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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상속
키란 데사이 지음, 김석희 옮김 / 이레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키란 데사이, 김석희 역, <상실의 상속>, 이레, 2008.
대단한 문제작이다. 비교적 젊은 작가가 이만큼이나 예리한 관점과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게다가 사전만큼이나 두껍지만 흡입력있는 스토리와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아주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쉽게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개 무슨무슨 상을 받았다는 광고를 붙인 책은 비평가와 일반인의 괴리감일까, 어쩐지 신뢰가 안 갈때도 많았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믿어도 좋다. 글을 읽으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까, 어떻게 이렇게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예리한 통찰력의 소유자이자 뛰어난 작가이다.
작가는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개인의 이야기를 끄집어 낸다. 인도의 역사는 우리랑 비슷한 부분이 있다. 치욕스런 식민 역사의 고통. 그 속에서 이념으로 갈등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혹은 아예 현실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 게다가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으로 건너가는 아들, 그를 본받아 인도를 떠나고 싶어하는 수많은 동네사람들의 일자리를 부탁하는 아버지의 모습. 어딘가 본 기억이 있다. 시대가 다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으로, 독일로 간호사 생활을 하러 떠난 젊은이들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했다. 억눌리고 힘겨운 삶을 이겨내기 위해, 혹은 도피하기 위한 노력들은 한 세대에서 그치지 않는 모양이다. 스포일러성 이야기를 하자면, 결국 상실은 그 세대에서 그치지 않고 안타깝게도 상속되고 만다. 우리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가장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소설은 현실을 바탕으로 한 허구이다. 물론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현론적 작품도 그 나름의 의의가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조금이나마 희망을 볼 수 있는 밝은 작품을 좋아하여 이 작품의 끝이 아쉽기만 하다. 어쩌면 우리 삶의 단면을 너무도 예리하게 잘라내어 보여주기 때문에 생긴 섬뜩함이 안타까움을 빙자한 거부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내 마음대로 밑줄 긋기
- 시간은 흘러야 돼. 나처럼 시간이 지나가지 않는 인생을 살려고 하지 마라. 그건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충고야. (170쪽)
- 역사는 이런 식으로 움직였다. 천천히 세워진 것이 순식간에 불타버리고 앞뒤가 맞지않는 모순 속에서 앞뒤로 도약하고 젊은이들은 해묵은 증오에 휩쓸렸다. 삶과 죽음 사이의 공간은 결국 측정할 수도 없을 만큼 작았다. (493쪽)