 깨지지 않게 조심하랬잖아!”
“아이쿠...엄마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용서해주세요.”
“으이그, 저놈의 손모가지 분질러놓던가 해야지....”
“제 손목을 부러뜨리면 화가 풀리시겠어요?”
“이것이! 조용히하고 니 방으로 들어가기나해!”
이윽고 들리는 ‘아앗!’소리. 시퍼렇게 멍들고 하염없이 부어있는 아들의 왼쪽 손목을 보며 엄마는 깜짝 놀라서 달려온다. 아들은 눈물을 머금고 그러나 미소를 지으며 엄마에게 말한다. “엄마, 이렇게 사과했으니까 용서해주세요.”
이러한 말도 안되는 상황이 작품 속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주인공들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남의 잘못을 대신 사과하기 위해 이러한 행동을 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인 나와 시봉은 정신 지체 시설 보호소에서 만난 동료이다. 남들보다 뒤떨어지는 지적 능력과 상황 파악력 때문에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상처, 때로는 죽음까지도)를 주게 되지만 정작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갖는 의미를 모른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묘미가 있다.
‘시설의 기둥’이 되어 보호소의 내부 고발자로서의 역할을 하기도 하고 돈을 받고 남을 위해 대신 사과하다가 본의 아니게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위에 펼쳐놓은 손목 이야기도 이 작품에 언급된 내용 중 하나다. 액면 그대로를 믿고 - 그 이면의 것은 모른다. 반어인지 역설인지 다 필요없고 그냥 그대로 믿어버린다 - “어떻게 하면 사과를 받으시겠어요?”, “그 사람 대신 죽어줄 수 있어요?” 라는 의뢰인의 말을 의뢰인이 원하는 바라고 곧이 곧대로 믿어버린다. 요즘 시절은 하도 험하고 잔인한 범죄들이 많아서 차라리 함부라비 법전이 부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도 조금 지나친 사과 방법들이 나오곤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건들을 겪어나가면서 ‘나’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았다. 사과의 의미, 행동의 뜻 등에 대한 미묘한 차이를 느끼며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 혹은 의식하지만 애써 외면하면서 - 사과를 하기 위해 죄를 짓기도 한다. 어쨌든 스포일러적인 글이 될까봐 내용 소개는 이쯤에서 줄인다.
문학평론가 박혜경은 “이 작품을 위해 작가가 실제로 카프카의 작품으로부터 어떤 발상을 얻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작품을 읽는 동안 종종 카프카 작품의 편린들이 어른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죄 권하는 사회」, 4. 집으로 가는 길은 어디인가?) 라고 말한 바 있다. 카프카의 팬으로서, 이기호의 팬으로서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이기호의 선 굵은 작품을 좋아하고, 그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는 열혈 독자인 나는 [사과는 잘해요]에 뜨거운 격려와 찬사를 보내며, 벌써부터 그의 차기작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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