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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델핀 드 비강, 이세진 역, <길 위의 소녀>, 김영사, 2009.
“창밖으로 맑은 하늘을 쳐다본다. 우리는 그렇게나 작아서, 무한히 작기만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282쪽)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나, 베르티냑은 어떻게든 삶을, 세상을, 희망을 이해해보려는 영재 소녀이자 지적 조숙아이다. 온실에서 잘 보호받고 자라난 듯한 천재 소녀와, 사회와 길거리에서 밑바닥 인생을 살던 노숙자 소녀가 만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단지 우연히 노숙 소녀 ‘노’와 인터뷰를 했을 뿐인데 그 인연이 계속되는 것이다. 이 작품을 좋은환경에서 잘 자란 철없고 순수한 천재 소녀가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노숙 소녀에게 무한한 동정을 보내는 소설에 불과하다고 속단해서는 안될 것이다. 주인공인 베르티냑은 그녀를 도와주는 뤼카와 함께 노를 도와주고 함께 생활하며 공감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스스로도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그러나 베르티냑이 진심으로 대하더라도 노는 쉽게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오지 않았다. 변화도 잠시, 술과 약에 취해 지내는 노의 모습을 보며 실망도 하지만 베르티냑은 인간 본성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고 그 변화 가능성을 굳게 믿는다. 이는 세상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 때문이리라. 자신의 진심을 언젠가 이해해줄 것이라 믿고 또한 노를 돕는 다른 친구들도 마치 자신과 같이 변화에 대한 긍정적이고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으리라 막연히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의, 학교의 친구들이 그리고 헌신적으로 노를 돌봐주고 긍정적인 변화에 힘을 실어주던 그녀의 부모님이 결국에는 노를 포기하고 돌아설 때 엄청난 상처를 받기도 하게 된 것이다. 베르티냑은 천재다. 사회의 흐름과 변화에 대한 액면은 이미 이해하고 있는 조숙한 학생이다. 그러나 인간 관계,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소통을 하는 법은 미숙하기에 지적조숙아로 한정되는 것이다. 이 순수하고 정많은 캐릭터가 큰 상처를 받고 세상과 사회로부터 등을 돌리게 됐다면 독자로서 큰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을 것이다. 이 <길 위의 소녀>는 한편의 성장소설이다. 작중에 ‘2006년 5월부터 2007년 3월까지’의 기록임을 밝히는 문구가 나온다. 그리 길지는 않았던 시간이지만 베르티냑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큰 성장을 했다고 본다. 삶을 이해하고 끝까지 희망을 놓치지 않고 세상을 이해하는 시선을 확대시킴으로써 보다 성숙한, 인간 다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작품에는 ‘우리만의 비밀이 있다’, ‘우리에게는 힘이 있다’등의 자신감이 넘치는 문장이 자주 나온다. 어린 천재 소녀 베르티냑의 눈으로 보기에는 세상이 만만해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몇 번쯤인가 겪은 후 이 작품의 말미에는 ‘우리는 그렇게나 작아서, 무한히 작기만 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일까?’라는 물음으로 되돌아오게 된 것이다. 과연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무엇일까? YES를 외치며 이 순수한 소녀의 꿈을 훼손시킬 것인가 혹은 NO를 외치며 그녀를 격려해줄 것인가는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