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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슬똥을 누는 사나이
전아리 지음 / 포럼 / 2009년 7월
평점 :
전아리,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 문학포럼, 2009.
“사랑해” 처음에도 사랑했고 지금은 더 많이 사랑하는데 늘 표현은 ‘사랑해’인 것이 불만이었다. 기껏해야 ‘많이 사랑해’, ‘완전 사랑합니다’ 정도가 고작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중요한 것이지 그 사랑의 크기나 정도의 차이를 굳이 구분해서 표현할 필요가 있겠냐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뭐, 그냥 더 많이 사랑하고 더욱 진심으로 사랑을 느끼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그걸 표현할 만한 단어를 고르지 못한 투덜거림일 뿐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니가 쓰는 언어는 너의 시계의 한계를 의미한다고 했는데 왠지 이건 내 탓이 아니라는 억울함이 들었다.
책 띠지에는 감각적인 문구가 실려있다. ‘사랑보다 더 좋은 감정....토끼토끼하다!’ 작가 전아리의 맛깔나는 문장력이 그 빛을 발하는 문장이다. 고등학교 시절 대산청소년문학상, 토지청년문학상 등을 휩쓸어 수상하고 명문대에 재학중이고, 디지털작가상대상-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까지 수상한 그녀는 욕심쟁이 우후훗! 마냥 부러울 뿐이다. 소설 읽기를 좋아한다고해서 모두 작가가 될 필요는 없다지만 그녀의 맛깔나는 문장을 탐닉하다보면 나도 이렇게 글을 써보고 싶다는 욕구가 불현 듯이 든다. 힙합 음악을 들을 때 북치기박치기 박자에 랩을 흥얼거려보고, 춤을 추고 싶어하듯이 말이다. 그런데 화려한 랩핑을 자랑하는 랩퍼를 보며 조용히 꿈을 접는 것도 다반사다. 도저히 저 정도는 불가능하겠다는 생각. 그냥 리스너로 남아있기로하듯, 이 책을 다 읽고 모범적이고 능동적인 독자로 남아있기로 다시 마음을 먹는다. 그녀의 감각적이고 섬세한 단어 선택, 그리고 이를 자유자재로 갖고 노는 능력은 가히 천부적인것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억울하다. 이건 불공평하다.
우연히 토끼옷을 주워입은 ‘나’, 그리고 나를 둘러싼 인물군 - 당차지만 엉뚱한 오세리, 묘한 매력의 정은, 바람난 옛 아내, 외모와 달리 소심한 북극곰(이상하게도 읽는 내내 불곰이 떠올랐다)- 이 펼치는 현실적이고 일상적이면서도 이상하고 유쾌한 이야기. 책을 덮을때쯤 ‘토끼토끼’하다는 기분이 뭔지 제대로 느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