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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의 한국사
이은식 지음 / 타오름 / 2009년 8월
평점 :
이은식, [모정의 한국사], 타오름, 2009.
제법 어려운 책이다. ‘모정의 한국사’라는 제목을 보고 당연하단 듯이 맹자의 어머니를 떠올렸고 그녀와 관련된 삼천지교, 단기지계 등의 고사성어도 떠올랐다. 이러한 현모는 외국의 고사성어에나 나오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 생생히 숨쉬고 있고 맹모와 견주어봐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 헌신적이고 뜨거운 모정이 있다는 것이다. 위대한 학자나 정치가 등의 뒤에는 공통적으로 훌륭한 어머니가 있었다. 때로는 직접 학문을 가르치고, 없는 살림을 팔아 책을 사서 자식들의 학업에 뒷바라지도 하고, 극단적으로는 자신의 목숨을 희생해서까지 자식의 앞날을 위해 헌신하였다. 이러한 어머니들의 희생과 헌신,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의 역사는 이렇게까지 자리 잡을 수 있던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여성들의 활동이 매우 제한적이었다. 이 책에 나오는 어머니들은 하나같이 이름이 없다. 해평 윤씨, 순흥 안씨, 문화 유씨, 평산 신씨 등 이름마저도 사회활동에의 제약이 있음을 확연히 보여준다. 그러나 당시의 여자들은 자신의 역량을 펼칠 수 있는 가정이라는 한정된 공간 내에서라도 올바른 인성과 철학을 가지고 자식을 훌륭히 길러내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람을 제대로 길러낸다는 것은 부모가 되어 본 사람이나 선생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것이다. 자신의 인성을 먼저 갈고 닦지 않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 일화들이 제법 많다. 사육신이 아니라 사칠신, 이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을 뿐이지 이네들만 화를 입은 것이 아니다. 무려 40여명이 사지를 찢기는 참혹한 형으로 죽음을 당하였다고 한다. 끝까지 항거한 김문기의 허묘도 1977년 추가로 봉안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생육신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남효온 선생의 [육신전]에서 사육신이라는 명칭이 비롯된 오해가 비로소 풀렸다는 것이다. 또한 감동적인 박비의 두 어머니에서는 자식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노비의 자식과 자신의 아들을 맞바꾸는 슬픈 이야기도 나온다. 이러한 희생 끝에 사육신 중의 한명인 박팽년의 후손이 끊기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다. 사육신의 후손이 명맥을 유지하는 것은 박팽년이 유일하다고 한다.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의 양사언, 그의 어머니 문화 유씨는 실제로 자식이 서자로 한계를 느끼게 될 상황에 놓이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책이 아니라 자식을 위한 희생이었다. 아무리 모정이 뜨겁다 해도 자식의 성공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실제로 행한 어머니의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을 자식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이러한 문화 유씨의 희생 덕분에 현실에서 신분으로 인한 차별을 받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
이러한 어머니들의 행적을 뒤쫓아보며 내 마음은 한층 숙연해졌다. 그리고 치맛바람으로 불리는 지금의 어머니들의 모습과 비교해보게 됐다. 물론 현재의 어머니들도 자식의 앞날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 나온 어머니들처럼 진심으로 자식들의 영광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가 몇이나 될까 조금 의구심이 생겼다. 예나 지금이나 자식의 장래를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고 희생하는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