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가 떴다
김이은 지음 / 민음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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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은, <코끼리가 떴다>, 민음사, 2009.

 

가슴 한켠이 찌르르하며 읽는 내내 아팠던 책이다. 아홉 개의 단편 소설을 모아 놓은 이 책은 별개의 작품을 그냥 모아 놓은 소설집이 아니라 그 중심을 꿰뚫는 주제상의 고통점을 중심으로 모아 놓은 것이다. 독자에 따라 그것에 대해 각각 다르게 이야기하겠지만 나는 그것을 ‘아픔’이라고 본다. 몇몇 작품을 살펴보다. 상대의 아픔과 고통을 치유해주는 ‘가슴 커지는 여자 이야기-심율처: 대체 의학 연구 사례’는 상대를 치유해 줄 때마다 가슴이 커지는 여성의 이야기이다. 모성의 치유력을 기반으로 고통스러운 현실을 살아가는 도시 소시민들에게 생명력과 평안함을 제공한다. 그러나 주인공 자신에게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에 윈-윈이 아닌 아픔의 전달 과정이 생겨나 결국 치유자가 모든 고통과 슬픔을 짊어지게 되는 안타까운 결말로 치닫는다. 또한 ‘외계인, 달리다’는 가면가게 주인인 주인공이 매일같이 희한한 가면을 쓰고 있는데서 사건이 시작되는데 정작 자신의 눈에는 전혀 가면을 쓰지 않은, 본 얼굴이 보인다는 점이 특이하다. 현대 사회를 이루고 있는 각 구성원들간의 소통과 단절, 그 속에서 가면은 어떤 기능을 하며 그 가면을 우리가 어떻게 쓰고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제법 현실감있고 공감가게 표현해놓았다. 그 외에도 표제작인 ‘코끼리가 떴다’도 좋았고, ‘여의도 저공비행’도 상당한 수작이었다. 그 중에서도 ‘쇼맨’이 기억에 남아서 간단히 소개하고자 한다. 술집에서 선수생활을 하다가 분위기를 띄워주고 팁을 받는 쇼맨 생활을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다보니 손님은 왕이고, 돈만 준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 주인공은 제법 돈도 벌고, 인기도 좋았다. 그렇지만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날 통닭가게를 하는 엄마가 돈 몇푼 때문에 자존심 상해가며 미장원 원장과 싸웠는데 주인공이 합세해서 제법 상대의 자존심을 밟아놓고 화를 돋아놓고 나왔다. 그런데 그 날, 공교롭게도 쇼맨의 손님으로 미장원 원장과 스탭들이 나타난다. 쇼맨을 알아보는 그녀들, 그녀들 앞에서 쫄쫄이 타이즈 바람으로, 그리고 알몸으로, 돈을 벌기 위해 기쁨조가 되었다가 또 낮의 일에 대한 화풀이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는 쇼맨의 역설적인 상황이 펼쳐진다. 다 때려치우고 나가버릴까하는 쇼맨의 인간 본연의 자존심과 생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참고 쇼를 할 수 밖에 없는 그 얄궃은 상황이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테이블의 돈을 알몸으로 뒹굴며 챙기고, 그 모습이 가게를 둘러싼 통유리에 비치는 이 작품의 마지막은 왠지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아픔이 베어나오는 장면이었다. 이 책은 아픔에 대해 그린 것이다. 다만 그 아픔을 감싸주고 치유해주는 책은 아니어서 아쉽기도 했다. 그리고 그 아픔이 지극히 현실적이고 생생해서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작가가 이 아픔을 감싸주고 치유해주는 작품을 써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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